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70년대 산업화를 시작한 이래, 에너지와 관련된 정책들이 최근과 같이 주목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대선을 즈음하여 미세먼지, 원자력발전, 전기요금 등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고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 현재까지도 에너지와 관련된 여러 이슈들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과 관련해서는 지진, 안전, 비용, 전기요금 등의 키워드와 관련하여 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마, 안전과 정책 투명성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에너지산업의 발전을 위해 묵묵히 노력해온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반가운 일일 것이다. 국민들의 관심은 정치권으로 그리고 정부로 이어지고, 결국 우리나라의 좋은 에너지정책을 마련하는 단단한 기반이 될 것이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원자력과 전력 등에 지나치게 집중되는 바람에 일부 에너지 산업들은 오히려 이전에 비해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버렸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산업이 석유 산업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적인 고유가 상황 속에서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한 석유 정책부터 우리나라 석유 산업의 국제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까지 정말 다양한 석유 관련 정책들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2015년 하반기에 시작된 저유가 상황 이후 석유 산업은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면서 이에 대한 논의들 역시 슬며시 사그라졌다. 국제적인 추세이자 첨단으로 간주되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이나 전기자동차 산업의 육성 등은 2018년 올해 금방이라도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올 기세인 반면 석유 산업은 벌써 사양 산업으로 접어드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석유 산업은 여전히 우리나라 경제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산업 중 하나로 간과 되어서는 안 된다. 2015년에서 2017년까지 국내 정유 업계는 매년 4억 5000만 배럴이 넘는 석유제품을 수출을 해왔고 2017년 한해 누적 수출 금액 역시 약 300억 달러가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석유화학을 더하면 수출 금액은 더욱 크게 증가한다. 국내 수요의 측면에서도 석유의 최종에너지 원별 비중은 2015년 기준 약 49%로 두 번째 비중이 높은 전력 19%의 약 두 배에 달한다.
석유 산업에 대한 관심이 낮아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장기적으로 석유 수요가 자연스럽게 그리고 급격하게 감소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때문일 것이다. 탄소배출에 대한 국제적 대응, 이에 맞물린 탈화석연료 정책, 전기자동차와 같은 기술의 급속한 발전 등이 석유제품 수요를 빠른 속도로 잠식할 것이라는 예측과 전망이 많다. 특히, 다른 에너지원으로의 대체가 어려웠던 수송부문에서의 전기화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주요 선진국들의 큰 관심사 중 하나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미국 에너지청(EIA), BP 등 해외의 주요 에너지기관과 다국적 기업들 역시 최근 전기자동차의 빠른 시장 확대에 주목하고 있다.
IEA(2017)는 세계에너지전망(WEO)에서 전기자동차의 누적 대수가 향후 2020년까지 연평균 50%의 증가세를 보이고 2025년까지 5천만대의 전기자동차가 누적 판매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리고 2040년 전기자동차의 수는 전체 자동차의 약 15%에 해당되는 2억8천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IA(2017) 역시 2017 국제에너지전망의 기준시나리오에서 2040년까지 승용차의 약 14%, BP(2017)는 다른 기관과 유사하게 2035년까지 전체 승용차의 약 6%에 해당되는 1억대의 전기승용차가 판매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전기자동차 보급률로 봤을 때, 대부분의 기관들은 전기자동차가 2025년 이후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보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될 점 중 하나는 전기자동차의 보급의 상당 부분이 승용차 부문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과, 이마저 누적 차량대수를 감안하면 석유제품의 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IEA(2017)는 전기자동차의 보급으로 인한 석유 수요의 대체가 2025년 일일 0.7만 배럴에 불과하고 2040년 2.5백만 배럴 정도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석유 수요는 석유화학, 트럭, 항공, 운송 등의 부문에서 꾸준히 증가하여 2040년까지 일일 105백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IA(2017)나 BP(2017)와 같은 기관 역시 전기자동차의 보급과 이로 인한 석유 수요에 대해 유사한 전망을 하고 있다.
이들 전망 중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석유 수요의 축소가 전기자동차에 의한 대체보다는 자동차 연비의 개선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BP(2017)에 의하면, 2035년까지 자동차 운행 거리 수요의 증가로 일일 23백만 배럴 수준의 석유제품 수요가 잠정적으로 증가할 수 있지만, 자동차 연비의 개선으로 인해 전체 증가분 중 17백만 배럴의 수요가 축소되며, 전기자동차로 인해 1.2백만 배럴,천연가스 자동차로 0.2백만 배럴이 대체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비 개선으로 인한 석유제품 수요의 축소가 전기자동차 보급으로 인한 대체보다 약 14배가량 크다는 것이다. EIA(2017) 역시 미국 도로 수송용 부문에서 전기자동차 보급으로 인한 석유제품의 수요 감소보다는 트럭에 대한 연비 규제 정책의 효과에 기대를 하고 있다. 전기자동차 보급으로 인한 석유제품 수요의 축소는 당분간 급진적이라기보다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은 듯하다.
뿐만 아니라, 석유화학산업 역시 향후 견고한 성장세가 전망된다. 특히, IEA(2017)는 에틸렌, 프로필렌과 같은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제품의 수요가 장기적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석유화학제품이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 중 하나인 점과 향후 중국 석유화학제품 수요의 증가세를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석유화학제품의 생산량 증가세는 국제적인 수준보다 더욱 가파를 수 있다.
석유화학제품 수요의 상승세, 항공, 트럭, 운송 부문에서의 석유제품 수요까지 감안하여 IEA(2017)는 석유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망은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우리나라의 석유 수요는 가정상업과 발전부문에서 이미 크게 축소된 상황이고, 산업부문과 수송용 부문에 대부분의 수요가 집중되어 있다.
도로수송 부문에서 승용차 수요의 전기화가 상당부분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전체 석유제품 수요는 다른 부문에서의 증가로 상쇄되어 전반적으로 석유제품의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서의 석유 시대 역시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석유 수요는 2040년까지 우리나라의 에너지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수송용 부문에서도 여전히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향후의 장기 전망을 감안하더라도, 석유 산업은 여전히 우리 에너지산업 중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이다.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이며 생활과도 가장 밀접한 에너지원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전기자동차나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육성은 분명히 중요하다. 이에 대해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대부분 자원과 전략 및 정책이 신산업에 집중되어 있는 동안 현재 국제적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제 막 시작된 2018년에는 모든 주요 에너지원에 대한 특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큰 정책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석유 산업에 대해서도 여전히 국내 시장의 효율성 개선, 국제 경쟁력 강화 등 다양한 발전 전략과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