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석유 전망: 3년간의 공급과잉 해소될까?

OPEC 및 비OPEC 산유국 에너지 장관들
지난 5월 25일 오스트리아 빈에 모인 OPEC 및 비 OPEC 산유국 에너지 장관들. 이들은 유가 안정을 위해 지난해 합의한 감산계획을 2018년 3월까지로 연장하기로 합의 했으나 석유시장의 과잉공급이 해소될 지는 미지수다. <출처: OPEC>

지난 3년 남짓 요동치던 국제 유가가 올해 들어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해외 전문가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정책 및 신규 투자 감소로 일단은 심각한 과잉공급이 줄어든다는 분위기지만 미국의 셰일 석유 증산과 OPEC 내 감산 반발 세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수요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인도를 중심으로 한 신흥시장의 석유 수요는 지금도 꾸준히 성장세다. 다만 그 동안 신흥시장 수요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중국에서 석유 수요가 줄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과거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제조업 중심 경제 구조를 서비스업 및 지식산업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3월 ‘석유 2017’ 보고서를 통해 국제 유가가 앞으로 5년간 일단 상승세를 나타낸다고 예측했다. IEA는 동시에 다양한 변수들을 가리키며 유가 급변 역시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해 브렌트유

치킨게임이 신규투자 망가뜨려

2014년 6월 20일. 영국 런던에서 거래된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114.81달러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OPEC 회원국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석유 생산량 2위인 이라크에서는 훗날 ‘이슬람국가(IS)’로 불리는 무장세력의 송유관 습격이 거세졌다. 리비아의 반군도 석유 생산을 방해했다. 같은 해 4월 선진국 석유 재고는 OPEC 회원국들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6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그러나 유가는 끊임없이 내려갔다. 중동 산유국의 혼란이 수습되는 한편 유럽과 신흥시장의 경기침체가 수요를 잠식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쏟아지는 셰일 석유가 유가를 끌어 내렸다. OPEC은 같은 해 11월 감산 결정이 절실하던 정기 총회에서 일평균 3000만배럴의 생산량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뜻밖의 결정이 나온 이유는 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유가를 일정기간 낮게 유지해 급성장하는 미 셰일 석유업체들을 말려 죽인다는 계획을 세우고 다른 회원국들을 설득했다. 유가는 OPEC이 공공연히 가격방어를 포기하고 생산을 늘리면서 폭락을 거듭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2016년 1월 15일 배럴당 28.94달러까지 추락했다.

저유가

결국 저유가로 인한 신용등급 강등, 경제위기 등에 견디다 못한 OPEC의 13개 회원국은 지난해 11월 3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총회를 열고 일평균 석유 생산량을 올해 1월 1일부터 6개월간 최대 3250만배럴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1일 기준으로 일평균 120만배럴 줄어든 수치다. 러시아를 포함한 비 OPEC 국가 11개국 역시 지난해 12월 10일 회의를 열고 OPEC과 같은 기간 동안 일평균 석유 생산량을 55만8000배럴 줄이기로 약속했다. 감산에 참여한 국가들은 올해 5월 회의에서 감산을 내년 3월까지 9개월 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다국적 정유사들은 유가 폭락에 직격탄을 맞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8월 보도에서 엑손모빌 등 4대 다국적 정유사들의 순 부채 합계가 1840억달러(약 205조원)로 2년 만에 2배로 늘었다고 전했다. IEA에 의하면 세계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 투자는 4대 정유사 및 각국 국영 에너지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2015년과 2016년에 각각 25%, 26%씩 감소했다. IEA는 올 3월 보고서에서 에너지 기업들이 신규 투자를 서두르지 않는다면 오는 2022년에는 공급 부족으로 인해 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석유 수급 현황
2017년 2분기(2Q17) 기준 세계 석유 수요는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석유 재고 증감이 점차 둔해지면서 석유 시장 전반에 유동성이 떨어지는 추세다.

미국 및 OPEC 내분에 주목해야

OPEC은 지난 5월 월간 시장보고서에서 올해 평균 비 OPEC 산유국들의 석유 생산 규모가 일평균 5825만배럴로 전년 대비 1.66% 증가한다고 예상했다. OPEC은 이중 미국의 생산량이 1445만배럴로 1년 전보다 6.05%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미국에게 증산 자제를 촉구했다. 미국 석유업계는 3년 남짓한 치킨게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남았다.

미국 석유업계

미국은 지난 1973년에 1차 석유파동이 발생하자 전략자원 보호를 위해 1975년부터 석유 수출을 금지했다. 미국의 석유 생산은 이후 1986년 초에 정점을 찍은 이후 꾸준히 감소하다 2008년을 기점으로 셰일 석유 개발이 활기를 띄면서 다시 늘어났다. 2008년 9월 1억1937만3000배럴이었던 월간 생산량은 2015년 3월 2억9653만1000배럴로 2배 이상 뛰었다. 이 같은 성장세는 석유 시장에서 OPEC 입지를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셰일 석유는 과거에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캐지 못했던 셰일 지층의 석유를 파낸 것으로 채굴에 중동 국가들보다 많은 신기술과 자본이 필요하다. OPEC이 저유가 정책을 꺼내든 것도 미 셰일 업계의 높은 생산비를 노린 전략이었다. 실제로 미국 내 유정 및 천연가스 채굴 시설 숫자는 2014년 9월 1931개에서 지난해 5월 404개까지 급감했다. 2015년부터 2년간 114곳에 달하는 미 셰일 업체가 파산보호신청을 냈다. OPEC이 시작한 치킨게임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셰일 석유

