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이야기 9 – 변해가는 전통주 시장, 변함없는 전통주의 맛

전통주 시장, 변함없는 전통주의 맛

우리 술 이야기 9 – 변해가는 전통주 시장, 변함없는 전통주의 맛

제가 살고 있는 인천 연수구에서 조그마하게 일을 벌려 놓았습니다. 우리 술 전통주를 되살리려면 그 일은 과연 어디서 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생각해 보니 우선 전통주를 맛 조차 보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한 마당에 아무리 우리 술 전통주에 대해 설명을 하고 강연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백 번을 들은들 한 번 맛보는 것보다 못한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소리. 즉, 판소리로 말하자면 명창이 아무리 많은들 그 소리를 들어주는 관객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듯 명창도 중요하지만 귀 명창도 대단히 중요하답니다.

귀 명창이란 소리를 하지는 못하지만 하도 많이 듣다 보니 이제는 소리의 수준을 나름대로 판단하고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귀 명창이 아주 많아서 그 소리에 대한 평판이 높으면 자연 소리꾼의 평판은 높아져 종내는 명창의 명성을 들을 수 있고 예술가로서의 화려한 정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술도 맛을 본 사람이 점점 늘어나서 그 맛을 평가할 수준에 이른 사람이 많을 수록 나쁜 술은 거세되고 좋은 술은 자연 그 평판이 높아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시작으로 우리 술에 대한 술 빚기 강의를 하고 사람들이 우리 술을 직접 자유롭게 맛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연수구 문화원에서 술 빚기 실습과 강의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두어 군데 동사무소에서 단기특강 형식으로 하다가 문화원으로 옮겨 입문반 3개월 전문반 3개월 형식으로 강의하길 어느덧 8기가 입문하는 과정까지, 백 수 십 인의 동도를 배출하게 되었으며 수료한 동도들의 면면도 참으로 다양하였습니다.

이제는 수료한 사람들이 스스로 술을 빚는 지경에 이르러, 그 술의 종류와 질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뛰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술 빚기 동호회원이 늘어난다면 머지않아 전통주의 회복이 이루어질 기미가 조금이라도 당겨질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프랑스나 일본, 중국처럼 우리에게도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훌륭한 술이 나타나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날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바램입니다.

비상식적인 주세법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 주세법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하우스비어라고 집에서 맥주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을 말하는데 주세법에 따르면 분명히 위법입니다. 판매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맥주는 판매가 가능하다고 하며 쌀로 빚은 전통주는 판매가 금지되어 있으니 당최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통주를 집에서 보리로 만들어서 판매하면 과연 국세청은 뭐라 할 지 너무 궁금해지네요. ^^ 왜 외국 술은 가능하고 우리 술은 불가능한지, 또한 각 지방에서 자기네 고장의 이름난 술을 빚어 파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모두가 술 제조 허가를 받은 것은 분명 아닐 터이니 이를 묵시적으로 눈 감고 있는 우리나라의 주세정책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될런지?

그 많던 술독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요? 매 3개월 단위로 전통주 여행을 다니면서 각 지방의 이름난 술을 빚는 양조장들을 볼 때 마다 시설이 형편없이 낙후되어 있고 경영난에 시달리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술을 빚는 장인들은 대부분 나이가 70줄에 들어서 제대로 후학에게 기술이 전수되고 있는 것인지도 걱정이 됩니다. 이 상태로 10년만 지난다면 아마도 그나마 남은 술의 전승이 끊어질까 두렵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중요하다 할 것이며 무엇을 지켜가야 할 것인지? 이런 부분이 저절로 고쳐지도록 마냥 정치인들에게 맡겨만 두어도 좋을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다시 한 번 여론을 환기시켜주시길 바랍니다.

변해버린 한산면, 변하지 않는 그 맛 한산 소곡주

지금부터 대략 일년 전 서른 명 남짓한 인원을 전세버스에 태우고 한산면을 다시 찾았을 때는 한산면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때 만났던 조합장님은 추진하던 일이 시원치 않았는지, 폐교를 고쳐 숙박시설을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옛 학교의 추억을 즐길 수 있게 하겠다던 사업이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하였던지 활기 없이 시들해져 있더군요.

