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슈퍼사이클은 올 것인가?

국제 석유시장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변동을 보이고 있는 2020년도 어느새 4분기에 접어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각국이 이동제한(Lockdown) 조치를 시행 하면서 급감하였던 석유수요는 초기 1차 확산이 진정되고 이동제한이 해제되면서 회복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바이러스 통제에 실패 하면서 2차 확산이 일어남에 따라 당초 예상보다 회복 속도가 느려지게 되었다.
수요 회복이 지연됨에 따라 유가 역시 지속적인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 4월에 WTI 마이너스 가격 사태가 발생한 이후 OPEC+ 감산에 힘입어 8월말까지 꾸준한 회복세를 이어갔으나, 이후 코로나19의 2차 확산 본격화, 부양책 효과 소진 등에 따라 조정에 들어가 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가 회복이 지연됨에 따라 상.하류를 막론하고 석유부문에 대한 투자 매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단적으로 현재 미국 주식시장에서 석유회사의 주가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으나, 전기차 회사라고 하면 기술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업체에도 투자금이 몰려들 정도이다. 이로 인해 유럽계를 중심으로 일부 메이저사는 석유사업 비중을 크게 축소하고 대체에너지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등 전략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석유의 시대는 이제 끝난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근미래에 유가가 엄청난 상승(슈퍼사이클)을 겪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다. 이 글에서는 원유 슈퍼 사이클 시나리오의 근거와 슈퍼사이클이 초래할 결과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슈퍼사이클의 원인

올해 코로나19 사태가 팬데믹으로 발전하고 유가가 급락한 이후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바클레이스 등 국제 투자은행들은 석유시장이 리밸런싱을 거쳐 공급 부족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은 바 있다. 미국 셰일 등 非 OPEC 생산능력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데, 팬데믹 사태가 진정되어 수요가 회복하는 시기가 되면 생산량이 수요 증가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가-선물-포워드-커브-전망

가장 공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던 모건스탠리에서는 2014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류 부문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가 부진했던 상황에서 금년 유가 급락으로 1,2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감소할 것이라 예상하였고, 이로 인해 2025년이 되면 유가가 브렌트 기준 최대 $190/B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팬데믹 사태가 당초 예상보다 심화 및 장기화됨에 따라 초기에 나왔던 전망의 가정들은 상당 부분 현실과 달라진 상태이다. 이제부터 원유 슈퍼사이클 시나리오의 주요 구성요소들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펜데믹 사태 종결

지금까지의 사태를 종합해 볼 때 대부분의 국가에서 현재 사회 시스템으로는 백신 없이 코로나19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감염 통제에 최악의 조건을 두루 갖춘 코로나19 바이러스 특성으로 인하여 봉쇄 조치로 간신히 확산을 억눌러도 조금만 방역수준이 완화되면 금세 집단감염을 통해 불씨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확산을 진정시킨 것으로 여겨졌던 유럽에서조차 1차 확산을 뛰어넘는 규모의 2차 확산이 발생하는 등 상황은 매우 암울해 보인다. 과연 이 상황의 끝은 언제이고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코로나19 사태 직후부터 시작된 백신 개발은 완료가 어느 정도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이다. 현재 선두주자 몇몇 회사의 제품이 임상 3상 단계에 진입하여, 대규모 접종 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다. 빠르면 올 연말 전에 3상이 완료되는 백신이 나올 수도 있지만 충분한 생산물량이 확보되고 전 세계로 배포되어 접종이 시작되는 시기는 이보다 늦을 전망이다. 백신치료제 개발을 위해 WHO가 주도하는 국제협력 체계 COVAX에서는 2021년 말까지 세계 인류의 1/3 가까이가 접종할 수 있는 20억회 분의 백신 배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최근 유럽의 2차 확산에서 현저한 사망률 저하가 관측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를 기준으로 보면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10.10일 기준 26,896명을 기록하여 1차 확산 당시 고점(3.31일 7,578명)의 약 3.5배나 되는 수치를 보이고 있으나, 일일 사망자 수는 54명에 불과하여 1차 확산 당시 최고 1,438명에 달했던 것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코로나19-일일-확진자-사망자-현황

이는 젊은 층 위주의 확산, 코로나19 대응 의료체계의 발달 등의 영향도 있지만 바이러스 그 자체가 전염성을 높이고 치명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변이하였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치명성이 높다는 것은 인체에 더 많은 증상을 일으킨다는 것이고, 일단 증상을 일으키게 되면 인간에게 발견, 격리되므로 바이러스는 더 이상의 전파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사태 초기부터 전염병 학자들은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바이러스의 주류가 증상 발생이 최소화되는 유형으로 대체되리라 예고하였던 바 있다.

