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물론이고 기업, 국가 모두를 움직이는 동력이 바로 에너지(ENERGY)이다. 동력이 떨어지면 멈춰 서고 생명력을 잃게 되니 사람이 살아가고 기업과 국가가 경영되는데 에너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에너지만 있다고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 어떤 에너지가 어떻게 공급되고 사용되느냐의 설계가 중요하다.먹고 사는 것을 초월해 잘 먹고 잘사는게 중요해지면서 사람들은 신체 활동과 대사에 가장 적합한 에너지를 조합해 공급하는 데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같은 열량 영양소는 물론이고 비타민 같은 조절 영양소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인체 활동과 신진대사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 수천만 명이 살고 있고 수백・수천만 기업이 활동하는 국가의 에너지 설계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수립 중인 제3차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국가 최상위 에너지 행정 3차 계획 수립 중
우리 정부는 5년 주기로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을 수립한다.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근거해 향후 20년 동안의 에너지 계획을 만드는 국가 에너지 최상위 행정 계획인데 올해 3번째 계획이 만들어진다.
2019년부터 2040년까지 20년 동안의 대한민국 에너지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이 계획의 기본 틀이다.
살을 덧붙여 설명하자면 어떤 에너지를 얼마나 소비하고 공급량과 공급 방식은 어떻게 구성하며 그 과정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에 대한 장기 로드맵이 담기게 된다.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공급과 사용이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의 대전제로 부상 중이다.
실제로 2014년부터 실행된 제2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에서는 ▲ 총괄 ▲ 수요 ▲ 전력 ▲ 원전 ▲ 신재생에너지 등 5개 분과가 설치돼 각종 정책 과제를 논의, 도출했다. 그런데 이번 3차 기본계획에서는 ▲ 총괄 ▲ 수요까지만 2차 계획과 같고 ▲ 갈등관리・소통 ▲ 공급 ▲ 산업・일자리 분과가 새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차별화된다. 2차 계획에서 핵심 논의 대상이었던 전력, 원전, 신재생에너지 분과를 3차 계획에서는 ‘공급’이라는 큰 틀의 한 개 분과로 통합시켜 논의한다.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갈등관리・소통 분과’의 신설이다. 다양한 이해관계로 야기되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집중형 발전 방식에서 분산형으로 ‘전환’
현 정부가 지향하는 에너지 정책 기조는 ‘에너지 전환’이다.
에너지 전환 정책의 틀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탈원전을 목표로 단계적으로 원전을 축소하는 것이 한 가지이고 노후 발전소를 폐지하고 신규 건설을 중단하는 등 석탄 화력발전을 줄이는 것이 또 다른 한 가지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에 20%까지 확대하는 것이 또 다른 축이다. 에너지 공급 안정과 환경성을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인데 3차 에너지 기본 계획에는 에너지 전환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들이 녹아들게 된다. 계획 수립을 주관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민 중심의 에너지전환 과제 도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에너지 공급 체계도 큰 틀의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의 전력 공급 시스템은 특정 지역에 집중된 원전・석탄 화력 등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송배전망을 통해 전국 각지에 전달하는 이른바 ‘중후장대(重厚 長大) 집중형’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3차 계획에서는 ‘중소 규모 분산형’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고되어 있다. 태양과 바람, 지열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중소 규모 발전 시스템을 구축하고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는 분산형 전원 시스템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경우 원전이나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이 자연스럽게 해소되면서 신재생에너지 비중도 늘릴 수 있게 되니 양수겸장((兩手兼將, 양쪽에서 동시에 하나를 노림을 비유적으로 이름)이 되는 셈이다.
내연 기관차 중심에서 그린카로 ‘전환’
수송에너지 부문에서도 탈석유 기조가 더욱 명시적으로 언급될 가능성이 높다. 화석연료 기반의 내연 기관 자동차를 대신해 전기차와 수소차 등 이른바 그린카의 보급 확대에 속도가 붙으면서 수송 분야 화석에너지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오는 2022년까지 총 35만대의 전기 승용차를 누적 보급하겠다는 로드맵을 재확인했다. 이때까지 수소차도 대형버스 1000대를 포함해 1만5000대를 보급된다.
