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 과학과 우리 술 – 쌀과 누룩으로 우리 술 빚기
발효 과학, 김치뿐만 아니라 우리 술에서도 만날 수 있는 조상의 지혜입니다. 우리 술을 빚기 위해선 발효 과정이 꼭 필요하지요. 그러므로 우리 술을 빚는 작업을 하기 전에 우선 발효의 원리를 간단하게나마 알아야 겠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발효 과학. 그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어떻게 그 옛날부터 대륙과 바다를 건너 비슷한 원리로 술을 빚었는 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자, 이제 발효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볼까요?
발효(fermentation)란 무엇일까요?
흔히 부패와 변패 그리고 발효를 두고 여러 가지 구분하는 설이 많지만 사실 무척 간단한 것입니다. 부패(putrefaction)란? 단백질 식품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거나 변질된 것을 좁은 의미에서의 부패라고 부르며, 탄수화물 또는 지질이 분해되어 변질이 된 경우를 변패(deterioration)라고 구별하기도 하지요. 또한 미생물의 작용으로 유용한 생산물을 만들거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발효, 유해한 경우는 부패라고 구별하기도 합니다. 즉, 좋은 것은 발효, 나쁜 것은 부패라고 생각해 두면 간단한 것이죠.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미생물에 의한 작용이랍니다.
수 많은 종류의 미생물이 있습니다만 술이 되는 과정에 작용하는 것은 효모라고 불리어지는 곰팡이의 종류랍니다. 그리고 효소란 놈에 의하여 제일 먼저 녹말이 당분으로 변화되고 당분은 효모에 의해서 알코올로 변환되는 것이 술이 되는 과정입니다.
흔히 밥을 입에 넣고 오랫동안 씹으면 단맛이 나는 원리는 우리 인간의 침 속에는 아밀라아제라는 효소가 있어 이 효소가 밥에 있는 녹말을 분해하여 당분으로 변환시켰기 때문이며, 엿기름을 이용하여 식혜를 만들 때 엿기름 속에는 보리가 싹을 틔울 무렵 내부에서 효소가 생성되는데 그 효소가 작용하여 밥 속에 있는 녹말을 당분으로 변환 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당분으로 변한 물질을 미생물인 효모가 에너지원으로 섭취하여 산소가 풍부한 환경하에서는 자가증식을 하고 산소가 부족한 환경(밀폐 시)하에서는 당분을 알코올로 변환시킨답니다.
세계에 퍼져 있는 다양한 발효법
이렇게 우리 술은 효소와 효모에 의해 발효가 동시에 진행되는데 이러한 방법은 서양의 술 빚는 방식과 많이 다릅니다. 서양의 대표적인 술로서 위스키와 브랜디를 들 수 있는데 위스키는 몰트 즉 보리가 발아되는 순간 분쇄한 것을 말하는데, 우리의 엿기름과 흡사하지요. 몰트를 이용하여 술을 빚고 이 술을 증류한 것을 몰트 위스키라하며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스카치 몰트 위스키, 여러 양조장에서 빚은 술을 합쳐 섞은 술이라면 브랜디드, 아니면 심플한 몰트 스카치 위스키라고 부른답니다. 또한 브랜디는 포도주를 빚은 다음 그 포도주를 증류한 술을 브랜디라고 부른답니다. 각설하고,
여기서 브랜디의 경우처럼 포도에 있는 당분을 이용하여 바로 발효를 시키는 방식을 단발효라고 부르고 위스키나 맥주처럼 곡물을 이용하여 술을 빚되 일단 곡물 속에 있는 녹말을 효소를 이용하여 당질로 변환시키고 그 다음 순서로 효모를 이용하여 당질을 알코올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단행 복발효라고 부른답니다.
자, 이렇게 복잡한 설명을 일일이 한 이유는 우리 술의 다음 과정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술의 경우에는 곡물에 효소와 효모가 동시에 작용하여 일견 당질을 만들고, 일견 알코올을 만드는 작업이 모두 거의 동시에 일어난 답니다. 그래서 우리 술을 병행 복발효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런 병행 복발효가 가능해진 이유는 술을 빚을 때 넣는 누룩 때문이랍니다. 서양에서는 누룩이란 물질을 잘 사용하지 않으나 동양에서는 누룩을 이용하여 술을 빚는답니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이 누룩을 사용하여 술을 빚습니다.
동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술맛의 이유 – 누룩
누룩이란 말이 많이 등장하는데 누룩은 밀이나, 보리, 쌀 등의 곡식을 이용하여 곰팡이균, 즉 효모를 기생시켜 띄우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옛 고서를 뒤져 보면 수 많은 누룩의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답니다. 하지만 그러한 누룩 가운데 요즈음은 거의 밀을 이용하여 누룩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재래 시장에 가면 누렇고 커다란 피자나 도넛처럼 생긴 것을 할머니들이 만들어 파는데 이것이 재래 누룩입니다.
누룩의 역가, 즉 발효시키는 힘이 천차만별이라 자칫하면 술 빚기에 실패할 우려가 많습니다. 그 보다 나은 것이 개량누룩이라고 하는 것인데 누룩의 힘을 훨씬 더 강하게 키운 것으로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금정산성 누룩, 소율곡(송학곡자), 상주곡자, 진주곡자 등이 있습니다. 흔히 전통주는 이러한 누룩을 사용하여 많이들 빚는답니다. 그리고 바이오 누룩이라고 있는데 종균을 집중 배양하여 그 엑기스만 모은 것(흔히 술 약이라고도 함)으로 적은 양으로도 엄청나게 힘이 강하여 술을 빚기에는 실패할 우려가 없으나 맛이 단순하고 풍미가 적습니다.