이를 종합하면, 빠르면 2021년 하반기에 선진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백신 접종이 개시되어 바이러스가 통제되기 시작할 것이고, 2022년에는 개발도상국까지 백신 배포가 이루어지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물론 개발상 예상치 못한 난관이 발생하거나 백신이 듣지 않는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하는 등의 리스크가 있음은 감안하여야 할 것이지만, 백신 개발이 모조리 실패하는 최악의 경우에도 인위적(백신)이든 자연적(감염)이든 수년 내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이다.

그럼 코로나 사태가 종결될 경우 석유수요와 유가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우선 감염 확산이 줄어들고 바이러스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해지는 시점을 1단계로 볼 수 있다. 바이러스를 근절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통제 하에 두고 있는 국가의 대표 격인 한국의 사례를 참고하면, 1차 확산을 제압한 5월 이후 8월까지 국내 석유 소비는 전년 대비 97%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IEA(세계에너지기구)에서는 세계 석유수요를 2019년 100백만b/d 대비 2020년 91.9백만b/d, 2021년 97.1백만b/d로 전망하고 있는데, 바이러스 통제가 가능한 시점에서 약 97%까지 수요가 회복된다는 점을 볼 때 이러한 전망은 현실성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단계에서 금융시장에서의 기대감을 바탕으로 막대한 유동성이 항공, 크루즈, 카지노 등의 업종과 함께 원유선물로 유입되면서 유가 급등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지역간, 국가간 이동제한 조치가 해제되는 시점을 2단계로 볼 수 있는데, 이 시점에서 석유수요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태가 먼저 진정된 중국의 석유소비량을 보면,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업종 공장 가동률 감소와 항공유 수요 부진에도 불구하고 ‘20.9월 현재 이미 전년 동기 소비량을 상회하고 있다. 국가간 이동제한이 풀리는 시점에 단기적으로 사상 초유의 항공유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재고 감소 및 현물가격 상승으로 이어 지면서 앞서 급등한 유가가 안정적으로 상승세를 유지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저유가로 인한 공급능력 파괴

팬데믹 사태 초기에 바클레이즈, 골드만삭스 등의 투자은행이 내놓은 전망을 돌아보면,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에서 바이러스 확산이 통제되는데 걸린 기간과 이로 인해 발생한 석유수요의 부문별 감소폭 및 회복속도를 바탕으로 국가별 조정을 통해 수요-공급 불일치의 시기와 규모를 추산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우한 전면 봉쇄 등의 극단적 조치를 포함한 강력한 통제를 바탕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조기에 진압한 데 비해, 다른 국가들의 감염 확산세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휴가철(Driving Season) 등에도 불구하고 수요 회복 및 재고 감소는 당초 예상보다 적은 규모에 그치고 있으며, 유가도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저유가 기간이 길면 길수록 공급능력은 더 많이 파괴된다는 점이다. 석유 상류부문(탐사,개발,생산)은 생산량을 증가시키려면 상당 기간 선행 투자가 필요하다. 일단 땅 속에 묻혀 있는 원유를 발견(탐사) 후 생산할 수 있는 준비(개발)를 한 후에야 생산을 할 수 있는데, 이 모든 활동에는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에 개발해놓은 유전의 경우에도 더 많은 물량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EOR(회수증진) 등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저유가 시기에는 신규 투자금을 유치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기존 생산유전도 생산량이 줄어들고 판매가격이 떨어져 현금흐름에 큰 타격을 입게 되므로 석유회사가 투자에 나설 여력이 없어지게 된다.

이미 생산비용이 높고 현금흐름이 불충분한 미국 셰일업체들의 파산은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까지 30개 이상의 업체가 파산보호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수압 파쇄법 실용화를 통해 셰일혁명을 이끈 업체인 체서피크사(Chesapeake Energy) 마저 6월말 파산보호 대열에 합류한 바 있다. 유가가 $40/B 전후까지 다소 회복 되기는 하였으나, 9월부터 조정을 겪으며 불안정이 심화됨에 따라 섣불리 생산 재개를 결정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당장 생산을 할 수도 없는데 미래 매장량을 확보하기 위해 신규 유전 탐사에 나서는 것은 더더욱 엄두를 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미국-유-가스-시추기수-변동-추이

