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 창립 50주년 기념으로 지난 6월 15, 16일, 여수 예울마루에서 사은공연이 있었습니다. 펭군 신입사원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관람 후기도 재미있게 보셨나요?
관람 후기만으로는 너무 아쉬워 <변강쇠 점 찍고 옹녀>전을 진두지휘한 대한민국 창극의 대표수장 김성녀 예술감독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 안녕하세요. 감독님,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제목부터 정말 독특한데요. 어떤 작품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변강쇠’는 익숙한데 비해 ‘옹녀’는 낯설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변강쇠전은 판소리 12마당에 포함되어 있는 작품이에요. 변강쇠전은 해학적으로 성을 풀기도 하고, 유랑민들의 애환도 담고 있으며, 장승문화도 드러나있는 등 다양한 모습들이 섞여 있어요.
사실 이전에 알려진 영화에서 너무 성적인 것만 부각해서 야한 이야기로만 알려져 있어 이것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변강쇠의 여자 ‘옹녀’를 통해 변강쇠전의 명예회복을 시도해보자고 했습니다. 변강쇠는 많이 들어봤지만, 옹녀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변강쇠 이야기를 더 하기 보다는 점을 찍어 마무리 짓고, 옹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자는 의미에서 제목이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되었습니다. 제목에 드러나다시피 운명에 도전하는 여성의 힘. 여성의 강인함에 대한 내용을 장승의 해학적 문화, 유랑민들의 아픔과 결합하여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Q : 그렇군요. 그럼 작품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런 것을 염두했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이어온 유교사상과 선비문화가 중시되어 왔어요. 하지만 민족의 근원적 삶의 모습, 서민들의 삶은 희로애락을 표출하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죠.
특히 ‘성(性)’이라는 것은 선조들의 삶에서는 생산성과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작품에서는 성적인 면보다 생산적인 면에 기반하여 이야기가 진행되죠.
작품을 감상하며 “민족의 정서, 건강한 삶이라는 것이 저렇게 풀어져 있구나”하고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유교적인 성향의 색안경을 작품에 맞추려 하면 잘 맞지 않겠죠?
Q : 많은 분들이 이번 공연을 창극의 ‘무한도전’이라고 표현할 만큼 파격적이라고 느끼셨는데요. 이 공연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목표가 있었나요?
이번 작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창극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은 창극은 뭔지 모르는 분이 많죠. 물론 판소리는 다 알지만요. 쉽게 설명하면, 판소리에서 파생된 것을 창극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창극의 역사는 100년, 국립창극단은 50년이 넘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데요. 판소리에서 파생되긴 했지만, 저는 이 둘은 앞으로 서로 다른 형태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판소리는 과거 모습 그대로 전통을 이어가며 정통성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창극은 시대가 원하는 대로 계속 그 모습을 바꿔가야 하죠. 극과 소리로 이뤄진 이 창극은 사실 그 동안 대중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해왔어요.
그래서 제가 국립창극단장을 맡으며 목표를 두 가지 세웠어요. 첫째는 관객확보, 둘째는 작품완성도를 높이기였습니다. 관객이 있어야 창극이 살아남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저변이 확대되어야 창극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지금 창극의 변화무쌍함은 제 스스로 광폭행보 중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실패할까 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이게 정말 창극이 맞냐는 비판도 수도 없이 받았죠.
그러나 결국 6년 간의 이러한 변화시도가 매진행렬로 이어지며 관객들의 많은 사랑으로 결실을 맺고 있죠. 저는 이런 것들을 창극의 ‘무한도전’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늘 어떤 작품이 나올까 걱정하고, 관객은 어떻게 반응할까 노심초사 하지만 계속 도전했고 지금까지의 결과는 대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 초청받은 첫 수출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변강쇠 점 찍고 옹녀’전은 프랑스에서 ‘성’과 ‘코믹함’을 동시에 표현한, 이전까지는 프랑스에서 보지 못했던 작품이라며 극찬을 받기도 했어요. 또 올해 9월에는 싱가포르, 내년 5월은 영국으로도 진출할 예정입니다.
K-POP처럼 창극이 세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죠. 단순히 기존 창극을 바꾸는 게 아니라 현대적인 관점을 추가한 것이라 내용과 표현이 더 풍부해졌고, 이것이 창극이 가야할 길이며 앞으로도 창극은 시대에 맞게 변화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Q : 그렇지만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는 공연을 만들기까지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텐데요.
50년을 걸어 정형화 된 창극의 모습을 갑자기 바꾸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단원들의 반발도 있었고, 관객들의 시각도 두려웠고. 새로운 시도에 대한 마음 속 초조함이 신경성 위염으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안일하게 남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것은 나뿐만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창극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향을 잡아나갔어요.
사실 요즘은 스스로 나태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창극의 변화가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이게 창극이다’가 아니라 ‘이것도 창극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을 되새기고 있죠.
Q : 마지막으로, PD, 배우, 연출자까지 수많은 스태프와 함께 공연을 준비하고 계신데요. 감독님이 추구하는 리더상이 있을까요?
저는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같이 가자고 명령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같이 갈 수 있도록 호응을 이끌어내는 게 진짜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PD들의 역량을 맘껏 뽐낼 수 있게 만들어주고, 적재적소의 배우를 투입하고, 작품에 잘 맞는 연출자를 섭외하고 스태프들을 구성하는 것, 그것이 핵심이죠. 이들이 움직이는 큰 방향을 잡아주고, 가끔씩 상황에 맞게 조언을 던져주며 그들이 자유롭게 능력을 펼치게 만들어 줄 때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가 더 높아져요.
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다행히 저의 이런 리더십에 대한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 뿌듯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창극을 위해, 과감한 도전과 힘든 변화도 마다하지 않는 김성녀 감독의 열정이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지금의 창극을 있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변강쇠 점 찍고 옹녀’전은 GS칼텍스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공연이면서도, 도약을 위해 끝없이 도전해 온 창극인들의 노력의 산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