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석유 소비 1%로 1년 사는 북한, 휘발유 시장 경제도 존재

북한에는 하루 7만 배럴 규모의 정제시설 2곳이 존재하는데 노후되고 유지 보수도 되지 않아 실제 가동 여부는 확실치 않다. 설령 정제설비를 돌릴 수 있다고 해도 국제사회 경제 제재 여파로 원유 수입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투입할 원료를 구할 길이 없다. 완제품 석유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국제 사회가 허용한 북한의 한 해 수입 가능 석유제품은 50만 배럴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하루 정제 능력 16%에 해당하는 매우 적은 물량이 1년 동안 해외에서 수입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그런데도 2,5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보유한 북한 사회는 돌아간다. 심지어 우리나라 주유소에 해당하는 연유소에서 휘발유가 거래되고, 가격은 수급 여건 따라 요동친다. 제한된 물량이지만 그 석유가 거래되는 시장이 존재하고 수급 변화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는 시장 경제가 작동하고 있다. 북한에 있어 석유란 무엇이고 석유 없이도 견딜 수 있는 배경 그리고 석유의 가치를 들여다 본다.

우리나라 석유 소비량 1%로 북한 움직여

통계청 기준으로 2018년 현재 북한 인구는 2,561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같은 기간 남한 인구는 5,180만 명이니 우리가 약 두 배 정도 많다. 사람이 움직이고 물자가 이동하며 산업이 가동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에너지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에너지가 바로 석유인데 북한 석유 소비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 미미하다. 북한 석유 소비량은 한 해 약 900만 배럴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정유사들의 하루 정제 능력이 305만 9,000배럴에 달하니 산술적으로 약 3일 가동하면 북한의 한 해 석유 소비를 충족할 수 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석유 소비량이 9억 2,400만 배럴로 집계됐으니 북한은 우리가 사용하는 석유의 0.97%만으로도 한 해를 버티고 있는 셈이다. 나무 땔감으로 방구들을 데우고 참기름이나 돼지기름으로 촛불을 밝히던 시대가 아닌 21세기의 북한 에너지 소비 현실이 그렇다. 이런 게 가능한 것은 북한 에너지 소비 구조가 우리 같은 석유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석유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로 대체하기 어려운 자동차 수송이나 군사 용도로만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동차 대수 28만대와 2,252만대

석유공사 자료에 따르면 북한 자동차 대수는 2016년 기준으로 약 28만 5,000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 대수가 2,252만여 대에 달하니 약 1.2%에 그치고 있다. 석유 중 자동차 연료인 휘발유와 경유의 북한 소비량은 연간 350만 배럴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2017년 우리나라 휘발유와 경유 소비량인 2억 4,847만 배럴과 비교하면 1.4% 수준이다. 북한은 석유 에너지가 필요한 자동차 보유 대수가 절대적으로 낮고 석유 소비도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런 구조가 가능한 것은 사람과 물자를 이동시키는 수송 분담률 중 철도의 역할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수송의 핵심인 철도 중 80% 이상은 전철화되어 있다. 석유 에너지가 아닌 전기로 달리고 있다. 또한 전기는 석유가 아닌 재생 에너지와 석탄으로 생산하고 있다.

북한의 휘발유, 경유 소비량 수준은 2017년 우리나라 휘발유와 경유 소비량인 2억 4,847만 배럴과 비교하면 1.4% 수준이다.

남북한 모두 석유 발전 비중 작지만 배경은 달라

우리나라 발전원 중 석유 비중은 매우 낮다. 한전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의 발전 용량 중 유류 설비 비중은 4%에 그쳤다. LNG 발전 설비 용량이 32%로 가장 많고 석탄이 31%, 원자력이 19%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발전량 비중은 석탄과 원자력이 각각 30% 넘게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이고 석유 발전은 한 자릿수 대에 그치고 있다. 북한의 석유 발전 비중이 우리나라보다도 매우 낮다. 하지만 배경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발전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경제급전(經濟給電)’ 정책에 기초해 상대적으로 발전 원가가 낮은 석탄과 원자력이 각광을 받고 있다. 반면 북한은 석유가 오히려 비싸고 구할 길도 없어 발전 원료로 투입할 길 자체가 없다.

