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터키 잇는 터키 스트림, 천연가스 무기화 산물인가?

중동에는 원유가 천지에 널려 있다. 전 세계 천연가스의 약 1/4은 러시아에 매장되어 있다. 심각한 에너지 자원 편중은 때로 에너지 무기화로 이어진다. 에너지 무기화의 심각성을 전 세계가 실감하게 되는 대표적인 사건은 ‘오일쇼크(Oil Shock)’이다. 중동 국가들과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미국이 지원하면서 중동 산유국들이 서방에 대한 원유 수출을 중단해 유가가 폭등하고 수급 불안이 야기된 1973년의 1차 오일쇼크는 대표적인 에너지 무기화 사례로 꼽히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국가 이익을 앞세워 에너지가 무기로 활용되는 일이 여전하다. 러시아와 터키를 잇는 해저 1000km에 가까운 가스관을 건설하는 투르크 스트림(Turk Stream)이 최근 완공됐는데 일각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에너지 무기화의 산물로 해석하고 있다. 투르크 스트림 구축의 배경과 의미 그리고 에너지 무기화와의 연관성을 들여다본다.

에너지 매개로 갈등하기도 화해하기도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서쪽 해안인 아나파(Anapa)와 터키 이스탄불 서쪽 해안인 키이코이(Kigikoy)를 잇는 해저 가스관이 최근 완공됐다. 2017년 5월 착공된 후 1년 반 만이다. 이름도 생소한 두 지역을 잇는 가스관이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는 배경 중 하나는 해저를 관통해 유럽 천연가스 허브가 구축된다는 점 때문이다. ‘투르크 스트림(Turk Stream, 터키 스트림으로 불림)’으로 이름 붙여진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와 터키 사이의 흑해를 가로지르는 총 길이 939km에 달하는 해저 가스관 건설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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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해저 2km 깊이에 1000km에 가까운 길이로 건설된 가스관을 통해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터키로 공급된다.

러시아와 터키 정부는 이 가스관을 연장해 남부 유럽에도 천연가스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에너지가 분쟁의 도구로 사용되거나 갈등 봉합 수단이 되는 것을 동시에 보여 준다는 점도 투르크 스트림이 갖는 화제성 중 하나로 꼽힌다. 과거 러시아와 한 몸이었던 우크라이나, 불과 수년 전까지 러시아와 심각한 갈등을 겪던 터키가 에너지를 매개로 한 쪽은 극단의 갈등에 내몰리고 있고 다른 쪽은 에너지 협력을 이유로 화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에 칼 꽂는 관계에서 우정을 시험하는 사이로!

2015년 11월 24일. 터키군이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하는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시리아 내전에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터키와의 갈등이 악화 일로를 걷는 와중에 터키 정부는 자국 영공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한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을 지지하는 반면 터키 정부는 자신들이 ‘형제’로 생각하는 시리아 소수 민족 투르크멘 반군을 지원하며 야기된 갈등이 전투기 격추 사태로 확대된 것이다.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터키를 ‘테러리스트의 공범’이라고 규정하고 전투기 격추를 ‘등에 칼을 꽂는 행위’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런데 불과 3년이 흐른 지난 올해 11월 1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투르크 스트림 해저 구간 완공식’에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이 사업의 추진은 양국 간의 우정을 시험하는 과정이었다’고 언급했다. ‘등에 칼을 꽂고 꽂히는 관계’에서 ‘우정을 나누고 확인하는 사이’로 반전되는 과정에는 정치적 배경과 더불어 경제적 실리가 바탕이 된 에너지 협력이 매개로 작용했다는 평가이다.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수출이 국가 재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대체하는 새로운 공급 루트가 절실했고 터키는 유럽 천연가스 허브로 부상할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 곳곳에 에너지가 무기화

‘한 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몸’이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즉 소련에 속한 공동체였는데 지난 1991년 소련 해체를 계기로 독립해 이제는 CIS라고 불리는 ‘독립 국가 연합(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의 독립적 구성원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탈러시아·친서방 노선을 걷게 되면서 끊임없이 파열음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NATO) 가입을 추진 중인 것은 러시아 입장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서로 등을 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러시아 턱밑에 미국 중심의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이 시도돼 안보가 위협받게 되고 다른 CIS국가들의 나토 가입 도미노로 이어져 러시아 지배력이 상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2014년에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병합했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함정을 나포한 일련의 사태는 양국 간 극단의 갈등을 바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은 양국간 갈등의 곳곳에서 에너지 무기화 장면이 목격되고 있다는 점이다.

