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전과 실패를 연결하여 혁신을 만드는 기업들

‘아르키메데스의 왕관, 뉴턴의 사과’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든 사람들이 늘 보아 왔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 뉴턴 모두 각 분야의 전문가였다는 공통점도 있다. 물이 가득 찬 목욕탕에 들어가면 물이 넘친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물체의 부피와 무게의 관계를 밝힌 아르키메데스는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다. 누구나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아 왔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은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뉴턴이었다. 이처럼 창의라고 하는 것은 늘 우리와 함께 있어 왔지만 보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창의는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안에 대해 풍부하게 경험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테레사 아마빌 교수는 기업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에 기반한 전문성(knowledge), 생각을 전개시키는 과정에 대한 기술(skills),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정(motivations)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업의 내부 인력만큼 자사 제품, 경쟁사, 기술, 고객 가치, 시장 동향에 대해 연구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위한 동기 부여를 해줄 수 있는 프로세스가 뒷받침된다면 내부 인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다.GSC사보, 뉴스, 매거진, 전문가칼럼

 

개개인의 엉뚱한 시도가 만들어 낸 집단의 큰 혁신

창의적인 인재를 채용했다고 해서 조직이 당연하게 창의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존슨은 그의 저서인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에서 최근 700년 동안 탄생한 200여 개의 뛰어난 아이디어는 ‘협업적 혁신(Collaborative Innovation)’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협업적 혁신이란 여러 아이디어의 연관성을 찾아내 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아이디어가 엉뚱하다고 해서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아이디어를 붙여 사슬처럼 연결해 나가면서 키워나갈 때 가능하다. 개개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프로세스를 통해 사슬처럼 연결되어 커져갈 때 기업의 창의는 극대화된다. 집단 창의성은 개인의 창의성이 산술적으로 합산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능력 및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프로세스, 창의성을 위한 조직 환경(Organizational climate for creativity)에 의해 결정된다는 많은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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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창의를 통해 혁신을 만드는 기업들

‘실패는 진행의 한 과정’, 다이슨(Dyson)

창의를 막는 가장 큰 장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창의를 위해서 실패는 혁신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인식과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실패에 대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성공한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보다 강력한 동기부여를 가져오기도 한다. 다이슨은 혁신적인 제품 개발을 위해 오랫동안 기다려주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로 유명하다. 창립자 제임스 다이슨은 지난 2012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실패는 진행의 한 과정”이라며 “당신은 성공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지만, 실패로부터는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 다이슨이 5,127개의 시제품을 제작한 끝에 1993년 사이클론 방식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출시한 일화는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다이슨은 개발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실현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중간보고 체계를 없애고, 다양한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준다. 2014년에 출시된 신형 진공청소기의 경우 개발 기간 6년 동안 2,000여 개의 시제품 끝에 출시되었다. 경영진은 완벽한 제품이 나올 때까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장기간의 연구•개발 및 제품 개발을 위해 기업 공개도 하지 않는다. 단기적인 재무 성과를 기대하는 주주들이 경영에 관여한다면 장기 프로젝트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으나 의미 없는 실패로 끝나지 않도록 노력한다. 초기 아이디어, 모든 시제품, 실패의 원인과 해결 방안 등을 꼼꼼하게 기록하여 남겨둔다. 기록은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다이슨은 진공청소기, 선풍기, 헤어드라이어 등 더 이상 혁신 제품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던 영역에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픽사(Pixar)

자사 직원들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픽사 대학의 건물에는 라틴어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개인의 창의성 향상과 협업을 통해 집단 창의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픽사의 철학이 담겨있다. 컴퓨터의 화소를 의미하는 ‘Pixel’과 예술 ‘Art’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픽사는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분야에 뛰어들어 사람들의 상상 하나하나를 영화로 만들어냈다. 3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그들의 첫 장편영화 ‘토이스토리’는 미국에서 1억 9천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 3억 6천만 달러의 놀라운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픽사는 창의력 넘치는 탄탄한 스토리와 현실감 있는 CG(Computer Graphics)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흥행작들을 내놓고 있다. 창의의 구성요소인 knowledge, skills은 한 사람의 머리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에 흐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픽사는 ‘브레인트러스트’라는 프로세스를 두고 있다. 브레인트러스트는 핵심 멤버(픽사의 경험 많은 영화감독 8명으로 구성), 영화감독 및 제작팀이 모여 제작 중인 영화의 이슈 사항을 공유하고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회의이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행해지는 작업 결과에 대한 보고, 진척 상황에 대한 점검과는 전혀 다르다. 특히 브레인트러스트가 지시할 권한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회의에서 나온 해결 방안의 선택 및 수용 여부는 영화감독과 작업팀이 결정한다. 영화감독 및 제작팀은 언제라도 편안하게 브레인트러스트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만, 영화감독과 제작팀 스스로가 문제의 해결 방안을 결정함으로써 창의성을 보호받는다. 브레인트러스트에서 이뤄지는 활기차고 솔직한 토론은 픽사에서 제작한 대부분의 영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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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소인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멀리 바라보았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 Sir Isaac Newton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남긴 말이다. 뉴턴의 이 말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소인’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현대의 모든 발전은 과거 누군가의 연구와 업적에 기반하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소인’의 표현은 현재의 기업들에게도 적용된다.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소인의 발 밑에 거인이 있듯이, 시장을 선도한 혁신적인 아이디어 밑에는 기업이 오랜 시간 쌓아온 knowledge, skills과 다른 아이디어들이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엉뚱한 상상들이 기업의 knowledge, skills에 바탕을 두고, 수많은 다른 아이디어들과 연결되어 미래를 이끌어 갈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재탄생하였다. 더 멀리 바라보기 위해서 거인은 더 커져야 하고 소인은 더 높아진 어깨를 딛고 올라가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기업은 더 큰 거인을 위해 기업 전체의 knowledge, skills과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키워야 한다. 거인이 커질수록 높은 어깨를 딛고 올라가야 하는 소인에게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실패로 인해 받게 될 비난과 이에 따른 책임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혁신이란 본질적으로 실패의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아이디어들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는 거인과 그 어깨를 딛고 올라가는 용기 있는 소인이 기업의 혁신을 만들어간다. 거인을 키워 나가고 소인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일. 이것이 기업이 놓치지 말아야 할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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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아 책임연구원 | LG경제연구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OCI의 회계팀에서 근무했다. 이후, KAIST Techno MBA에 진학하여 경영전략을 전공하였다. 현재는 LG경제연구원에서 그린바이오를 포함한 LG그룹의 화학 사업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