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라인으로 러시아 원유 받는데 왜 북한이 문제?

[에너지리더]

파이프라인으로 러시아 원유 받는데 왜 북한이 문제?

석유나 도시가스가 경제적이고 편리한 이유 중 하나는 관로 운송 방식 때문이다.
정유사들이 생산하는 석유제품은 대한송유관공사라는 기업이 동서남북으로 깔아 놓은 대형 송유관을 통해 전국 각지로 수송된다. 대형 파이프라인에 압력을 가해 석유를 밀어내는 방식인데 탱크로리 수백, 수천 대가 수송할 물량이 송유관을 통해 빠른 속도, 낮은 비용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주요 출하기지까지 이송된다. 천연가스 역시 저장기지에서 주배관망을 타고 전국 각지로 흘러 들어가 지선으로 흩어지고 각 가정까지 연결된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되다 보니 소형 용기에 담겨 배달 공급받는 LPG보다 값싸고 편리하다.

LPG 저장소

최근 열린 ‘2017 미래에너지포럼’에서 서울대 김태유 교수는 러시아와 우리나라를 잇는 ‘PNG(Pipeline Natural Gas)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해 주목을 받았다. PNG는 말 그대로 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방식으로 벌크(Bulk:선박) 수송 방식보다 경제성 측면에서 크게 유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천연가스 공급국과 수백 수천 킬로미터 길이의 파이프라인이 연결되는 것 자체가 에너지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김태유 교수는 “중국은 러시아에서 싼값에 천연가스를 공급받게 됐고 일본은 도쿄에서 사할린까지 파이프라인을 연결하자고 러시아에 제시하기도 했다”며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맹지(盲地)가 되지 않으려면 러시아와 PNG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꾸준히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나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방안을 고민해왔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동산 원유 대안으로 러시아와 이어지는 송유관 등을 건설해 원유를 도입하거나 PNG 사업 가능성을 검토해왔는데 외국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도입하기 위한 파이프라인은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없다.

 

삼면이 바다여서 해상 수송이 유리한가?

원유 수송선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해상 물류 수송 여건이 유리하다. 원유와 천연가스 역시 바다를 거쳐 대형 벌크 전용 선박으로 수입하고 있다. 수송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매우 큰 원유 수송선’이라는 의미의 ‘VLCC(Very Large Crude oil Carrier)’ 또는 이보다 더 큰 울트라급 유전선인 ‘ULCC(Ultra Large Crude Oil Carrier)’가 이용된다. 하지만 울트라 형님급 수송선이 출현한다고 해도 파이프라인만 틀면 원유가 쏟아지는 송유관의 경제성을 당할 수는 없다.

천연가스도 마찬가지다. 부피를 줄이고 줄여 최대한 많은 물량을 수송하기 위해 액화천연가스 즉 LNG(Liquefied Natural Gas) 형태로 전환해 전용 선박으로 운송하고 있는데 이 역시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송되는 PNG(Pipeline Natural Gas)의 물류 경제성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주로 러시아와 파이프라인을 연결해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방안을 모색해왔는데 단순 셈법으로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으로 진작 건설됐어야 했다. 국부의 절반 이상을 에너지 수출로 벌어들이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6% 이상인 우리나라 역시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수입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다른 셈법이기는 하지만 중국과 일본도 러시아와 선을 대 원유와 천연가스를 실어 나를 파이프라인 건설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왔는데 지리적으로 또한 이념적으로 가까운 중국이 선점하는 모양새다.

 

중국이 선점한 러시아 파이프라인

중국이 러시아 파이프라인에 목을 매는 이유는 우리나라나 일본과는 다른 이유가 있다.
중국 역시 중동산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데 해상 수송 과정에서 동남아 군사요충지인 말라카 해협을 경유하고 있다. 말라카 해협이 중동과 한·중·일 동북아 3개국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해로(海路)이기 때문인데 이곳의 교역량이 증가하고 있고 특히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해상 지배권 즉 제해권(制海權)에서 벗어나 안정적 에너지 수급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해상 수송 루트 개발과 더불어 러시아 파이프라인 연결 사업을 모색해왔다. 러시아와 파이프라인을 잇는 사업은 현재 중국이 선점하고 있다.

