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유류세를 15% 인하하는 ‘통 큰’ 결정을 내렸다. ‘6개월 한시적 인하’라는 꼬리표가 달렸지만 이번 조치로 2조 원 가량의 세수를 포기해야 한다. 정부가 한시적인 유류세 인하 조치를 취한 것은 이번을 포함해 총 세 차례에 불과하다. 2000년 3월 2일부터 4월 30일까지 약 2개월간 휘발유와 경유 세금을 일부 인하 조치한 것이 처음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에 직면했던 2008년에는 3월부터 10개월 동안 휘발유·경유·LPG 부탄에 부과되는 유류세를 10% 인하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의 6개월 유류세 인하 조치가 세 번째이다. 이번 유류세 인하 논의가 고용 및 경제 상황을 점검하는 경제관계장관회의 의제에 포함된 것도 눈길을 끈다. 그만큼 이례적인 조치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최근의 유가 상승과 내수 부진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서민 부담을 완화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류세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세금 인하 방식과 효과 등을 알아본다.
수송 연료 교통에너지환경세 및 개별소비세 내려
이번 유류세 인하 조치는 수송용 석유제품이 대상이다. 휘발유와 경유, LPG 부탄 등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는 에너지 세금을 15% 내린 것이다. 수송 석유제품에는 다양한 제세공과금이 매겨지고 있다. 휘발유만 해도 원유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부담하는 관세와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지방주행세, 석유수입부과금, 석유판매부과금, 석유품질검사수수료가 징수된다. 여기에 생산, 유통, 소매 단계에 매겨지는 부가가치세가 추가되니 약 8가지 항목의 제세공과금이 부담되고 있다. LPG 부탄도 관세를 기본으로 개별소비세, 교육세, 판매부과금, 안전관리부담금, 품질검사수수료 그리고 부가가치세가 징수된다. 이중 정부가 인하한다고 밝힌 유류세는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개별소비세로 해석하면 된다. 이들 세액이 절대적으로 높고 교육세와 주행세 등이 연동돼 연쇄적인 유류세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휘발유는 교통에너지환경세, LPG는 개별소비세 부과
휘발유와 경유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 LPG 부탄은 개별소비세가 매겨진다. 같은 수송 연료인데 부과되는 세금 명칭이나 세금이 쓰이는 용도가 다르다. 교통세와 개별소비세는 목적세(objective tax, 目的稅)이다. 개별소비세는 귀금속이나 모피, 골프채 등 사치성 상품이나 카지노, 골프장 같은 고급 유흥업장의 소비 억제를 위해 1997년 도입된 특별소비세가 모태로 2007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지금이야 수송용 연료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지만 한때 고급연료에 해당했던 LPG는 1983년부터 특별소비세 부과 대상에 포함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휘발유와 경유는 특별소비세가 도입된 1997년부터 부과 대상에 포함됐다가 교통세법이 제정되면서 세목을 갈아탔고 현재는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부과받고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교통시설 확충이나 대중교통 육성, 에너지 및 자원 관련 사업, 환경 보전 및 개선 사업 재원으로 활용된다. 휘발유나 경유, LPG에 부과되는 세금 모두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오지만 정부가 세원을 어떤 목적으로 운용하느냐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의 명칭이 달라지는 것이다.
탄력세율 적용해 유류세 인하
세금은 잘 쓰여야 하지만 걷는데도 원칙과 명분이 있어야 한다. 법으로 세금 종류와 징수액을 규정하는 것도 원칙과 명분을 확보하려는 조치이다. 교통에너지환경세법에서는 휘발유와 경유의 기본세율을 1리터당 각각 475원과 340원으로 못 박고 있다. LPG부탄도 개별소비세법에 근거해 kg당 252원의 기본 세율이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 ‘탄력세율(Flexible Tax Rate, 彈力稅率)’이라는 장치를 만들어 세정 운용의 묘를 높이고 있다. 탄력세율은 기본 세율을 탄력적으로 조절해 경기나 물가 변동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자원 배분 효율성을 높이는 장치이다.