천연가스 유럽 통로, 잠그고 차단하고

유럽에 수출되는 러시아 천연가스 중 80%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건설된 가스관을 경유한다.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되는 천연가스의 심장 역할을 한다면 우크라이나는 동맥에 해당하는 셈이다.우크라이나, 천연가스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가스관을 통해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가스관 설치·운영의 댓가로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통과 수수료를 징수해 국가 재정을 확보하고 있다. 양국은 경제적으로 또한 에너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관계인 셈인데 갈등 국면에서도 에너지가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천연가스 공급 가격을 인상한다는 러시아의 통보를 우크라이나 정부가 인정하지 않자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해버린다. 자국을 경유해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는 가스관에서 천연가스를 훔치고 있다는 러시아 주장에 반발하며 이번에는 우크라이나가 가스관을 잠그며 러시아 천연가스의 유럽행을 막는다.

러시아는 시시때때로 천연가스 가격 인상을 주문했고 우크라이나가 반발하는 과정에서 가스관이 잠기는 극단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양국간 갈등 속에서 천연가스를 공급받지 못한 유럽 소비자들이 애꿎게 엄동설한에 떠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러시아 천연가스는 지배력 강화 위한 무기?

구 소련 연방이 해체된 이후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CIS 국가에게 낮은 가격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해왔다. 한 때 한 지붕 한 식구였던 ‘정(情)’이 오롯이 발현된 순수함이 배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에서 ‘공짜 점심’은 없었다. 러시아는 친서방노선을 노골화하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수시로 천연가스 요금 인상을 통보해왔다. 2009년 1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천연가스 가격을 무려 39% 올리겠다고 통보한다. 2014년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맺은 가스 수출 관세 면세를 폐지하고 가격 할인도 중단하는 내용의 천연가스 공급 가격 인상에 나선다. 소련 연방이 해체된 1991년 이후 오랜 세월 서유럽 국가의 1/3 수준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해왔으니 충분히 배려하지 않았느냐는 것이 러시아가 내세우는 표면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천연가스 가격 할인이라는 ‘경제적 보조’를 미끼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CIS 국가에게 러시아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는 평가이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이나 나토 가입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때 마다 천연가스는 어김없이 무기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가스관 이용 안할 것’ 러시아 장관 예고

러시아 알렉산드르 노박(Alexander Novak)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 2017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를 상대로 에너지 무기화의 결정타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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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노박 장관은 ‘2019년 이후 우크라이나를 통과해 유럽으로 가는 가스 공급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럽으로 수출되는 러시아 천연가스의 가스관 통행 수수료가 국가 전체 수입의 10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정부 입장에서는 엄청난 재정 압박이 예고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우회해 북부·남부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는 대체 루트를 확보해놓고 있다. 2011년 준공된 노르드 스트림(Nord Stream)은 러시아 유즈노 루스코예 가스전(Yuzhno-Russkoye field)에서 출발해 발트해(Baltic Sea) 해저를 통과하는 가스관으로 독일까지 연결되며 북부 유럽 천연가스 공급을 책임지고 있다. 이 가스관은 폴란드와 발트 3국(Baltic states)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도 거친다. 러시아는 노르드 스트림 노선에 추가 가스관을 설치해 수송 용량을 두 배로 늘리는 노르드 스트림 2도 건설 중이다.

우크라이나 천연가스 유통 루트, 터키로 이동

당초에는 남부 유럽 가스 공급 루트로 흑해를 통과해 불가리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헝가리-그리스-이탈리아를 잇는 ‘사우스 스트림(south stream)’이 기획됐지만 설계가 변경되면서 터키를 관통하는 투르크 스트림으로 대체됐다. 이번에 완공된 투르크 스트림의 해저 라인이 바로 그것인데 터키 내수용 가스관으로 활용된다. 터키는 독일에 이어 러시아 천연가스를 두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국가이니 이번 가스관 완공으로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공급 루트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투르크 스트림의 두 번째 라인을 건설해 유럽 남부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투르크 스트림 가스관을 남부 유럽 방향으로 확장하겠다는 의사를 꾸준히 밝히고 있고 구체적인 노선으로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를 통해 오스트리아로 가는 안과 그리스를 통해 이탈리아로 가는 노선을 구체적으로 고려중이다. 이 때가 되면 러시아는 노르드 스트림과 더불어 우크라이나를 우회해 유럽 곳곳에 자국의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갖추게 된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자신의 등에 칼을 꽂았다며 극단의 분노를 표출했던 터키와 손을 잡고 있고 그 덕에 터키는 유럽 에너지 허브를 꿈꾸고 있다. 친서방 노선을 지향한다며 미운 털이 박힌 우크라이나는 소련 연방 아래 형제였던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가스관이 차단당하고 자국내 수급 안정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에너지를 둘러싼 국가 간 이야기들


industrial writer GS칼텍스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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