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 이후 내수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꾸준히 상승 중이다.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 가격은 7월 넷째 주 평균 리터당 1437.75원을 기록한 이후 7주 연속 오르며 9월 두 번째 주에는 1475.09원으로 마감됐다. 경유 소비자 가격은 지난 7월 셋째 주 리터당 1229.2원을 기록한 이후 8주 연속 올라 1266.31원을 형성 중이다. 이 기간에 휘발유 소비자 가격은 1ℓ에 37.34원, 경유는 37.11원이 상승했다.
2개월 가까이 내수 석유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인상 폭도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점에서 유가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그 배경 중 하나로 석유수출국기구인 OPEC의 감산 효과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OPEC은 최근 발간한 월간 보고서에서 ‘글로벌 경제 활황이 기대되면서 내년에는 산유국 생산 원유에 대한 견조한 수요 증가가 예상되고 원유 수급도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준용하면 OPEC의 전망은 향후 국제유가가 오를 일만 남아 있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더구나 OPEC은 내년 3월 31일까지 적용되는 감산 기한 연장을 논의 중인 한편 실질적인 유가 부양을 위한 수출량을 제한하는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어 석유 가격이 급등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튀어나오고 있다.
2000원대 휘발유는 옛날얘기일 뿐…
현 내수 석유 가격은 지난해 초보다는 분명 높지만, 올해 초보다는 여전히 낮다. 지난해 3월 휘발유 1ℓ를 구매할 때 드는 비용이 1350.13원이었는데 올해 8월에는 1451.82원을 지급하며 1년 수개월 사이에 100원 정도가 올랐으니 부담 증가의 폭이 작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올해 2월 전국 평균 가격인 1516.65원과 비교하면 65원 정도가 떨어졌으니 기름값 부담은 하반기 들어 오히려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소비자 구매 심리는 정형적인 숫자로만 이해될 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 2개월 가까운 기름값 상승 랠리 # OPEC 감산 연장 검토 # 원유 수급 균형 등 기름값이 오를 수 있는 불길한(?) 정보에 소비자들은 더 민감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불과 5년 전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었고 주유소에서 1ℓ에 2000원이 넘는 휘발유를 구매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 이제 저 먼 기억 밖의 일이 된 지 오래다. 상당 기간 안정적인 저유가 현상에 익숙해져 있는 소비자에게 ‘연일 휘발유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것만큼 더 현실적인 소식은 없다. 그래서 향후 국제유가 전망에도 귀가 쫑긋해지기 마련이다.
안정적 저유가가 뉴 노멀, 그 뉴 노멀을 위협하는 요소들
불과 수년 전까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을 기록했던 국제유가가 급락하며 40~50달러를 유지하는 현상을 에너지 전문가들은 ‘뉴 노멀(New Normal)’이라고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중동 산유국 중심의 OPEC이 원유 생산량을 조절해 국제유가를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초고유가 시대로 이끌었던 현상은 이제 ‘올드 노멀(Old Normal)’이 됐다는 의미다. 유가 결정 과정에서 OPEC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현재의 안정적 저유가 기조가 에너지 산업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음을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뉴 노멀을 이끄는 중심에는 미국 중심의 셰일오일 생산 기술 진화와 개발 확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외신과 유가 관련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유가 상승을 예측할 수 있는 요소들이 눈에 띈다. OPEC 9월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의 상업적 원유재고 하락 현상이 뚜렷하다. OECD 국가의 7월 상업적 원유재고는 1억8700만 배럴로 올해 초의 3억4000만 배럴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특히 최근 5개년 평균 재고량인 1억9500만 배럴보다도 낮아진 상태다.
