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이들의 복잡한 속마음, 예술공연 사례로 알아보다 [교실힐링]

어린이들의 한 뼘 친구 마음톡톡이 마음치유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드립니다.

일곱 명의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자기가 직접 그린 친구의 얼굴 그림을 들어 올리며 그 친구를 또박또박 소개합니다. 소개가 끝난 뒤 그 친구에게 그림을 건네주고 나면, 그림을 건네 받은 아이가 또 다른 친구를 소개하러 무대 중앙으로 나옵니다.

마음톡톡에 참여한 아이들이 자신의 그림 작품을 들고 서 있다 1

(그림을 들어 보이며) 제 친구를 소개합니다. 친구들의 말에 화를 내고 흥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마음이 여려서 상처받는 친구입니다. 제 친구의 이름은 유연경(가명)입니다.

이 일곱 명의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은 그림과 소개가 전부였습니다. 다른 어떤 연극적인 장치도, 반전의 묘미도 없었지요.

그런데 특별히 재미도 없고 낯간지러운 무대를 끝내면서도, 어쩐지 아이들은 부끄럽거나 민망한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무대를 감상한 반 친구들도 환호와 격려의 박수를 크게 보내 줍니다. 이 공연은 대체 어떤 것이길래 이렇게 진지했던 걸까요?


나와 친구들의 특별한 공연 ‘교실힐링’

마음톡톡에 참여한 아이들이 자신의 그림 작품을 들고 서 있다 2

마음톡톡 교실힐링은 중학생들의 건강한 또래관계와 사회성 향상을 목적으로 한 집단당 10명 이내로 구성하여, 1학년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예술치유 프로그램입니다.

교실힐링 기간동안 아이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합니다. 흔히 공연이라고 하면, 무대에 올릴 이야기를 잘 만들어야 될 것 같고, 연기도 잘해야 될 것 같지만, 교실힐링의 공연은 조금 특별합니다.

교실힐링에서 공연은 단지 연기 실력을 뽐내는 무대가 아니고, 화려한 의상과 맛깔난 대본으로 재미를 주기 위한 무대도 아닙니다. 열 두번 동안 만나게 되는 교실힐링 시간 동안 자신의 속마음을 친구들에게 드러내고 서로에게 공감했던 내용들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자리인 것이지요. 학생들이 그렇게 마음을 열고 진지한 모습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예술치료사 선생님들이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너의 이야기가 궁금해 : 망가진 인형 독백 공연

핀조명 속에 한 여학생이 의자에 앉아, 각각의 질문에 어렵게 입을 떼며 차분하게 대답해 나갑니다. 마이크 없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얘기를 이어가지만, 반 친구들은 이내 진지한 이 학생의 이야기에 몰입합니다.

아이 두 명이 무대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

너는 누구니?
“나는 망가져버린 인형이야. 내 주인은 나를 너무 아껴서, 염색해줄려고 머리를 다 뽑아버렸는데,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되었어.”

지금도 이쁜 너를…주인이 너한테 왜 그랬을까?
“주인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지는 않은 것 같아.”

새로운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바라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어.”

이 집단이 준비한 공연은 바로 ‘망가진 장난감’ 이야기입니다. 망가진 장난감은 자기가 상처받거나 싫은 감정을 크게 느꼈던 기억들, 자기가 남한테 상처를 줬던 기억들을 떠올려, 스스로가 망가진 장난감이 되어보고 감정을 대입해보는 예술치유 활동입니다.

망가진 장난감이 되었을 때, 주인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기에 망가져버렸는지, 주인이 왜 나한테 그랬는지, 새 주인을 만난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를 하나하나 스스로 탐색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마음 상태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아이 한 명이 무대에 앉아 연극을 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교실힐링 시간에 집단 안에서 나누었던 ‘망가진 장난감’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와 이번 무대에서 반 친구들 앞에 선보이기로 한 것입니다. 8명의 학생들이 돌아가며 빈 의자에 앉아 각자의 ‘망가진 장난감’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대본없이 즉흥으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다소 어눌해도 자기 안의 목소리로 말하기 때문에 강한 흡입력이 있습니다. 저건 분명 망가진 인형의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본인도, 듣는 반 친구들도 그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이 일어납니다. 무대 위에서 시작된 조그만 목소리는 이내 반 전체로 번져나가 커다란 하나의 감정의 끈이 만들어졌습니다.