하지만 답사를 갔다 왔던 추진팀이 또 다른 성과를 물어 왔습니다. 동자북 마을이 지난 번에 갔을 때는 양조장 건물을 지어놓고는 각 시설과 기구들이 어지러이 널려만 있었는데 이제는 제대로 정리하여 놓고 한산 소곡주와 불소주를 만들어 판매도 하고 견습도 시켜주며 술에 관한 전시물도 갖추어 꽤 볼만한 관광지가 되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마도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만난 듯 싶었습니다. 우리들은 전통주 기행을 위하여 이곳에 도착하여 정성스레 차려진 식사와 술에 관한 다양한 볼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고장에 서려있는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을 들으며 자그마한 판소리 공연도 펼치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날 차려진 점심은 여태껏 보지 못한 정성 가득한 정찬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곁들여진 소곡주 한 잔. 카아아~ 달고 고소하며 짜릿한 전통주의 맛은 이어진 소곡주 맛보기에서 한산 불소주를 마심으로써 그 절정에 올랐습니다.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이한광(동자북 지킴이)씨는 두해 전에 귀농한 분인데 한산소곡주를 훌륭히 복원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마을의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가 커서 얼마 전 서천군수로부터 표창장을 받는 성과를 이루었답니다.

동자북마을
동자북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선 동자북을 둥둥 두드리는 것이 필수~!

이곳 동자북 마을은 생긴 모양이 동자북 같이 생긴 명당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북소리가 크고 자주 나야 마을이 번성한다고 하여 마을 입구에 엄청 큰 북을 설치해 놓았으며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커다란 북채를 휘둘러 북을 쳐야 한다고 하니 다들 방문하게 되면 한 번 쯤 혼신을 다해 북을 쳐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마을 안쪽 깊숙한 곳에는 신비한 샘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샘이 나는 자리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등과 좌우로 산들이 나즈막하지만 겹겹이 싸고 마을 쪽으로 펼쳐져 있었으며 입구 쪽은 닫 힌듯 열려서 커다란 동자북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한산소곡주, 샘
이 샘에서 훌륭한 한산 소곡주가 나오는 것이겠지요! 마치 자궁처럼 샘을 둘러싼 형태라 한결 포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샘물은 한산 소곡주를 빚는 근원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 일행은 한산 모시전시장을 들러 실제 짜이고 있는 한산모시 실연을 보았으며, 인근의 식물원을 들러 희귀하고 멋있게 가꿔진 정원을 둘러보았습니다. 또한 각자 야생화가 심어진 화분 하나씩 안고는 버스에 올라 뿌듯한 마음으로 귀로에 올랐습니다.

한산 소곡주는 그 명성이 백제 시대부터 있었습니다.
나당 연합군에 패해 당나라로 끌려갔던 의자왕이 그 분한 마음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소곡주를 마셨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때는 한양 땅으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가 소곡주 맛에 반해 마시다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급기야 과거도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후로 소곡주는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명을 한 가지 더 얻었습니다.

또 도둑이 남몰래 집안에 들어왔다가 소곡주를 훔쳐 먹고는 취해 곯아 떨어져서는 그만 잡히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이야기는 소곡주의 명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소곡주는 다른 지방의 이름난 술과 비교해 약간 다른 점이 있답니다.
술을 빚을 때 마른 고추 대여섯 개와 메주 콩 한줌이 꼭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아직 다른 술에서도 이런 재료가 들어간다는 말을 일찍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곡주는 고소함과 목을 톡 쏘는 맛이 다른 술보다는 더 강한 느낌이 들었을까요?

동동주뿐만 아니라 다양한 우리 술을 맛보는 대한민국이 되었음 합니다!

한산면을 여러 차례 들러 다양한 소곡주를 맛 보았지만 한 가지 잊지 못하는 것은 그 때 마을 조합장님이 지나가듯 흘리면서 한 말이 있었는데,

” 내가 여러곳을 다니며 술 맛을 봐왔지만 단상리 어디 쯤인가 정말 맛있는 소곡주 빚는 이가 있다고 하여……”

그가 이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기 때문에 그 뒷말은 들을 수가 없었지만 그 후 몇 년이 흐르도록 왜 이 말이 잊혀지지 않는 것인지. 언젠가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 단상리 어디 쯤에 있을 맛있는 소곡주를 찾아갈 생각으로 가슴 속 한 편에 묻어 두고 있답니다. ^^

다음 글에서는 면천 두견주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두견주 양조장 공장장님에게 두견주 이야기를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벌써 여러 달이 지나도록 지키지 못했네요. 두견주에 어린 이야기 또한 전설따라 삼천리 저리 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