이와 관련해 OPEC 모하메드 바킨도(Mohammed Barkindo) 사무총장은 ‘육상 및 해상의 상업적 원유재고 감소는 수급 균형(rebalancing)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분석하고 있다. 향후 유가 상승을 예견한 OECD 국가들이 상업적 원유 재고량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현상으로도 해석된다. 시장은 수익을 쫓아 움직이기 마련이니 유가 하락이 예측되면 원유 재고 수준은 낮아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생산량 감축 더해 수출량까지 줄이자고 제안 중인 사우디
유가 부양을 위한 감산에 뜻을 모으고 있는 OPEC 그리고 러시아 등 비OPEC 국가들이 합의 기간을 또다시 연장하려는 움직임은 분명 유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요인이다. OPEC 등 주요 석유 수출국들의 감산 합의 기간은 내년 3월 31인데 벌써 기한 추가 연장을 논의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사우디가 원유 수출량 감축을 제안하려는 움직임은 유가를 상승시킬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주요 산유국들이 생산량 감축에 합의하고 실행 중이지만 실제 수출 물량은 그만큼 줄어들지 않아 유가를 끌어 올리는 데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감산 합의로 원유 생산량은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그 전보다 하루 120만 배럴이 줄어들었는데 원유 수출 물량은 21만 배럴 정도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감산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풀리는 원유 공급량이 줄어들지 않으니 유가는 여전히 배럴당 40~50불 선에서 꿈쩍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감산에 더해 수출 물량까지 감축하자는 사우디의 제안에 카르텔 동참 국가들이 얼마나 지지할지는 아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국영 석유 기업인 아람코의 기업 공개를 추진하고 있는 사우디 입장에서는 유가를 반등시켜야 기업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원유 수출량 감축을 꾸준히 주문할 것으로 예상하는 대목은 향후 국제유가 등락을 결정짓는 중요한 이슈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가 상승 길목 차단하던 셰일오일도 경제성 중심으로 전환
‘유가 안정화’라는 뉴 노멀의 동력이 되는 미국 셰일오일 생산 업계의 경영 기조 변화 움직임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다. 셰일오일 개발 투자자들이 셰일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수익성을 강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석유정보망 분석에 따르면 그간 미국 주요 석유회사들과 투자자들은 셰일오일을 중심으로 쇼트 사이클(short cycle)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생산량 증대를 추구해 왔다. 투자 규모와 탐사 리스크, 투자 회수 기간 등에서 전통 석유 개발 보다 유리한 셰일오일의 생산을 극대화해 단기간에 수익을 창출하는데 집중했던 것인데 최근 들어 주요 석유회사들이 셰일에 대한 투자 감축은 물론 일부는 사업 철수 결정을 내리고 있다.
미국 내 대표적인 셰일오일 생산 지역인 페르미안(Permian) 분지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애너다코 페트롤륨(Anadarko Petroleum)과 마라톤(Marathon)사 등은 하반기 CAPEX(Capital expenditures, 자본적 지출) 예산을 4~10% 삭감하고 있다. 특히 이들 기업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이상이 되는 것을 기준으로 자본 예산을 편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자원개발 기업인 BHP 빌리턴(BHP Billiton)은 핵심 사업에 집중한다며 미국 셰일사업 철수를 발표했다. 셰일오일 생산업체 사이에서 이제는 생산량 확대보다는 수익성 추구와 완급조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뉴 노멀, 흔들리면서 유지될 가능성 높다
OPEC이라는 석유수출국 카르텔에 의해 오랜 기간 지배당해온 원유 시장에서 배럴당 40~50불대의 저유가가 지속되는 ‘뉴 노멀’은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인가? 산유국 카르텔의 자존심까지 걸린 1년 가까운 감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는 여전히 배럴당 40불대 후반에서 50불대 초반 사이를 벗어나지 못하며 반등 모멘템 기회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OPEC은 감산 기한 연장을 논의 중이고 사우디는 생산량에 더해 수출량까지 통제하자는 제안을 내놓으면서 유가 부양을 모색 중이다.
산유국 카르텔 기세를 꺾으며 유가 안정화를 이끌어왔던 미국 셰일오일 업계도 이제는 ‘원유 시장 주도’라는 명분보다 ‘수익성 극대화’라는 실리를 찾겠다며 노선을 변경 중이다. 그러니 유가 상승을 꾀하려는 시도는 최소한 지금보다 거세질 것이고 뉴 노멀이 흔들릴 수 있는 다양한 환경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OPEC의 유가 부양 노력을 방어해 온 미국 셰일업계들이 희망하는 유가가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점은 여전히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재 미국 셰일오일 업계의 전반적인 기조는 ‘셰일오일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저유가가 지속되면 경제성 측면에서 한계도 분명하다’는 것이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불 이하에서 형성되면 손실을 보며 시추할 의향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렇다면 배럴당 50달러대 초중반만 꾸준히 유지돼도 미국 셰일업계 입장에서는 광구 뚜껑을 닫을 이유가 없게 되니 OPEC 감산과 수출량 감축에 대응해 유가 안정화를 이끌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 여전히 될 수 있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말한다. 에너지 절대 빈국이며 원유 순 수입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그 ‘꽃’의 의미가 ‘안정적인 저유가’라면 바람에 흔들리지만 분명 그 꽃은 피어날 것이고 그래서 뉴 노멀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