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수출전쟁과 동북아 Oil Hub를 꿈 꾸는 대한민국

치열한 수출전쟁과 동북아 Oil Hub

 ‘정유사 올해 국내수출 주도’, ‘무역의 날 시상 독차지’, ‘석유제품 무역 1조달러 1등공신’ 등 수출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석유제품이 단연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GS 칼텍스도 작년 200억불 수출에 이어 올해는 250억불 수출 달성으로 국내를 대표하는 석유 및 석유화학제품 수출기업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죠. 대규모 시설투자, 특히 고도화 시설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IT, 자동차 수출에 비해 석유제품 수출을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는 것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석유제품은 만질 수 없고, 품질 차이도 느끼기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오늘 석유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하고 고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원유구매, 시작이 반이다

 석유제품의 생산과 수출을 위한 전쟁은 원유구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석유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전량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세계에서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200여 가지 이상의 원유들은 성상과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회사의 공장에 가장 적합한 원유를 선정한 후, 가장 낮은 가격에 구매해야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유가, OPEC/NON-OPEC과 같은 생산자현황, 글로벌경쟁사 등을 포함한 수많은 요인들을 감안하여 신중히 구매해야 합니다.

예측과 측정 가능한 변수들을 컴퓨터 프로그램화된 L/P(Linear Program) 툴에 넣고 최적의 원유 선정 작업에 들어갑니다. 아무리 좋은 툴이라도 결국 치밀한 분석을 통한 의사결정은 담당자의 몫입니다. 지금 당장 의사결정을 하고 구매하려고 해도 경쟁사가 제품을 구매해 버리기도 하고, 판매자가 돌연 가격을 바꾸는 등 시장의 상황은 시시각각 급변하기 때문에 원유 구매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Right Crude, Right Time의 원유구매를 향한 치열한 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석유제품 거래를 위한 치열한 정보전쟁

 원유구매가 이루어지면 석유제품이 공장에서 생산됩니다. 파는 사람은 비싼 가격에 팔고 싶고, 사는 사람은 싸게 사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석유 제품의 거래도 마찬가지죠. 사고자 하는 사람과 팔고자 하는 사람 간의 향후 가격동향에 관한 치열한 정보전쟁에서부터 게임은 시작됩니다.

예컨대 가격의 하락이 예상되면 파는 사람은 가능한 한 빨리 팔아야 하며, 사는 사람은 당연히 기다려야 하죠. 한국 정유사의 주 경쟁자인 일본, 싱가포르, 대만, 중동 정유사와 트레이딩 회사 등의 포지션을 체크하고, 로열티가 높은 고객을 우선 확보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시황에 따라 치열한 트레이딩의 전쟁이 전개됩니다 배럴당 1센트라도 더 비싼 가격에 팔기 위해 3~4시간씩의 네고는 기본입니다. 제품을 팔고도 너무 싸게 판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팔아야 할 물건이 많은데 바이어가 나타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때는 속이 타 들어가기도 하죠.

석유제품을 트레이딩할 때 아시아 현물시장 벤치마크 가격으로 Mops(Mean of Platt’s S’pore)를 사용합니다. 매일 싱가포르 시간으로 오후 4시에서 4시 30분 사이에 Platform 형태의 Platts Window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그 날의 Mops 가격으로 결정됩니다. 오일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현재의 시황을 판단할 수 있고, 향후를 전망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 결정되는 데일리 가격에 따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일희일비하고, 자신의 포지션에 따라 유리한 방향으로 가격을 끌고 나가려는 메이저들간의 한판전쟁이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고객을 위한 최고 수준의 오퍼레이션

 우리는 마트에서 물건을 고른 후 가능한 한 빨리 계산하고 나가기 위해 항상 가장 짧은 줄을 찾습니다. 간혹 계산대에서 기다리다 시간이 길어지면 짜증이 나기도 하지요. 석유제품의 고객도 마찬가지입니다. 제품을 산 바이어는 원하는 날짜에 제품을 선박에 싣고자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영어표현에서 배를 지칭할 때 여성명사 she를 쓰는데, 그 이유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라고 합니다. 그 만큼 여러 가지 이유로 도착 예정된 날짜보다 일찍 오거나, 지연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까다로운 바이어들은 가능한 한 빨리 구매한 석유제품을 싣고 가기 위해 다양한 요구를 해옵니다. 따라서 세계수준의 정제능력과 고도화된 시설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최고의 오퍼레이션을 위해 정해진 날짜에 제품을 실어 보낼 수 있는 Off-Site 시설경쟁력을 확보한 한국 정유사가 수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날짜에 계약된 물량과 성상을 맞추어 선적해주는 Operational Excellence도 석유제품 수출강국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죠.

한국이 동북아 Oil Hub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며

 인구 5백만, 서울 크기의 싱가포르가 어떻게 아시아의 Oil Hub가 되었을까요? 석유 정제규모만 비교해 보아도 싱가포르는 1.4mil.b/d에 불과하며(한국은 2.9mil.b/d), 석유화학 공장 및 저장시설을 포함한 대부분의 하드웨어는 한국이 싱가포르에 비교해 대부분 앞서고 있습니다. 지정학적인 위치, 영어/중국어의 소통 가능성, 세계 최고수준의 안전보장 등의 장점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오일허브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와 우리나라가 동일한 Oil Hub를 만든다고 가정해봅시다. 싱가포르는 중간중간 걸림돌이 되는 법적, 제도적 문제점이 있으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해 줍니다. 하지만 한국의 실상은 어떨까요? 200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외국의 메이저 트레이딩 회사들은 한국에 지사를 두었지만, 하나 둘씩 철수해버렸습니다.

싱가포르의 한 메이저 트레이딩 회사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오일 관련 시설들이 점점 커지고 있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오래 전에 골프장 멤버십을 사놓은 것이 있었는데 이렇게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을 줄은 몰랐다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결국 한국지사를 철수하고 한국지사의 역할을 싱가포르로 이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정부가 우리나라를 동북아 Oil Hub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고 기쁜 일입니다. 현재와 미래에 완공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잘 개발해서 접목한다면 충분히 실현가능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싱가포르를 포함하여 전세계 Oil Trading Hub에서는 과거와 달리 많은 한국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 또한 한국이 석유제품 수출강국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동북아 Oil Hub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법적, 제도적 규제완화가 우선적으로 필요하겠지만, 정말 우리가 Oil Hub가 되고 싶어하는지 자문해보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입니다. 석유제품 가격 결정시 싱가포르의 Mops도 있고, 석유화학의 원료인 나프타 구매시 일본 도착가격의 기준으로 거래되는 Mopj(Mean of Platts Japan)는 있어도 Mopk(Korea)는 왜 없는가 하는 것이죠. 일본보다 더 많은 양의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를 구매하여 석유화학 제품을 수출하고도 Korea가 들어간 벤치마크 가격 하나 못 만들고 있는 것이 실상입니다.

왜 메이저 트레이딩 회사들이 한국에서 철수했고, 한국의 많은 트레이더들은 Mopk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은지 Oil Hub로 가기 위해 작고 쉬운 것부터 찾아서 개선하고 바꾸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도 동북아 Oil Hub가 되어 전세계에 석유제품 수출 국가로서 위상을 높이길 바라며, 이 시간에도 석유제품 수출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든 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