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혁신

지난 20세기, 선진국들이 추구한 에너지 정책의 화두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고르라면 단연코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라고 할 수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선진국들은 경제개발과 안보증대를 위하여 석유를 대표로 하는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원자력발전기술로 대표되는 전기의 개발을 통하여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자국 내 에너지 시스템의 안정적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20세기 중반에 건국한 대한민국 역시 지난 70여 년간 에너지 정책 중심에 바로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정책이 있었다. 특히 1970~80년대 1, 2차 석유위기를 겪으면서 정부의 에너지 안정공급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를 위한 우리나라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국내 석탄의 증산과 천연가스 및 원자력의 도입 등 3가지였다. 이들 3종 세트는 국제에너지 정책 역사에서도 상당히 성공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규로 도입한 천연가스와 원자력은 마침 둘 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가 적게 나오는 에너지원이었기에 ‘주유종탄’으로 대표되듯 석유와 석탄만 있던 우리나라 에너지 믹스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물론 기후환경의 개선까지 함께 이룰 수 있었다.
에너지혁신, 4차산업혁명, 에너지산업, 에너지 정책, 석탄이후 1980년대 하반기에 국제유가가 하락하자 한때 국내 수요의 40%를 담당하던 국내 석탄산업이 합리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석유, 천연가스 및 수입 유연탄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 이후 우리나라 에너지 믹스의 구성은 지금까지 이때의 형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17년과 2018년은 그런데 실로 오랜만에 에너지 부문에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실마리가 마련된 기간으로 평가된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선언과 2018년 여름의 폭염이 그것이다. 에너지 정책에서 안전과 환경 요소의 중요성이, 그리고 먼 섬나라의 문제라고만 여겼던 기후변화 문제의 실제상황 체험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선진국들은 21세기가 시작되자 앞다투어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미국은 2001년, 영국은 2002년, 일본은 2003년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2001~2003년 사이에 장기적인 비전을 포함한 국가에너지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들은 20세기 후반에 지속한 저유가를 바탕으로 국제시장에서 OPEC의 힘이 커지고 있음을 감지하였으며, 또한 20세기 말 논의가 진행된 온실가스 문제가 곧 기후변화협약으로 이어질 것에 미리 대비할 필요를 느꼈다.

유럽은 기존에 확보한 북해유전과 프랑스 원자력에 더하여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를 늘리고 혁신적인 에너지 절약기술 개발을 추진하였고, 미국은 해외유전개발 및 원전 재개 등 공급정책에 더하여 자국에서 생산되는 셰일가스 개발기술의 개발에 투자하였다. 두 진영 모두 기존의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 정책에 더하여 기후변화협약 등 국제적인 에너지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한 것이다. 그리고는 모두 21세기 초에 세운 두 목표를 대략 2015년에는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어 내었다. 에너지 전환을 통한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 증대 및 에너지 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성공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역시 21세기 초반인 2001년과 2002년에 제1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과 제1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발표하였다. 그런데 막상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은 국제원유시장가격이 140달러로 최대치를 기록하였던 2008년 8월에야 발표하였다. 올해 3차에 기본이 준비 중이지만,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목표는 세웠으나 성공한 것은 거의 없다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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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국내에서 벌어진 큰 변환 중의 하나는 바로 4차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초기에는 단어사용에 대한 거부감들이 있었으나, 이제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모두가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즉, 4차 산업혁명은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끌고 갈 미래를 표현하는 가장 뜨거운 용어이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중요 키워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일반인들은 대부분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을 언급할 것이다.

그럼 이들은 에너지 부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우리나라 산업, 특히 에너지 산업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줄까?

2017년 4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ETRI, 서울대, KAIST 등 한국의 주요 반도체 연구 집단이 모두 모여 새로운 유형의 반도체를 개발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바로 뉴로모픽(neuromorphic) 반도체이다. 해당 기업 연구조직의 확대는 물론 정부 역시 연구비를 대폭 증액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반도체 분야의 차세대 연구주제로 선정된 뉴로모픽 반도체는 그럼 왜 선정되었을까? 이걸 알려면 그 유명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살펴보아야 한다.
알파고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실제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기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함께 작동한다. 그러나 알파고의 물리적인 스펙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알파고는 자그마치 1,200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176개의 영상처리장치(GPU), 그리고 920테라바이트의 기억장치를 사용하는 초대형 컴퓨터의 모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청난 전기를 사용한다. 12기가와트라고 자료에 나오는데, 얼마 전에 40년간의 운전을 마치고 문 닫은 고리 1호기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될 때의 규모가 587메가와트이었음을 고려하면, 알파고가 정말 전기 먹는 하마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반면에 인간의 뇌는 20와트면 작동한다. 이세돌은 밥 한 그릇이면 된다.

에너지혁신, 4차산업혁명, 에너지산업, 에너지 정책반도체 및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2040년에는 컴퓨터가 처리해야 하는 정보량이 현재의 약 1백만 배에 달할 것이라 예측하며, 이를 처리하기 위하여 반도체들이 사용할 에너지는 자그마치 1027Joules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화력발전소가 수십억 개는 더 있어야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즉, 전기를 덜 쓰는 반도체가 없다면 4차산업혁명은 이루기 불가능한 것이다. 바로 전기사용량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의 기술 상태에서 4차 산업혁명이 활성화 된다면, 20와트의 에너지로 작동하는 인간의 두뇌를 대신하여 12기가와트의 알파고를 작동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엄청난 전기요금에 아마도 집에 두고 사용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최대 1억분의 1의 에너지만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그래서 우리도, 선진국들도 연구에 나서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1~3차 혁명은 직접 겪지 못하였다. 4차산업혁명이 처음인 것이다. 자, 그럼 우리나라에서 너도나도 빅데이터를 사용하고 인공지능 로봇 하나쯤 집마다 두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발전소를 수십 개 더 지어야 할까? 아무리 뉴로모픽 반도체가 나와도 더 많이 사용해 버리면 소용이 없지 않을 것이니 아예 혁신적이고 새로운 에너지원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4차산업혁명의 성공은 에너지 산업에도 혁신을 가져올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5% 이상을 수입하는 나라이지만, 그렇다고 여름철에 냉방을 하지 못하며 살 이유도 없는 나라이다.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는 사회 미덕이자 국제 경쟁력이지만 단순한 에너지 절약은 그렇지 않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에너지원의 교체가 아니라 공급시스템과 소비방식의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고 국민이 스스로 효율적인 소비생활을 선택할 수 있도록 4차산업혁명의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와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진실로 새로운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진정한 에너지 복지 정책이자 기후변화 적응방안이다. 정부정책과 첨단기술이 국민의 안전과 선택을 보장하여주고 국민은 스마트하게 선택하는, 그리고 국민과 기업과 지자체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대가 빨리 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허은녕 교수,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허은녕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본 콘텐츠는 대한석유협회보 <석유와 에너지>에 기고된 글에서 발췌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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