그러나 셰일 석유는 호락호락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올해 5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의 10대 셰일 개발업체 가운데 8곳은 수십억달러의 부채를 털어내고 여전히 영업 중이다. 이들은 끊임없는 체질개선으로 생산비를 낮추고 부채를 주식으로 바꾸는 스와프를 동원해 투자자를 붙들었다. 스위스 UBS 은행에 의하면 셰일 업체들의 유가 손익분기점은 2014년 배럴당 65달러에서 현재 40달러 수준으로 감소했다. FT는 셰일 업체 채권자들이 주주로 바뀌면서 보다 공격적인 증산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는 5월 발표에서 미국의 석유 생산이 6월까지 일평균 12만2000배럴 늘어나 일평균 540만배럴에 이른다고 예상했다.

또한 OPEC 회원국들이 감산 합의를 잘 지킬 지도 의문이다. OPEC의 석유 생산 규모는 2015년 연간 기준 일평균 3151만900배럴에서 올해 4월 기준 3173만2000배럴로 큰 변화가 없었다. 감산을 주도하는 사우디의 생산량은 같은 기간 일평균 18만8000배럴 줄었지만 경제제재 해제와 내전을 구실로 감산 합의에 불참한 이란과 이라크의 생산량은 각각 일평균 92만3000배럴, 41만2000배럴씩 늘었다. 이외에도 나이지리아, 리비아, 베네수엘라 등 OPEC의 가난한 회원국들이 저유가에 경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순순히 사우디의 의도대로 석유 생산을 억제할 지 장담할 수 없다.

OPEC의 세계 석유시장 점유율은 2014년 11월 32.4%에서 2017년 4월 31.7%로 되레 감소했다. 미국을 물리치기 위해 시작한 가격전쟁은 점유율 하락과 분열만을 남기고 수포로 돌아갔다.

미국 주요 석유 산지
미국 내 핵심 셰일 석유 산지는 노스다코타주 바켄(Bakken)과 텍사스주 퍼미안(Permian), 이글포드(Eagle Ford)다. 이곳 셰일 업체들은 약 3년간의 치킨게임에 고사 직전에 이르렀으나 생산비 절감 등을 통해 살아남아 석유 생산을 늘리고 있다.

신흥시장의 수요가 변수

다행히 수요부문은 공급부문보다 예측하기 쉬운 상태다. OPEC은 5월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일평균 9638만배럴로 전년보다 1.33% 증가한다고 평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석유 수요 증가율은 0.49%에 불과하지만 신흥시장 국가들이 전체 수요를 끌어올렸다. IEA는 3월 보고서에서 세계 석유 수요가 2022년까지 해마다 일평균 120만배럴씩 늘어나 2019년에 일평균 1억배럴을 돌파하고 2022년에는 1억400만배럴까지 늘어난다고 추정했다.

인도의 석유 수요

국가별로 살펴보면 인도의 석유 수요가 가장 눈에 띈다. 인도의 연간 1인당 석유 소비량은 현재 1.2배럴이나 2022년에는 1.5배럴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IEA는 앞으로 인도에서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차를 구입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교통용 연료 수요가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추세는 인도를 비롯한 신흥시장 전반에서 걸쳐 예상된다.

IEA는 비록 국제적으로 에너지 절약 정책이 늘어나고 친환경 에너지나 전기 자동차 사용이 증가하고 있지만, 석유 수요를 억제하기에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세계 승용차 가운데 에너지 효율 규제를 받는 차량은 전체 4분의 3에 달한다. 세계 전기자동차 재고 역시 2015년 1300만대에서 2022년 1500만대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IEA는 이러한 움직임이 석유 수요 증가를 늦출 순 있어도 수요를 줄이지는 못하다고 못 박았다. 이어 앞으로 5년간 전기자동차 증가로 인해 줄어드는 석유 수요가 일평균 20만배럴에 불과하다고 내다봤다.

석유 수요

한편 수요부문에도 위험요소가 존재한다. 과거 20여 년간 급격한 산업화와 대규모 사회기반시설 건설로 지구 곳곳의 석유를 빨아들이던 중국은 점진적인 산업구조 변화로 석유 소비를 줄이고 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서비스업 같은 3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43%에서 지난해 52%로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제조 및 건설업 같은 2차 산업 비중은 47%에서 40%로 줄어들었다. 중국의 5년 평균 석유수요 증가율은 2007~2011년 5.5%에서 다음 5년(2012~2016년)에 4.8%로 하락했다. IEA는 해당 증가율이 2017~2022년 사이 2.4%에 머문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IEA는 신흥시장이 아닌 선진국의 석유 수요가 환경규제 강화와 인구 변화로 인해 장기적으로 위축된다고 진단했다. OECD 국가들의 석유 수요는 2022년까지 해마다 일평균 20만배럴씩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박종원 기자
박종원 파이낸셜뉴스 국제부 기자

본 콘텐츠는 대한석유협회 석유협회보 <석유와 에너지>의 콘텐츠 제휴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