교통에너지환경세법이나 개별소비세법에서는 ‘유가 변동에 따른 지원 사업 재원 조달 마련이나 경기 조절, 가격 안정 등이 필요할 경우 세율의 100분의 30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유류세 인하 수단으로 탄력세율 장치를 사용한다. 기획재정부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발표한 직후 탄력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의 교통세법과 개별소비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교통세 내리니 교육세 및 주행세도 동반 인하
그런데 애초 정부가 약속했던 유류세 인하 폭과 입법 예고된 법령에서 밝힌 탄력세율 적용액이 다르다. 입법 예고 내용에 따르면 휘발유 교통세율은 리터당 529원에서 450원으로 79원만 낮춰졌다. LPG 부탄 역시 개별소비세율이 kg당 275원에서 234원으로 내리는 데 그쳤다. 탄력세율 조정을 통해 휘발유 유류세가 리터당 111원이 낮아지고 LPG 부탄 역시 리터 환산 시 185원에서 157원으로 28원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정부 발표와 괴리가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개별소비세에 연동돼 부과되는 세금 때문이다. 휘발유와 경유에는 교육세와 지방주행세도 부과되는데 세액 결정 방식이 교통에너지환경세와 연동되어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 부과액을 기준으로 교육세는 15%, 지방주행세는 26%가 징수된다. LPG부탄은 개별소비세액 대비 15%의 교육세가 부과된다.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개별소비세만 조정하면 교육세와 지방주행세는 자동으로 변동되는 구조이다.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개별소비세를 인하했을 뿐인데 실제 유류세 인하폭이 더 큰 이유이다. 유류세 인하는 대상 가액의 10%가 부과되는 부가가치세액이 낮아지는 효과로도 연결된다. 이 때문에 휘발유 1ℓ에 부과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가 79원 낮아졌을 뿐인데 전체 유류세 인하액이 111원으로 늘어나고 부가가치세 반영 효과까지 포함하면 최대 123원까지 세금이 내려가게 된다.
유류세 인하로 288만대 영세 자영업자 수혜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소득 역진성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수송 에너지 세금을 낮추면 배기량이 큰 대형 승용차 소유자들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유류세 인하의 실제 수혜 대상 대부분은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형 승용차 운행자들로 분석되고 있다. 2017년 말 기준 전국 자동차 등록 대수는 2253만대로 인구 2.3명당 1대꼴로 보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승용차를 기준으로 2500cc 미만이 전체의 84%를 차지하고 있다. 2500cc를 초과하는 대형 승용차 비중은 16%에 그치는 셈이니 유류세 인하 효과 대부분은 중소형 승용차 운전자들에게 돌아간다. 연료 소비량이 많은 영세 자영업자들도 대표적인 수혜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자동차 중 화물차 대수는 358만대에 달하는데 이중 영세 자영업자가 운행하는 대표적인 차량인 1t 이하 트럭이 288만대로 80%를 차지하고 있다. 트럭 대부분이 경유를 연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288만대의 1t 이하 트럭 운전자들이 리터당 최대 87원이 낮아지는 경유 유류세 인하 효과를 누리게 되는 셈이다.
유류세 인하 효과, 소비자 전달 과정에 시차 발생
이번 유류세 인하 조치는 11월 6일부터 적용된다. 그런데 유류세 인하 효과가 판매 현장에 반영되기까지는 시차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유류세는 정유공장에서 출고되는 시점에 부과되며 인하된 세율이 적용되는 시작일이 11월 6일이다. 그런데 소매 단계인 주유소에서 보관중인 석유제품은 유류세 인하 이전에 구매한 제품들이니 비싸게 사놓은 휘발유를 당장 리터당 111원을 낮춰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유소들이 일반적으로 1∼2주 정도의 판매물량을 재고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류세 인하 효과가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까지는 그만큼의 시차가 발생하게 된다. 국제유가와 환율도 복병이 될 수 있다. 마침 세계 최대 산유국중 한 곳인 이란에 대한 미국 경제 제재가 11월부터 본격화된다는 점에서 국제유가가 상승할 요인이 높다.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해도 국제유가가 오르면 소비자 체감 효과는 반감된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석유업계는 유류세 인하 효과가 보다 빠른 시점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신속하고 정확한 효과로 서민 부담 완화 기대
국제유가 변동이라는 외생변수는 정부나 석유업계가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승 기류를 타지 않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다만, 유류세 인하 효과가 주유소 현장에 신속하게 전달되는 것은 석유업계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정유사 사업자단체인 대한석유협회를 비롯해 석유 도소매 사업자단체인 한국석유유통협회,주유소협회 등은 유류세 인하 효과가 소비자에게 조기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유류세 인하 효과가 정확하고 신속하게 소비자에게 전달되는지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마련중이다. 일별 가격 보고 제도를 통해 주유소와 충전소 가격에 유류세 인하분이 적시에 반영되는지를 모니터링하고 정유사와 주유소 간 가격 담합 여부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단체들도 석유 물가 감시 활동에 나선다. 정부의 통 큰 유류세 인하 조치가 시장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돼 내수 부진 만회와 서민 부담 완화 효과로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