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와 경유, 알고 쓰시나요? 연료유 규격 및 시험법(1)

안녕하세요, 블로그를 통해서는 처음 인사를 드리는 만큼, 자기소개를 먼저 드려야 하겠네요.

저는 GS칼텍스 기술연구소 제품기술연구팀 소속 오창훈 이라고 합니다. 주로 차량용 연료유 관련 업무를 맡고 있고, 앞으로 연료유 관련 주제로 포스팅을 해 나갈 예정입니다. 다소 딱딱한 주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말랑말랑하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아, 물론 관련 질문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리플에 남겨 주시면 성심성의껏, 모르는 내용이라면 관련 자료를 찾아서라도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휘발유와 경유의 차이를 아시나요?

일반적으로 ‘연료유’ 라고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시는 것이 바로 주유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솔린(휘발유)와 디젤(경유)일 텐데요, 막상 “둘의 차이가 뭐지?”하고 물어본다면 명쾌한 답변을 내기는 쉽지 않으실 겁니다.

둘 다 원유의 정제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제품이고, 말 그대로 휘발유는 휘발유고 경유는 경유이니까요.

어떤 분들은 휘발유와 경유를 만드는 일종의 ‘레시피’가 있는 것으로 알고 계신데요, 사실 휘발유와 경유는 어떤 특정한 화학물질의 조합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정한 규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떠한 물질을 포함하고 있던 해당 규격을 만족하는 탄화수소계 화합물이라면 ‘휘발유’, ‘경유’로 불릴 수 있는 것이죠!


휘발유와 경유에도 규격이 있다?

그런데 휘발유와 경유는 우리 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만큼, 규격이 느슨했다간 큰일 나겠죠? 때문에 각국에서는 휘발유와 경유의 물성 기준을 법규를 통해 엄격하게 정해 두고 있습니다.

연료유 규격은 해당 국가의 1)기술/경제 수준, 2)연료유를 사용하는 자동차의 성능, 3)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설정됩니다.

연료유 규격에 국가의 경제 및 기술 수준이 포함되는 이유는 친환경, 고효율의 연료유일수록 뛰어난 기술과 높은 생산비용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 한국의 연료유 규격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최고 수준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석유제품의 경우 차량성능이나 환경에 끼치는 영향 등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제조되기 때문에 차량 성능 저하 및 환경 오염의 원인이 됩니다.

앞서 한국의 연료유 규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한국의 연료유 규격은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 엄밀히 정의되어 있습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가시면 원문을 보실 수 있지만, 내용이 포괄적이기 때문에 제가 아래의 표에 연료유 규격 관련 항목 중 일부를 요약하였습니다.

휘발유와 경유의 구성 성분, 단위, 기준 규격 등을 "간추린" 표 입니다.
휘발유와 경유의 구성 성분, 단위, 기준 규격 등을 “간추린” 표 입니다.

표만 봤는데도 정신 없으시죠? 하지만 말씀 드렸다시피 이건 어디까지나 중요한 것만 추려낸 요약본이라는 점!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이 표와 함께 이야기를 할 예정이니 잊으시면 안된다는 점~~

실제 규격은 훨씬 더 세부적이고 복잡한 항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GS칼텍스와 같은 정유사들은 더 높은 품질의 연료유 생산을 위해 더 세분화되고 강화된 자체 규격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시다구요? 지금부터 제가 차근차근 하나씩, 쉽고, 재미있게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저 복잡한 표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간단한 퀴즈! 하나 드리겠습니다.

휘발유와 경유는 모두 ‘석유’라 불리는 원유에서 파생된 제품들입니다. 그럼 과연 이 원유의 주 성분은 무엇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탄화수소 입니다. 말 그대로 탄소-수소 결합으로 이루어진 화합물들입니다. 그런데 원유에는 이런 탄화수소계 화합물뿐만 아니라 황이나 중금속과 같은 불순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료유 관련 규제 항목은 크게 이런 ‘불순물’의 함량에 대한 규제와 주 성분이라 할 수 있는 ‘탄화수소’에 대한 규제 그리고 연료유들이 내연기관에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들에 대한 규제 이렇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 ‘탄화수소’에 대한 규제의 경우 탄화수소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 성분에 대한 규제와 이들이 모두 합쳐져서 나타내는 거시적인 물성에 대한 규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성능관련 지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위 표에서 흰색으로 표시된, 옥탄가, 세탄가 항목이 바로 그것입니다.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옥탄가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으실텐데요, 휘발유의 성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옥탄가 입니다. 휘발유 엔진에 있어 스파크에 의한 점화가 아닌 자연발화, 흔히 말하는 노킹(knocking)은 엔진성능 저하 및 고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옥탄가는 바로 연료가 이 노킹에 저항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써, 옥탄가가 높을수록 ‘노킹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 고급연료’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름이 옥탄가인 이유는 처음 옥탄가의 기준을 정할 때 이소옥탄의 옥탄가를 100, 헵탄의 옥탄가를 0으로 하여 각 연료의 옥탄가를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옥탄가

옥탄가는 크게 RON(Research Octane Number)과 MON(Motored Octane Number)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RON을 사용하고 미국 및 일부 지역에서는 RON과 MON의 평균값인 AKI(Anti-Knocking Index)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좋은 기름엔 옥탄가가 많다? 숨겨진 다크호스 세탄가!