북한 전문 매체인 38노스나 북한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전력 설비는 수력과 화력 발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특히 수력 발전 비중이 더 높다. 화력은 석탄 발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북한에는 석탄 매장량이 풍부하고 지금도 한 해 수천만 톤 규모를 자체 생산하고 있어 발전 원료 수급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함경북도에 위치한 20만 kW 규모의 선봉화력이 북한에서 유일한 석유발전소였는데 이마저도 무연탄 발전소로 개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전력 설비는 수력과 화력 발전이 대부분을, 화력은 석탄 발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학산업도 석탄에 뿌리 두고 있어

북한은 화학산업도 석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석유 기반의 화학 산업 구조로 납사나 LPG를 원료로 투입해 다양한 화학 물질과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석탄 원료 기반의 화학산업이 형성되어 있다. 매장이 풍부하고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와 무관하게 자체 조달이 가능한 석탄을 화학산업 기반 원료로 활용하는 것은 북한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원유 정제 설비도 사실상 가동이 모두 멈춘 것으로 알려졌고 석유 수입도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화학산업에 투입할 석유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도 석탄화학이 기반이 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전문 소식통에 따르면 평안남도 안주시에 북한 유일의 석유화학 설비가 가동됐었는데 납사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2010년 이후 석탄 가스화 공정으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의 은총 공평한 재생에너지로 전력 생산

국제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된 북한의 에너지 선택지는 사실상 하나뿐이다. 자국 내에서 자급할 수 있는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공평하게도 신은 북한 같은 고립 국가에도 태양이나 바람, 물 같은 재생에너지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북한 발전의 60% 이상이 수력 발전에 의존할 수 있는 배경은 신의 공평함에서 비롯된 셈이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재생에너지법을 만들어 재생에너지 이용을 장려할 수 있는 것도 신의 자애로움 때문이니 지도자가 신격화되어 있는 북한의 아이러니한 모습의 한 단면이다. 석탄은 자국 내 채굴이 가능해 전기를 생산하고 기차를 달리게 하며 비료 같은 화학제품을 만들어내는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태양과 바람, 석탄으로 대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석유이며 국제사회 제재로 극히 제한적인 물량만 유통되고 있다. UN 안보리가 채택한 가장 최근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따르면 원유 수입은 연간 400만 배럴, 석유제품은 50만 배럴로 제한되어 있다.

북한에서는 국제사회 제재로 석유가 극히 제한적인 물량만 유통되고 있다.

강 건너고 바닷길 통해 석유 밀수 나서기도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북한은 그 석유로 숨이 막힐 지경인데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 죽으란 법은 없으니 숨통이 있을 것이라는 정황들이 제시되고 있다. ‘밀수(密輸)’가 그것인데 북한과 혈맹 관계인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과 국제사회의 눈길을 피해 육⋅해상 루트로 석유를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압록강을 드나드는 선박이나 차량을 통해 중국산 석유제품이 밀수되거나 해상에서 러시아와 북한 선박 간 석유 환적이 이뤄지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밀수가 사실이라 해도 국제사회 관심을 피해 북한에 밀반입될 수 있는 물량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석유 해갈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수급 여건에 따라 시장 거래에서의 가격 오르내림이 극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 정부가 허가한 공식 시장 즉 장마당이 약 436개에 이르고 사금융업자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폐쇄된 북한에서도 시장 경제가 존재하는 셈인데 석유 역시 시장 거래 흔적이 엿보이고 있고 특히 물량이 제한된 물자이다 보니 국제사회 경제 제재 여부에 가격이 크게 요동친다는 분석이다.

평양 휘발유값은 국제사회 제재 따라 널뛰기

국책 인문 연구소인 에너지경제연구원 김경술 선임 연구위원의 한 기고문에 따르면 평양 휘발유값은 북한 화폐 기준으로 1kg에 8,170원에서 2만 3,500원까지 널뛰기하고 있다. 휘발유값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 등 수급 리스크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기고에 따르면 평양의 휘발유 가격은 2017년 4월 21일 kg당 8,170원에서 5월 4일에 1만3150원으로 급등했는데 당시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석유공급 중단 방안을 논의했던 것이 반영됐다. 대북 제재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지난해 9월 13일 기준 평양 휘발유 가격은 kg당 2만 900원으로 올랐고 10월에는 중국이 대북 제재 결의안 이행 의지를 밝히고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의 밀수 단속을 강화하면서 2만 3,500원으로 최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석유 가격은 국제유가와 환율, 세금 변동에 연동되는 데 반해 북한 휘발유 가격은 국제사회 경제 제재 여부에 결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시장 가격의 중요한 결정 요인인 수급 여건이 북한 휘발유값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으니 사방이 꽉 막힌 북한에서도 제한된 물자가 유통되고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이 존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편 국제 사회의 다양한 북한 석유 가격 정보는 ‘평양 휘발유값’을 기준으로 소개되는데 자동차 연료를 거래하고 소비할 수 있는 곳이 북한 내에서 평양 말고는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북한에서 석유는 선택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희소성의 에너지이고 그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이들은 평양에 몰려 사는 셈이다.


industrial writer GS칼텍스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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