반 친구들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의 진솔한 모습을 보면서 놀랐겠지만, 이야기를 들려준 학생들도 친구들 앞에서 자기 안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는 자신의 모습에 놀랐을 것입니다.


내 안의 두려움을 넘어 : 카피캣 연극 공연

검은 개가 짖고 있는 모습

“오 마이! 티라노사우르스만한 검둥개다! 여기 집채만한 검둥개가 있어!”

한 집단이 선 보인 ‘카피캣과 검둥개’라는 제목의 공연입니다. 개성없는 카피캣들이 모인 마을에 무서운 검둥개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다들 몸을 숨기느라 난리가 났네요.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정작 무대에 검둥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검둥개는 정말 있는 걸까요?

“카피캣 7호. 뭐하는 거야? 불 꺼!”
“에이 겁쟁이들. 내가 확인해볼게.”
“우리까지 위험해질 거야. 안돼!!”

카피캣 7호는 어둠 속의 검둥개와 마주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말을 건넵니다.

“나랑 같이 놀래?
날 따라오려면 몸을 작게 만들어야 될거야”

두려움의 대상인 검둥개를 작고 귀여운 검둥개로 만드는 결정적인 한마디였습니다. 검둥개를 실제로 보게 된 나머지 카피캣들도 실제로 보니 하나도 안 무섭다며 가슴을 쓸어내렸죠. 이제 마지막으로 카피캣들이 돌아가면서 반 친구들 앞에서 독백을 합니다.

아이들이 의자에 올라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저는 여러분들이 본 것처럼 새로운 환경에 위축되지 않고 도전하며 당당히 살 거예요.”
“저의 자신없음과 외로움을 극복하고 ‘아이언맨’ 같은 자신감과 용기를 가질 거예요.”
“불안함을 극복하고 성실함과 자신감으로 파워킥을 날리는 ‘호날두’가 될 거예요”
“남들에게 의존하는 맘을 버리고 나의 힘으로 해내는 ‘캡틴 라이언’이 될래요.”

검둥개는 자기 안의 두려움을 상징합니다. 자기 안의 검둥개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 불안함, 자신감 부족 등 그 형체가 모두 다릅니다. 검둥개가 무섭다고 피하는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 사실은 그 개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이 학생들은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반 친구들 앞에서 내 안의 검둥개를 받아들이고 극복하겠다는 다짐을 외치고, 수용받는 경험을 하게 된 이 학생들에게 교실힐링 공연은 아주 특별한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보여주기 위한 공연이 아닌 치유받는 공연

이외에도 집단마다 특이하고 다양한 형식과 내용이 담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와 내 집단 친구들이 교실힐링 시간동안 만나온 이야기는 그 학생들만이 유일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한 이야기니까요.

아이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반 전체가 모두 모여 오늘 하게 된 공연에 대한 소감과 친구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나누는 전체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명수의 저런 모습은 처음 봤어요’, ‘교실에서는 보지 못했던 친구들의 진지한 고민이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교실힐링 하면서 친구들하고 더 깊게 친해지게 된 것 같아요’ 등의 피드백들이 오고 갔습니다.

놀라운 것은 창피했다거나, 공연을 망친 것 같다거나, 무대가 부담스러웠다 등등 공연과 연기에 부담을 느낀 피드백은 단 한명도 얘기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학생들이 공연을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무대에서 자기 안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면서 치유받는 자리임을 깨닫고 체현하게 된 것입니다.


교실의 모습

이제 공연이 끝나면서 교실힐링은 한 회기만 남아있습니다. 교실힐링은 곧 끝이 나고 학생들은 다시 평소의 학교생활 속으로 돌아가겠지만, 그동안 교실힐링 시간을 통해 나를 탐색하고, 친구들과 깊게 고민을 나누었던 경험, 그리고 공연을 통해 나의 감정과 마음을 자신있게 드러내고, 친구들의 이야기에 공감했던 경험은 분명히 학생들의 남은 학교생활에 건강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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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사용된 학생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