북한에도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를 생산하는 정제공장은 있다. 우리나라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적은 원유 소비량을 기록중인 북한이지만 엄연히 두 곳의 정제공장을 두고 있다. 다만 소규모인데다 노후화되어 있고 경제 제재 영향으로 원유 도입이 원활하지 않아 제한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제공장 한 곳은 혈맹인 중국에서 송유관 지선까지 연결해 원유를 공급받고 있는데 역시 소량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원유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에 엄청난 양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은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 북한 정부, 현지 탐사에 나선 일부 외국 기업들을 통해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고 그 ‘가능성에 대한 언급’만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가장 큰 매력은 석유산업을 비롯한 대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고 그래서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북한에 두 곳의 정유소, 노후화로 실제 가동은…
북한에는 모두 두 곳의 정제공장이 운영 중이다. 승리화학과 봉화화학 등 두 곳의 정유소(精油所)에서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승리화학은 하루 4만 배럴, 봉화화학은 3만 배럴 규모 등 정제능력 규모가 총 7만 배럴에 불과하다. 남한 정유사들의 하루 정제 능력이 305만9000배럴과 비교하면 0.98%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 북한 내 석유 소비량이 한 해 약 900만 배럴 수준에 그치는 것을 고려하면 현 규모의 정제 능력도 부족한 것은 아니다. 두 곳의 정제시설을 풀 가동했을 때 산술적으로 한 해 2555만 배럴 규모의 석유제품을 생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유소를 실제 가동할 수 있느냐는 대목이다. 서방 경제 제재 영향으로 원유 수입에 제한을 받고 있고 시설도 노후화되면서 실제 가동률은 크게 낮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소련 지원받아 건설된 승리화학
승리화학은 북한이 1991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한 나진선봉 지역에 위치해 있다. 함경북도 북동부 일대의 나진시와 선봉리는 구 소련(현재의 러시아)과 인접해 있는데 이곳에 위치한 승리화학은 소련 지원을 받아 건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승리화학의 하루 정제 능력은 4만 배럴 규모. 승리화학에 투입되는 원유도 소련으로부터 공급받아 왔다. API지수 38도 이상의 소련산 원유를 투입해 석유제품을 생산해온 것인데 현재는 가동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로 바뀐 1991년 이후 승리화학에 대한 원유 공급이 중단됐다. 공급이 멈춘 소련산 원유를 대체해 카타르와 태국은 물론 아프리카 나이지리아가 북한에 원유를 수출했다는 기록이 UN 국제무역통계 사이트인 UN Comtrade에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상시로 거래된 것은 아니었고 이마저도 2010년 이후 UN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다. 원유 공급이 원활했더라도 승리화학의 시설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으로 석유 생산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미있는 점은 북한 정부가 2000년 초, 승리화학 정제설비의 개보수를 시도한 적이 있는데 이때 협상 파트너가 남한 석유 수입사인 타이거오일이었다는 대목이다. 한 때 타이거오일이 독자 브랜드와 유통망을 갖추며 내수 석유 시장을 공략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완제품 석유제품을 수입하는 회사였다는 점에서 북한 정부가 이 회사와 정제설비 유지 보수를 논의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중국 지원으로 세워진 봉화화학
일산 3만 배럴 규모의 정제 능력을 갖춘 봉화화학은 신의주에 위치해있다. 신의주는 평안북도 서북부 압록강 하구의 중국 인접 지역이다. 중국은 봉화화학 건설을 지원하고 이곳에서 소비되는 원유까지 공급했는데 특이한 대목은 송유관까지 건설했다는 점이다. 중국 최대 유전인 다칭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는 내륙 송유관을 통해 북경을 비롯한 중국 전역에 공급된다. 그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봉화화학과 송유관 지선을 연결해 원유를 공급하는 성의를 보였으니 양국이 혈맹의 관계였던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하루 2만 배럴 정도 공급되던 원유는 1997년 이후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현재는 더욱 감소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량을 줄인 가장 큰 배경은 자국 내 원유 소비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수출 여력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방 경제 제재가 강화되면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원유 수출은 더욱 제약을 받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원유 수출 가격이다. 사단법인 한반도개발협력연구소 정우진 소장은 ‘중국과 북한이 특수 관계이기 때문에 원유를 낮은 가격에 공급한다는 일부 보도가 있지만 실제로는 대북 원유 수출 가격이 두바이 원유 가격과 같이 변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2010년 이후부터는 북한에 수출하는 원유가격이 국제 시세보다 높았고 우리나라가 수입한 가장 높은 원유 도입가격보다도 더 비쌌다. 이에 대해 정우진 소장은 ‘북한이 정치적인 제약으로 다른 원유도입선을 찾기 어려워 사실상 중국이 독점가격을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혈맹도 돈 앞에서는 안면박대한 셈이다.