러시아 시베리아 아무르주 스코보로디노에서(Skovorodino) 중국 다칭(大慶)을 잇는 송유관이 건설돼 2011년 1월부터 원유 수송이 시작됐고 두 번째 송유관 건설 사업도 추진 중이다. 이외에도 중국은 2009년에 카자흐스탄과 중국을 잇는 송유관을 개통했고 미얀마, 파키스탄과 연결되는 송유관도 완공됐거나 건설을 추진 중일 만큼 에너지 파이프라인 수송을 확대하고 있다.

파이프라인

반면 중국과 더불어 러시아와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온 우리나라와 일본은 여전히 빈손이다. 러시아산 원유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받는 가능성을 꾸준히 모색해온 우리나라는 2000년 초반 러시아 앙가르스크(Angarsk)와 중국 다칭(大慶)을 연결하는 송유관이 건설되는 것을 전제로 우리나라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또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수송하는 ‘이르쿠츠크 PNG 프로젝트’ 가능성도 타진해왔다.

일본은 더욱 적극적이었는데 송유관을 통한 러시아 원유 유치를 위해 중국과 경쟁하며 러시아 측에 송유관 건설과 유전 탐사 등에 드는 천문학적 자금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러시아 정부는 결국 중국과 손을 잡고 일본은 외면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포기하지 않고 러시아 사할린에서부터 일본 도쿄만까지 연결되는 PNG 설치를 러시아 측에 제안 중이다.

 

우리나라는 중·일과 또 다른 사정이 있다?

러시아로부터 PNG 형태의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유럽 주요 국가들은 중간 경유지인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갈등을 겪을 때마다 에너지 수급난을 우려해야 한다. 한때 소련 연방이라는 한 지붕 밑에서 같은 정치 노선을 유지하던 우크라이나가 연방 해체 이후 분리 독립하면서 친서방 노선을 유지한다거나 또는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가격을 인상한다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양국 간 갈등이 야기될 때마다 우크라이나를 통해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유럽 국가들의 에너지 안보는 시시때때로 위협받고 있다. 러시아에서 출발해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막히면 유럽행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북한 핵 개발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주요 압박 카드 중 하나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원유 공급 중단이다.

현재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중국 단둥시에서 북한 평안북도 피현군 봉화 화학공장까지 약 30.3㎞ 길이의 송유관이 건설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이 파이프라인 꼭지를 잠그면 북한은 원유 수급로를 완전히 잃게 되는 셈이다. 파이프라인만 깔면 에너지 수급이 안정될 것으로 비치지만 오히려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수단도 될 수 있는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리스크를 안고 있다. 정치와 이념, 경제를 철저히 분리시킨다는 대원칙 아래 북한을 경유하는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더라도 종잡을 수 없는 북한 정권이 중간에 꼭지를 잠그거나 차단하며 변심할 경우 우리나라는 중대한 에너지 수급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남북한 경제 협력을 기치로 개성공단이 조성되고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됐지만 이념과 군사적 긴장감의 결과물로 하루 아침에 폐쇄되는 과정만 봐도 북한을 통과하는 에너지 파이프라인의 위험성을 짐작할 수 있다.

송유관

러시아에서 출발하는 에너지 파이프라인이 북한을 경유할 때 북한 정권에 배관 통과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 자금이 핵무기 개발 등에 소요될 수 있다는 서방측은 지적을 어떻게 설득시키는가도 숙제다. 북한을 경유하지 않는 동해 해저 배관을 깔아 러시아산 에너지를 들여오자는 의견도 있지만 막대한 투자비용 등을 감안할 때 파이프라인 연결을 추진하는 가장 큰 목적인 경제성이 훼손될 수 있다. 분단 국가인 우리나라는 그래서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도 간단치 않다.

러시아에서 출발하는 에너지 파이프라인 도로를 중국과 일본이 선점해 대한민국만 소외되는 맹지가 돼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주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십수년 동안 논의만 이뤄질 뿐 해답을 찾지 못하는 현실이 그래서 안타깝다.

 


industrial writer GS칼텍스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