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최근과 같이 에너지 믹스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전 사회적으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과거에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전원 구성에 대한 논쟁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국회 등과 같은 제도권에서 논의되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온도는 지금과 달랐다. 요즈음에는 언론, 시민단체, 지자체, 발전회사, 발전소 주변지역 주민 등 전 국민이 에너지 믹스 논쟁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사의 대표적인 갈등 사례로는 밀양 765kV 송전선 건설 사태, 비교적 오래되기는 했지만 저준위 방사능 폐기장과 관련된 부안 사태, 안면도 사태 등도 있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본격적인 에너지 전환이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의 핵심은 원전과 석탄의 비중을 장기적으로 줄이고, 신재생과 가스의 역할을 증대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언론 지상에 많이 이야기되지는 않고 있지만 강력한 수요관리(효율향상 및 부하관리)의 추진도 고려될 것으로 판단된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본격적으로 분산형 전력시스템 구축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를 기대한다. 비록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분산형 전력시스템의 목표(2029년 발전량 기준으로 12.5%) 등이 수치로는 설정되어 있기는 하였지만 이 부분이 실제로 구현되기에는 한계성이 있었다. 이는 2013년 수립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과거대비 대규모 석탄 및 원전이 신규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신규로 반영될 설비 규모는 원전 11기 15,200MW, 석탄은 무려 27기 23,260MW 수준이었다. 이후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석탄 4기가 취소되었지만, 신규 원전 2기가 반영되어 현실적으로 기저발전기 중심의 확충 계획이었다. 뿐만 아니라, 동해지역과 수도권을 연계하는 765kV 송전망 건설(이후 500kV HVDC 건설 사업으로 변경) 계획은 대규모 생산과 수송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에 분산형 전력시스템의 구축은 사실상 요원하였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분산형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 자원의 계획에의 체계적 반영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지원 대책을 같이 구축하여야 한다. 이는 원가에 바탕을 둔 업종별 전기요금의 정확한 신호 제공을 통한 산업용 소비자의 자가발전 확대와 수요 중심지역에 위치하는 열병합 설비의 편익에 바탕을 둔 지원 수준과 방법의 결정 등도 포함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수요관리의 확대 및 추진 방안의 구체화가 필요하다. 과거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효율향상 및 부하관리가 고려되기는 하였다. 5차 전력수급기본계획부터 정부는 2개의 전력수요예측(즉, 기준 전력수요와 목표 전력수요)을 발표하고 있다. 기준 전력수요는 BAU(Business As Usual)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목표 전력수요는 BAU에 포함된 전력수요관리 행위에 추가적인 수요관리(효율향상 및 부하관리)를 포함하는 것이다. 제7차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29년 최대전력 15GW 수준 감축을 목표하고 있다.
최대수요 감축 수단은 효율향상, 스마트기기 및 요금제도, 부하관리 및 정책의지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각 수단에 대한 보다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미래 정책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지난 수요관리 및 부하관리에 대한 성과계량에 대한 정보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과거 어떤 프로그램으로 얼마만큼의 전력수요를 관리하였는지, 이를 위하여 소요된 비용은 얼마인지 등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적어도 이러한 성과계량을 어떻게 할 것인지, 미래 수요관리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과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미래 전원구성을 구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료, 발전비용, 송전비용, 외부비용(환경비용 등) 및 기타 숨은 비용 등에 대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단시간에 이러한 모든 자료를 제공하기는 힘들겠지만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공개의 시작점은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미래 기술개발에 따른 신재생의 가격 하락 전망, 연료비 전망, 신규 원자력 및 석탄의 투자비 등을 모두 포함하여야 한다. 한편, 이는 정부 주도로 주기적으로 검토되고 갱신되는 절차도 필요하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우리나라 에너지 전환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변화를 위하여 필요한 여건, 정보, 시스템 등에 대한 면밀한 고찰과 시사점이 포함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