동해 가스전 수명 종료 앞둔 남한, 북한은 원유 밭?
우리나라가 세계 97번째 산유국 대열에 진입하기는 했지만 동해 가스전 이후 추가적인 발굴 소식이 없다. 동해 가스전은 천연가스 위주로 생산되고 있고 초경질원유인 콘덴세이트는 소량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9년 이후 수명이 종료될 운명이다. 하지만 북한은 사정이 달라 보인다.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상당량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발언들이 외신 보도 등을 타고 흘러들어오고 있다.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북한 원유 매장량은 50~60억 배럴 규모에 달한다고 분석한다. 우리나라의 한 해 원유 소비량이 8억 배럴 수준이니 7~8년은 족히 소비할 물량이다.
1998년, 소 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며 전 세계 주목을 받았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평양이 기름 위에 떠 있다’는 발언은 북한 원유 매장 가능성에 더 큰 힘을 실어 줬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북한에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원유가 매장되어 있고 경제성을 확보할 만한 수준인지는 현재로서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북한 정부에서 공식적인 데이터나 정보를 밝힌 적이 없고 오로지 북한을 방문했거나 교류한 인사들을 통해 흘러나오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국 기업 시추 끊이지 않지만 실체 확인 안돼
북한은 1997년 동경에서 조선유전설명회를 통해 대규모 유전 가능성을 주장하며 탐사 개발 기업 유치를 희망해왔다. 그사이 적지 않은 외국 기업들이 북한 유전 탐사에 나섰지만 실체가 확인된 성과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2004년 이후 영국 유전개발기업 아미넥스(Aminex)가 북한 석유 탐사와 개발을 진행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하지 못하고 결국 철수했다. 2007년 이후 중국 국영 기업이 북한과 협약을 맺고 서해안에서 유전 탐사에 나섰고 호주, 스웨덴, 싱가포르 6~7개 기업도 북한에 진출해 석유 탐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3년, 북한 정유소인 승리화학 개보수에 투자하는 대신 지분 20%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은 몽골 기업 ‘에이치비오일(HBOil JSC)’은 북한 내륙 유전 개발 권한까지 확보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이후 뚜렷한 성과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확인된 북한 내 풍부한 광물 자원, 원유 언급은 없어
최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광물자원공사 자료를 인용해 북한 국토의 약 80%에 광물자원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하지만 원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남한에는 부존량이 크게 떨어져 자급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원들이 북한에는 풍부해 철광은 50억 톤 정도가 매장되어 있고 아연, 마그네사이트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극소량이거나 아예 부존하지 않은 광물 자원도 북한에는 상당량 확인되고 있다. 북한 광물 자원의 경상 가격 환산금액은 2017년 기준으로 약 3795조 원인 반면 남한은 248조 원으로 약 15배 정도 크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원유가 실제 매장되어 있는지, 그렇다면 대략 어느 수준인지에 대한 확인된 정보나 발표는 없다. 이처럼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원유 자원 매장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배경은 북한 자원 개발 탐사에 참여한 해외 기업 관계자들의 증언되는 측면이 크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북한 원유 개발을 진행했던 영국 아미넥스 측은 북한 내 적지 않은 원유 매장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북한 석유 시장 개방 시 진출 경쟁력 갖추려는 대비 해야
문제는 이 같은 증언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대목이다. 북한 자원 탐사에 나선 해외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고 개발에 참여한 일부 관계자들이 북한 광구 탐사 자금 확보를 목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가능성을 부풀리고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시점에서 ‘북한 원유 매장 가능성이 있다, 없다’를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북한의 서한만 분지는 현재 원유가 생산 중인 중국 발해만과 인접해 있어 원유 매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동안 북한 원유 탐사에 나선 외국 기업들의 전문성이나 기술력도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풀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 자본과 기술이 본격적으로 원유 개발 사업에 참여할 수 있을 때 보다 확실한 진위를 가늠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북한 원유 개발권이 시장에 내놓아졌을 때의 우리 기업 경쟁력이다. 한반도개발협력연구소 정우진 소장은 ‘같은 동포이니 북한 진출에 우리 기업이 유리하다거나 선점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북한에 대한 서방 경제 제재가 해제되고 빗장이 열리면 북한 진출을 모색하는 국가와 기업들은 줄을 이을 것이 분명하다. 이 때 북한이 추구하는 시장 경제에서 최고의 선(善)은 돈일 수 밖에 없다. 혈맹인 중국이 원유 독점 공급력을 활용해 북한에 값비싸게 원유를 판매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가 개방될 때 북한 정부는 동포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남한 기업들에게 우선권을 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우리 기업들은 그 때를 대비해 원유 개발과 투자 경쟁력을 갖추려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기업 입장에서 북한 석유산업을 바라보는 최고의 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