이러한 중소업체 파산, 일부 석유메이저의 석유사업 비중 축소, 탐사비용 삭감 등 전반적인 업계의 투자 축소와 환경규제 강화로 인한 사업여건 악화를 감안한다면 현재 OPEC의 잉여생산능력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팬데믹 사태가 종료되고 수요가 폭발했을 때 생산은 불충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적으로 현재 미국 시추기수는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데, 증가에 수개월이 소요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생산능력 감소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2차 확산 등으로 저유가 시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미래에 가격 급등을 유발할 수 있는 에너지가 점점 더 많이 쌓이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슈퍼사이클의 결과

지금까지 원유 슈퍼사이클을 촉발할 수 있는 주요 원인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꼭 유가에 상승 요인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에너지전환으로 인한 석유수요 감소는 장기적으로 유가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서 인류가 석유를 얼마나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또한 팬데믹 발생 직후 급증한 석유재고가 어느 정도 소화되기 전까지는 공급부족이 직접적으로 유가를 밀어 올리지는 못할 전망이다.

그러나, 일단 2020년대 중반에 구조적 고유가가 발생한다고 한번 전제해 보자. 과연 이는 석유회사에게 행복하기만한 상황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유가 급등은 에너지전환의 기폭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과거 오일쇼크 시기에는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이 마땅치 않았지만, 지금은 전기차 등 대체에너지 기술의 성숙도가 높아진 상황이다. 일시적인 유가 상승일지라도 소비자의 행동 패턴에는 많은 영향이 발생한다. 과거 유가가 $100/B를 넘었던 시절, 국내 승용차 중 연비가 좋은 경유차의 점유율은 2008년 초 19.8%에서 2014년 말 25.6%까지 급증한 바 있다.1) 이후 경유차의 점유율은 다시 줄어들었는데, 배출가스 조작 사태도 있었지만 저렴해진 휘발유 가격의 영향도 크게 작용하였다. 차량 판매는 일시적이지만, 한번 판매된 차량은 십수년간 주행하므로 수년간의 고유가가 국내 경유 소비량에 장기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근미래 시점에서 유가가 급등한다면 소비자의 선택은 전기차를 향할 것이다. 당장 충전 인프라의 불편함과 신기술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정부의 구입 보조금이 더해지면 경제성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필자는 서울에서 전기차 택시를 시승할 기회가 있었는데, 택시기사의 설명에 따르면 차량 구입비는 LPG와 큰 차이가 없으면서도 한달 연료비는 약 70만원이 절감되고 주행거리는 하루 영업에 충분하다고 하였다. 승객들에게 익숙한 세단 형태의 차량이 보급된다면 월수입 70 만원 증가를 포기하고 가스차를 고집할 택시기사는 별로 없으리라 짐작된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 것 또한 에너지전환을 가속화하는 요소이다. 미국은 기술적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혁신적 기술은 미국에서 먼저 만들어져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미국에서 에너지전환이 본격화될 경우 기술혁신이 발생해 매력적 신제품이 출시·보급 되고, 전 세계 수요에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별이 죽기 전 초신성이 되어 폭발하듯이 마지막 유가 폭등은 석유 시대의 종말을 의미할까? 일단 가까운 미래에 가격 급등이 발생할 경우 경쟁력이 저하되면서 그간 누려온 독점적 에너지원의 자리는 내려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석유는 화학제품의 원료이기도 하므로 수요 피크까지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가며

만약 슈퍼사이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과거의 실책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석유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유가 시기에 석유자원 확보를 경시하다가 고유가를 견디지 못하고 고점에 진입해 손실을 입은 과거의 행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쌀 때 사고 비쌀 때 파는 것이 투자의 기본이다. 구조적인 공급부족 상황에서 에너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안정적 국내도입이 가능한 물량을 지금 저유가 시기에 최대한 확보해 놓아야 한다.

또한 고유가 시기 이후에 다가올 에너지전환을 전략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고유가 시기에 들어오는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대체에너지 등 새로운 분야의 투자에 나서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과감히 재편해 석유시대 이후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대내외 공감대 형성은 필수라 하겠다. 전통적으로 경제위기는 계층간 불균형을 심화시켜 왔다고 한다. 운용할 수 있는 자산의 규모에서도 차이가 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보 불균형으로 인해 위기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기회들을 포착하는 능력의 차이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의 세상에서 에너지 업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남보다 넓은 시야로 먼 곳을 바라보고 미리 행동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

1) 출처 : 국토교통부 자동차등록자료 통계


한국석유공사 석유동향팀 과장 이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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