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양성원이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전한 바흐 에세이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전하는 첼리스트 양성원의 바흐 에세이

3월 16일(토) 여수문화예술공원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첼리스트 양성원 교수(46•연세대)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전곡 3개국(프랑스, 한국, 일본) 순회 일정 중 한국에서의 첫 번째 공연이었기에 더욱 의미 있었습니다.

양성원 콘서트 소개

2005년 한국인 첼리스트로는 최초로 메이저 음반사(EMI)에서 바흐 무반주 모음곡 전곡 음반을 녹음한 바 있는 양성원은 이 날 연주에서 더욱 농익은 바흐 해석을 들려주었습니다. 1번부터 6번까지 각 악장간 완급조절이 탁월했으며, 바흐 곡에 대한 오랜 천착을 증명하듯 보잉(bowing•활 쓰는 법)이나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 등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꾸밈음을 자유자재로 활용함으로써 연주에 유연함을 더했지요. 그 중에서도 5번 모음곡의 사라방드는 “바흐가 미래를 위해 이 모음곡을 작곡했다”는 양성원의 표현이 너무도 적절했습니다.

3월 16일 예울마루 대극장에서 양성원이 바흐 무반주 모음곡을 연주하는 모습
3월 16일 예울마루 대극장에서 양성원이 바흐 무반주 모음곡을 연주하는 모습

바흐 에세이

사실 첼리스트에게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결코 쉽지 않은 곡입니다. 그야말로 ‘무반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첼리스트들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고 싶어하지만, 일생에 1-2번 녹음하고 연주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일례로 이 곡을 유명하게 만든 장본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13살 때 고서점에서 누렇게 바랜 악보를 발견했지만, 48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개 석상에서 전곡 연주를 했습니다.

보통 피아노를 제외한 기악 연주자들, 혹은 성악가들은 피아노 반주자가 있어야 합니다. 무대에서 혼자 있는 기회가 많지 않죠. 항상 반주자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연주합니다. 그런데 ‘무반주’는 말 그대로 반주 없이 혼자 무대 위에 오르는 것입니다. ‘고독한 독백’에 비유할 수 있겠죠. 그래서 연주자들이 ‘무반주’를 연주할 때 좀 더 솔직한 고백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느 철학자의 표현처럼 ‘고독한 독백이 대화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셈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 날 연주를 ‘양성원의 바흐 에세이’라고 이름 붙여봅니다.

양성원은 공연 전 무대에 올라 바흐 무반주 모음곡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각 모음곡의 특징을 직접 시연하면서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양성원은 공연 전 무대에 올라 바흐 무반주 모음곡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각 모음곡의 특징을 직접 시연하면서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바흐 마라톤

양성원의 이날 공연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1번부터 6번까지 전 곡을 하루에 연주했기 때문입니다. 오후 3시에 시작된 공연은 저녁 7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습니다. 바흐 무반주 모음곡은 알르망드, 쿠랑트, 가보트, 미뉴에트 등 당시 유행했던 여러 춤곡을 모아 놓았습니다. 각 모음곡에 6개의 곡이 들어 있기에, 총 36곡을 하루에 연주한 것이죠. 그 것도 악보를 모두 외워서 말입니다. 무반주 모음곡을 첼리스트들의 에베레스트에, 전곡 연주를 마라톤에 비유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이 날 객석이 유난히 조용하고 엄숙했던 이유는 양성원의 도전에 대한 경이로움과 숭고함, 그리고 신성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연주가 끝남과 동시에 박수를 치는 이른바 ‘안다 박수’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으며, 마지막 잔향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관객 모두 그 여운을 즐겼습니다. 관객의 태도는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파블로 카잘스의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세계 평화를 위해 작곡한 카잘스의 염원이 이뤄진 듯 관객들은 음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마지막 음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미동초자 없었습니다.

양성원은 “1부보다 2부 공연 때 오히려 관객들이 조용하고 엄숙하게 경청하여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서 “아이들조차 3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지루해하지 않고 공연에 집중해줘서 고마웠다”고 이 날 공연에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양성원이 연주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양성원이 연주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사실 이 날 관객들의 성숙한 관람태도에 놀란 것은 비단 양성원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울마루 직원들은 하나같이 “예울마루 개관 초기에는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거나 공연시작 시간을 지키지 않아서 공연 중에도 소란스러운 경우가 있었는데, 불과 1년 만에 발전한 시민들의 관람문화가 놀랍다”며 입을 모았습니다.

양성원의 재능기부, 마스터클래스

공연 전날에는 마스터클래스에서 약 20여 명의 여수 지역 어린이 오케스트라 첼로 단원들이 양성원의 지도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번 마스터클래스는 양성원이 지역 어린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재능기부 의사를 밝힘으로써 마련 되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예울마루 자체 기획 공연으로 이미 한 차례 여수를 찾은 바 있는 양성원이 GS칼텍스의 대표 사회공헌사업인 예울마루의 운영철학에 동감하고, 사업의 일환인 문화 나눔에 동참하기 위해 마스터클래스를 자청한 것이죠.

양성원 교수가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양성원 교수가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이 날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한 한 학생의 어머니는 “예울마루 덕분에 우리지역에 국제적인 수준의 문화예술 인프라가 구축되었지만, 여전히 교육 환경은 낙후되어 있는데 양성원 교수님이 여수에서 연주뿐 아니라 마스터클래스까지 해줘서 너무 기쁘다”면서 “첼로 연주에 꼭 필요한 기본 자세와 연습 방법을 아이들에게 직접 가르쳐줘서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양성원이 자신의 제자들인 연세대 음대 학생들과 음악 캠프를 열어 지역 어린이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지역에서 제2의 양성원이 나올 날이 머지 않은 듯 합니다.

찾아가는 문화강좌

예울마루에서는 공연에 앞서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를 개최하여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한 해설과 강의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강의는 ‘음대 나온 여자’인 제가 진행했는데요, 앞으로 연극이나 뮤지컬 등 여러 장르로 확대하여 지역민들에게 다가설 예정입니다.

https://youtu.be/oStIIFdJfBk

*양성원 연주 영상 – 바흐 무반주 모음곡(Bach Cello Suites) @ Baronial Hall(영국 맨체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