우리나라의 법규는 일반휘발유는 91, 고급휘발유는 94의 이상의 옥탄가를 만족하도록 되어 있고 실제로는 판매되는 휘발유의 경우 이보다 조금 더 높습니다.

일반휘발유인 Kixx는 92, 고급휘발유인 Kixx Prime은 100 정도의 옥탄가를 가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옥탄가에 비해 세탄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옥탄가가 노킹에 저항하는 정도를 나타낸 지표라면, 세탄가는 ‘얼마나 연소가 잘 일어나는가’를 나타낸 지표입니다. 이는 엔진의 특성에 기인하는데, 스파크에 의해서 점화가 되는 가솔린 엔진과 달리 디젤엔진의 경우 고온, 고압의 상황에서 연료가 분사되며 스스로 연소를 일으키기 때문에 ‘연료가 얼마나 잘 발화하는가’가 중요하고, 이 때문에 연료의 자발화 정도를 나타내는 ‘세탄가’라는 지표를 사용합니다.

옥탄가와 마찬가지로 세탄가도 높을수록 품질이 좋은 연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탄가 규제의 경우 대부분의 국가에서 40후반~50 수준이며 한국의 경우 52이상의 옥탄가를 유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불순물 없는 깨끗한 연료를 위해!

불순물에 대한 규제에 대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표에서 연녹색으로 표시된 부분입니다. 불순물에 대한 규제인 만큼, 당연히 모든 항목이 낮을수록 좋겠죠?

먼저 표에서 휘발유와 경유에 공통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 바로 ‘황(S, Sulfur)’인데요, 황은 원유 채굴 시 수% 단위로 포함되어 있는 대표적인 불순물입니다. 황은 산화하여 황산화물(SOx)를 생성하게 되는데, 이는 산성비의 주 원인이 되는 물질입니다. 뿐만 아니라 차량의 배기가스 정화장치에 있는 촉매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기도 하죠.

이로 인해 연료유 규제에 꼭 포함되는 물질이기도 하며 각 나라의 연료유 관련 규제가 얼마나 엄격한가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1000ppm이 넘는 규제치를 적용하였으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현재는 10 ppm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ppm이 10000%인걸 감안하면 원유와 비교하여 수천~수만분의 1수준으로 황 함량을 낮추는 것이죠!.

휘발유와 경유에 대해서 모두 10 ppm의 황함량 규제를 적용하는 국가는 EU(일부국가 제외), 일본, 호주 정도 밖에 없으니, 한국의 휘발유, 경유 제품은 세계 최고의 규격을 만족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 나라 연료유의 황함량을 나타낸 그래프. 우리나라는 무척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지요! 휘발유(위)/경유(아래).
각 나라 연료유의 황함량을 나타낸 그래프. 우리나라는 무척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지요! 휘발유(위)/경유(아래).

최대 가솔린 sulfur 한계선

표를 보시면 휘발유에는 납(Pb)에 관한 규제 항목이 들어가 있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휘발유 항목에 해당 규제가 포함된 것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휘발유의 옥탄가(설명 드린 걸 벌써 까먹진 않으셨겠죠!)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화합물을 많이 사용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TEL(Tetra Ethyl Lead)이라 성분입니다. 이 때는 납이 포함된 가솔린과 포함되지 않은 가솔린이 모두 팔렸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납의 유해성이 밝혀짐에 따라 오늘날에는 납이 포함되지 않은 가솔린만 판매되고, 휘발유 내부의 납 함량도 엄격히 규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휘발유를 무연휘발유(無鉛揮發油)라고도 하는데, 여기의 연(鉛)이 바로 ‘납 연’자 라는 사실, 모두 알고 계셨나요? 영어로도 납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Unleaded gasoline 이라고 합니다.

주유소

그럼 여기서 “앗 경유 규제에는 해당 항목이 없잖아, 그럼 경유에는 납이나 인 같은 원소들이 잔뜩 들어있는 거 아냐?” 하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지도 모르겠는데, 안심하셔도 됩니다.

처음부터 원유에 들어있는 양 자체도 많지 않으며,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정제과정에서 공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사전에 각종 불순물들(염분, 수분, 기타 침전물과 바나듐(V), 니켈(Ni)같은 금속원소도 포함됩니다)을 다 제거하기 때문에 국내 정유사에서 생산되는 정품 연료유라면 안심하셔도 됩니다.

앗, 벌써 포스팅이 너무 길어진 것 같네요. 다소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인데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는 오늘 못 다룬 내용! 바로 연료유의 99.99% 이상을 차지하는 탄화수소 관련 규제항목 및 관련 시험법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