전기・수소차 보급을 확대하겠다는 정부 정책의 밑바탕에서 재정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이 깔려 있다. 정부는 전기차 구매 단계에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오는 2022년까지 이 지원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수소차는 ‘대량 생산에 따른 규모의 경제가 실현될 때까지는 보조금을 유지하겠다’고 밝혀 수소차 구매 단계에서 상당 기간 정부의 재정적 보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전기・수소차 구매 보조금에 더해 에너지 요금 인센티브도 유지된다. 전기차 충전 요금은 2019년까지 기본요금은 면제되고 전력량 요금은 50% 할인 공급된다. 이후의 인센티브 계획은 밝히지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충전 요금 지원 철회는 전기차 구매자들의 저항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것이 유력하다. 수소 충전 요금은 동급 내연기관 차량과 대비해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추겠다고 밝혔다. 그린카의 대명사격인 전기・수소차가 늘어 날수록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등 유해 배기 물질이 줄어들 수 있으니 환경과 보건 개선에 유익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에너지전환정책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탈원전과 석탄 화력 축소 등의 에너지 전환 정책 지지도는 매우 높다. 현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사)시민환경연구소가 환경・에너지 분야 전문가 100인을 대상으로 관련 정책 성적을 설문 조사했는데 가장 잘한 것 1위로 ‘탈원전 에너지 전환 로드맵 수립’이 꼽혔다.‘노후 석탄 화력발전소의 조기 폐쇄’는 두 번째로 잘한 정책으로 지목됐다.
그런데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서 잘못한 것 중 1위로 ‘전기요금 인상 없는 에너지 전환 표방’이 꼽혔다. 전력 생산 단가가 낮은 원전과 석탄 화력발전 비중을 줄이면서 전기요금이 인상되지 않는 모순을 에너지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발전 원별 단가는 kWh당 원자력이 67.9원으로 가장 낮았고 석탄 화력이 73.9원으로 뒤를 이었다. LNG는 99.4원, 신재생에너지는 186.7원으로 상대적으로 크게 높은 모양새다.
원전과 석탄 화력의 발전 단가가 낮은 이유가 낮은 세금 부과 구조 때문이다. 원전 발전 원료인 우라늄에는 한 푼의 세금도 부과되지 않고 있다. 석탄 화력 원료인 유연탄은 관세, 수입부담금, 안전관리부담금이 모두 면제되고 kg당 36원의 개별소비세만 부과된다. 반면 LNG는 kg당 60원의 개별소비세에 더해 관세 3%, 수입부담금과 안전관리부담금이 각각 24.2원과 4.8원 추가 부과되고 있다. 등유는 더 많은 제세 부과금을 부담받고 있다.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담보 받기 위해 당장은 ‘완전한’ 탈원전・탈석탄을 실행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우라늄과 유연탄 과세를 현실화시켜 타 발전 방식과의 생산 원가 형평을 맞추고 이로 인해 인상되는 전기요금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에 대한 언급이 3차 국가 에너지기본계획에 전제되는 것이 필요하다.
운송수단의 경제성과 친환경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필요
수송에너지 분야에서는 전기・수소차 역할 확대와 관련한 사회적 검증과 합의가 필요하다. 이들 그린카에 사용되는 동력 에너지인 전기와 수소의 친환경성 여부를 두고 회의적인 시각들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김재경 연구위원은 올해 초 발표한 ‘자동차의 전력화(electrification) 확산에 대비한 수송용 에너지 가격 및 세제 개편 방향’ 연구에서 ‘전기차는 배기가스 무배출 차량(Zero Emission Vehicle)이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원유 추출(Well)에서 차량 운행(Wheel)까지의 전 과정인 ‘Well-to-Wheel’ 과정을 분석하면 전기차에서는 휘발유 차량에서 배출되는 유해 배기가스 중 온실가스는 53%, 미세먼지는 92.7%가 발생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재경 연구위원은 전기차가 배기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제1종 저공해자동차’로 지정해 구매와 운행 단계의 다양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동차 자체는 무공해일지언정 에너지 생산, 소비 과정에서 내연 기관 자동차에 버금가는 오염물질을 배출한다는 지적은 외면할 내용이 아니다. 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구매 과정에서 정부 재정이 지원되고 에너지 충전요금은 원가 이하로 공급되면서 보급 확대가 장려된 결과는 에너지 전환 그리고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의 전체적인 틀을 왜곡하고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약이 오히려 독이 되거나 영양소가 과해 낭비로 이어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체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균형 잡힌 처방 아래서 조화로운 에너지 설계가 이뤄지는 제3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