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도로 배기가스 측정 방식 도입으로 오명 벗는다
지난 6월 기준 우리나라의 디젤자동차 등록 대수는 937만 6000여 대로 한 해 사이 4.8%가 늘었다. 같은 기간 휘발유 차량은 2.9%가 증가하는 데 그쳤고 LPG 차량은 오히려 3.4%가 줄었으니 디젤자동차는 여전히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셈이다.
내연기관 자동차 중 디젤자동차가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비결은 효율 ‘갑(甲)’ 이미지 때문이다. 디젤엔진 특유의 높은 연비는 휘발유 등 경쟁 차량에 비해 뛰어난 연료비 절감 효과를 보장하고 있다. 고연비인 탓에 똑같은 거리를 주행할 때의 연료 소비량이 적어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량도 경쟁 차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같은 유해 배출가스는 커먼레일이나 터보차저 같은 신기술이 적용되고 미세먼지를 포집해 태워버리는 DPF(Diesel Particulate Filter) 장착이 의무화되면서 극복해왔다. 정유사들도 디젤 황 함량을 낮추는 등 연료 환경 성능 개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정부가 클린디젤자동차라는 명칭을 허용하고 환경 친화 자동차 범주에 포함했을 정도다.
디젤자동차는 억울하다?!
지구온난화가 화두였던 시절, 디젤차의 온실가스 저감 효과가 특히 부각되면서 환경 친화 자동차 반열에 서게 됐고 유럽을 중심으로 환경 성능이 더욱 강화된 디젤자동차 개발이 붐을 이뤘다.
전 세계적으로 디젤자동차 시장을 주도해온 유럽은 특히 디젤 자동차 배기가스 환경 기준을 강화하면서 버전(Version)을 높여 왔다. ‘유로(Euro) 기준’이 바로 그것인데 2014년부터 적용 중인 유로 6 기준은 2000년의 유로 3 규제보다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의 배출 허용량이 각각 10%와 16% 수준에 그칠 정도로 강력한 환경 규제 방식이다.
매연여과장치인 DPF는 엔진 배기관에 필터를 장착해 디젤차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강제로 포집하고 태워 없애는 장치로 여과장치가 손상되지 않는 한 매연을 90% 이상 저감할 수 있다. 질소산화물 저감에는 EGR이라는 배기가스 재순환장치와 후처리 촉매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인 폭스바겐 스캔들로 촉발된 미세먼지 이슈로 디젤자동차의 이미지는 급전직하하고 있다. 디젤자동차가 미세먼지 유발 주범으로 꼽히며 졸지에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고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움직임의 빌미까지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디젤자동차는 억울하단다.
폭스바겐 스캔들, 사람 욕심이 문제였다!
‘폭스바겐 스캔들’은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인 폭스바겐이 디젤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다 적발된 사건이다.
자동차 제작, 출시 과정에서는 미세먼지, 질소산화물 등 다양한 배기가스 배출 검사를 통해 법정 허용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그런데 폭스바겐은 인증과 달리 실제 운행 과정에서 배기가스 저감 시스템을 조작했다. 인증 단계에서는 법정 배기가스 배출 기준에 적합하도록 매연저감장치 등을 정상 작동시키고 실제 운행 과정에서는 배출가스 관련 부품의 기능을 떨어뜨리거나 아예 작동이 정지되도록 시스템을 조작한 것이다.
배기가스저감시스템이 작동될 때 연비와 출력, 엔진 내구성이 떨어지는 현상을 회피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한 것인데 이러한 부정이 가능했던 것은 실험실 인증 방식 한계 때문이었다. 현행 배기가스 인증은 안정된 조건의 실험실에서 이뤄진다. 실험실의 차대 동력계에 올려진 디젤자동차는 상온 조건에서 주행 속도를 올리고 내리는 단순한 가·감속 형태의 시험 모드로 평가받는다. 그 허점을 이용해 실험실 내 특정 인증 조건에서는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정상 작동되도록 설정하고 실제 도로주행과정에서는 질소산화물 저감 장치 작동을 최소화시켜 배기가스 배출을 늘린 것이다.
실험실 인증 조건이 실제 도로 운행 과정에서도 지켜졌더라면 디젤자동차의 클린 이미지는 지금도 유효했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과 환경을 위해 사람이 만든 제도가 사람의 부정한 욕심 때문에 외면되면서 사람과 환경이 위협받게 됐고 디젤자동차가 주범으로 몰리고 있으니 디젤자동차는 억울할 만도 하다.
실험실 인증 한계 벗고 실제 도로서 평가받아
다행히 오는 9월부터는 실험실 인증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배기가스 검사 방법이 의무화된다.
WLTP의 경우 EU는 휘발유차·경유차의 배출가스·연비에 모두 적용, 국내는 한-EU FTA에 따라 경유차 배출가스에만 적용(휘발유차 배출가스 및 연비는 한-미 FTA에 따라 미국과 동일)
실제 도로 주행 여건은 얼마나 다이나믹하고 가혹한가?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4계절의 기온 차이가 그렇고 노면 상태나 도로의 구배 차이에 따라 자동차 성능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에어컨 작동이나 운전 습관 등 변화무쌍한 환경적 요인도 자동차에는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실도로 주행 과정에서의 배기가스 배출은 그래서 안정된 조건의 실험실 측정 결과와 확연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환경부는 오는 9월부터 RDE(Real Driving Emission, 실제 도로 배출가스) 인증 제도를 시행하면서 실험실 측정 방식 한계 극복에 나선다. 승용차를 포함한 3.5톤 이하 디젤자동차에 새롭게 도입된 RDE 인증 방식이 적용되는데 디젤자동차 환경 기준을 선도하고 있는 유럽과 동시에 시행된다. 실도로 측정은 도심, 교외, 고속도로가 각각 16km 이상 포함되는 일반 도로에서 급가속, 언덕 주행, 에어컨 가동, 고온·저온 등 다양한 주행 조건이 반영된다. 그 과정에서 ‘PEMS’라고 불리는 이동형 배출가스 측정 장치를 차량에 탑재시켜 배기관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의 배출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게 된다.
실제 도로 주행 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현행 실험실 인증 기준인 0.08 g/kg(승용차 기준)의 2.1배를 초과할 수 없다. 2020년 1월부터 1.5배로 더욱 강화된다. 미세먼지 입자 개수 농도도 동시에 규제되는데 2019년 9월부터 현행 실험실 인증기준인 6000억 개/km의 1.5배를 초과할 수 없게 되면서 환경 성능이 크게 개선된다. 더구나 ‘실험실 인증 따로, 실제 도로 주행 따로’ 같은 제2, 제3의 폭스바겐 스캔들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졸지에 환경 천덕꾸러기가 된 디젤자동차 입장에서 강화된 배기가스 인증 방식은 억울한 오명을 벗을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사람이다. 강화된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환경 친화 기술의 진화 그리고 강화된 기준을 준수하면서 디젤차의 환경 친화 장점을 살리려는 진정성은 역시 사람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