또한 형태를 가지고 누룩의 종류를 구분하면 병국(떡누룩)과 산국(흩임누룩)으로 나누는데 병국이란 떡 ‘餠’자를 써서 병국이고 산국은 흩어질 ‘散’자를 써서 산국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이러한 누룩을 모두 사용하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 병국을 사용하여 주로 술을 빚었고 산국은 일본에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일본의 경우 전국 신주 감평회를 통해서 발굴된 질 좋은 효모를 ‘협회 X호’라는 명칭을 붙여 전국의 구라모토라는 술도가에다 공급하여 확산 시키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우리 나라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국가의 지원도 탁월하여 술 만드는 환경이 훨씬 낫습니다. 현재 일본은 협회 15호까지 만들어져서 배포되고 있어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처지는 쪽박이나 깨지 말랬다고 돕지는 못할 망정 박해(?)를 하지 않는 것 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 처지랍니다. 세상천지에 주류연구소가 국세청 산하에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지……
쌀을 이용한 우리 술 빚기
하여튼 섭섭함을 뒤로하고 이제는 우리 술을 빚어 보아도 좋을 만큼 충분한 바탕이 되었다고 보여지니 맛있는 우리 술을 한 번 담아 봅시다. 먼저 쌀을 이용한 우리 술 빚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대략의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쌀씻기 > 쌀불리기 > 물 빼기 > 식히기 > 누룩과 섞기 > 술안치기 > 발효 > 술거르기 > 숙성하기 > 마시기
가장 기본적인 과정입니다. 먼저 쌀 1kg을 기준으로 필요한 발효통(항아리, 스테인리스 통, 플라스틱 통 등)은 대략 4리터 분량이면 충분합니다.
술 담아보기
쌀 1kg, 생수 1리터, 누룩 200g, 찜통, 주걱, 술베, 채, 발효통(4리터들이), 저울, 큰 대야.
1. 내부가 잘 소독된 플라스틱 발효통 1개를 마련하고 쌀을 씻되 정성을 들여 깨끗하게 뿌연 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씻습니다.
2. 다음은 쌀을 대략 4시간 정도 물에 불립니다.
3. 불린 쌀을 1시간 가량 물 빼기를 하고 찜통에 넣어 찝니다.(약 40분 정도)
4. 짤 쪄진 고두밥을 차갑게 식힙니다.
5. 발효통에 고두밥을 넣고 생수거나 정수된 물 1리터를 붓습니다.
6. 누룩 200g 정도를 넣고 잘 섞습니다.
7. 뚜껑을 느슨하게 닫고(꽉 닫으면 압력 때문에 위험함) 대략 이틀 반 정도를 두는데 하루에 두세 번 정도 공기를 넣고 저어준다.
8. 발효가 진행되면 처음에는 고두밥이 물을 모두 빨아들여 물이 하나도 없으니 차츰 물이 늘어나면서 부글거리며 끓기 시작함.
9. 최고로 끓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저어주는 것은 하지 않고 발효가 모두 끝날 때까지 그냥 둔다.
10. 위에 맑은 술이 고이는 것이 보이면 발효를 중단하고 술을 채로 거른다.
11. 거른 술을 다른 통에 담고 냉장고에 두어 3일정도 숙성시킨다. (완성)
위에 거론된 술 빚는 방식은 그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술 빚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술을 우리는 모래미 술, 원주, 젓내기 술이라고 부릅니다. 채로 거를 때 물을 부어 섞어가면서 걸러내면 그 도수가 현저하게 낮아지는데 우리는 이 술을 막걸리라고 부르니 모래미 원주와는 그 알코올 도수가 1/2 정도 차이가 난답니다. 원래 우리 술은 당분이 많아 달달한데 막걸리의 경우 물을 타면서 효모의 활동이 왕성해져 술 속의 당분을 모두 먹어치워 당분이 남아나질 않아 맛이 퍽퍽하고 쓴맛이 납니다. 그리하여 단맛을 더하기 위해 효모가 분해할 수 없는 인공감미료를 타게 되는 것입니다.
막걸리 자체로도 영양이 풍부한 술인 것은 틀림없으니 몸에 해로운 인공감미료를 탐으로 인해 막걸리는 옛날 조상님들이 빚던 옛 방식의 막걸리가 아닌 일본식 산국으로 빚어 만들어져 마침내 국적불명의 술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랍니다. 따라서 막걸리는 우리 나라에서 만든 서민적인 술이기는 하되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빚던 그런 술은 아니라는 이야기이지요.
제가 위에 거론한 방식대로 술을 빚어 본다면 여러분들께서는 술 빚기 과정의 입문과정 가운데 비로소 첫걸음을 디디게 되신 것이랍니다. 아마도 기대보다는 만들어진 술이 그다지 맛이 없을지도 모르나 일반 막걸리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가 나죠. 아울러 우리 술의 본격적인 과정을 모두 배우게 된다면 그 때 만들어지는 술은 우선 맛과 향이 좋고 풍부한 유산균으로 인해 장에 좋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는 우리 술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옛날 우리 사대부 가문에 면면히 전해져 내려오던 한류음식 가운데 백미인 우리 술 전통주는 그 멋과 맛과 향에 있어서 세계 어느 나라의 술보다도 경쟁력이 있음을 백문이 불여 일견이 아니라 맛을 보게 된다면 제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리라 장담합니다.
다음에는 전국에 있는 유명한 우리 술과 주막에 대한 이야기로 지면을 이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