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부양 절실한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의 속사정

세계 에너지 시장의 눈과 귀가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좌의 게임’에 쏠려 있다. 지난 6월, 사우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사촌 형제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은 무하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왕세자가 왕권 경쟁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통해 왕권 계승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1932년 건국 이후 한 세기 가까이 이어져 온 왕권의 ‘형제 계승’ 전통이 ‘아들 계승’으로 바뀌었고 이들 사이의 암투로 왕위 계승 서열 2위이던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하루아침에 왕권 계승 서열 1위로 부상했다. 사우디 초대 국왕인 압둘아지즈는 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아라비아반도에 널려 있는 각종 부족을 통합하기 위해 20여 개 부족장의 딸과 정략 결혼했고 44명의 왕자를 낳았다.

고려를 창건한 왕건이 지방 호족들의 세력을 등에 업기 위해 29명의 부인 사이에 34명의 자식을 가지는 스토리와 다르지 않다. 다만 압둘아지즈 국왕은 자신의 대를 특정 왕자의 직계만 승계할 경우 자신의 나머지 아들들이 왕권 탈취 경쟁을 벌일 것을 우려해 수평적 정권 이양 형태인 ‘형제 계승’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는 점 정도가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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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장소 다르지만 역사는 반복?

수평적인 왕권 교체를 통한 평화로운 영속을 기대했던 그의 희망은 국가 건립 이후 80여 년 만에 균열이 발생했고 급기야 손자의 반란으로 수많은 자손이 숙청을 당하는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왕권 형제 계승 원칙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Salman bin Abdulaziz Al Saud) 현 국왕에 이르러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자신 역시 형제 계승 원칙에 따라 80세에 국왕 자리에 올랐고 자신의 이복동생인 무크린을 왕권 계승 1위 자리에 앉히며 형제 계승 원칙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은 불과 석 달 뒤 이복동생을 내쫓는다. 그 자리에 자신의 큰 조카인 무하마드 빈나예프를 제1 왕세자에, 자신의 친아들인 빈 살만을 제2 왕세자로 임명하며 형제 계승 전통에 금을 냈다. 이어 빈 살만 제2 왕세자는 지난 6월, 친위부대를 동원해 빈나예프 제1 왕세자를 감금하고 자신을 왕권 계승 첫 번째 자리에 올려놓았고 이달 들어서는 반부패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자신의 수많은 형제 왕자들과 유력 정치인, 기업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나서고 있다. 9일 기준으로 반부패 혐의로 조사받고 체포된 유력 인사만 201명, 이들이 부정 축재한 것으로 파악된 자금만 최소 1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로 환산하면 112조 원 규모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1/4 수준에 달하는 천문학적 자금이 동결되고 국고로 환수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 이방원에서 초래된 ‘형제의 난’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 역사가 모티브가 된 듯 다른 시대, 장소에서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사람 사는 모습 참 비슷하다. 그런데 원유 부자 나라 도련님들의 왕권을 둘러싼 암투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 사이 세계 경제는 국제유가 변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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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상승 기류 불구하고 반등 더 필요한 사우디

OPEC과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들이 연합해 원유 생산량을 줄이고 유가를 부양시키려는 다양한 실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는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해 왔다. 올해 1월 3일 배럴당 54.65불로 출발했던 두바이 원유 가격은 6월 한때 43.5불까지 떨어지면서 40~50불 초반 수준에 머물러 왔는데 최근에는 60불대를 넘어서고 있다. 두바이유 가격이 1배럴에 60불을 넘어선 것은 2015년 7월 1일 이후 2년 4개월여 만이다. 유가가 확연한 반등세를 보이는 데는 전통 원유 가격의 상승을 저지하던 미국발 셰일오일 개발이 주춤해진 데다 쿠르드 자치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이라크의 원유 수출 차질 가능성, 세계 석유 수요 증가 전망 등 다양한 변수들이 깔려 있다.

그런데 사우디 입장에서는 더 큰 유가 부양이 필요하다. 국가 재정 중 원유 수출 의존도가 절대적인 사우디의 국고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사우디는 탈석유 중심 경제를 선언하면서 경제 체질 개선을 추진 중인데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왕자의 난’을 한가운데서 지휘하고 왕권에 가장 근접한 빈 살만 왕세자는 대중에게 보여줘야 할 업적도 필요하다. 모두 국제유가가 반등해야 해결될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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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코 기업 공개 흥행 위해서도 유가 부양 필요

세계 주요 경제 기관들은 사우디가 내년 재정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제유가 반등이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IMF는 사우디가 내년 재정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불 선에 도달해야 한다고 최근 전망했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사우디 재정 지출 중 외환 보유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유가가 상당 수준 상승해야 할 것으로 분석했다. 세계은행은 사우디 재정 지출 충당 규모가 증가하면서 지난해 말 기준 외환보유고가 2014년~2015년 대비 26% 감소한 5470억 불로 추정했다. 유가가 추락하면서 석유에 의존하던 국가 재정이 조금씩 말라 가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셈이다.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왕자의 난이 대중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서도 유가 부양이 필수적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사회 개혁과 경제 성장의 또 다른 축을 세우겠다는 ‘비전 2030’을 주도하고 있는데 관건은 얼마나 많은 오일머니를 확보하느냐에 있다. 이런 이유로 사우디는 내년 중 세계 최대 에너지 국영 기업인 아람코를 기업공개(IPO)하고 여기에서 확보한 자금으로 ‘비전 2030’의 동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아람코의 지분 5%를 매각해 1000억 불, 한화로 환산하면 112조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제유가에 달려 있다. 국제유가 약세가 유지되면 아람코 기업 공개 흥행이 실패하거나 자금 조달액이 기대했던 수준보다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유가 부양 니즈가 커질수록 사우디를 바라보는 전 세계 에너지 업계의 긴장감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industrial writer GS칼텍스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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