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관 산책] 별은 밤이 짙을수록 더욱 빛난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세계 유명 미술관과 명화를 소개하는 2019 GS칼텍스 캘린더 12월 이야기입니다.

‘대담한 여성들’의 기부로 가능했던 경제대공황 속 미술관 개관

근대예술 걸작 소장으로 유명한 뉴욕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은 1929년 뉴욕에 설립되어 현재 현대미술의 꽃이자 성지가 되어 ‘모마(MoMA)’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1929년은 미국 뉴욕증시 폭락으로 경제대공황이 시작된 지 며칠 되지 않은 절망의 시기에 미술관이 개관한 것인데요. 우리네 정서에서는 논쟁거리가 될 이해 불가할 일이 미국 뉴욕에서는 가능했습니다.

그 시작은 유럽미술에 밝았던 화가 아서 데이비스가 미국인들에게 근현대미술 보급을 위한 미술관 건립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좋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컬렉터들에게 제안했던 것입니다. 즉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가의 며느리인 애비 록펠러와 그녀의 친구들 메리 퀸 설리반, 릴리 블리스가 미술관 건립을 위한 토지와 거금을 내놓으며 미술관 건립이 시작됩니다.

당시 초대관장이었던 27세의 큐레이터 엘프레드 바는 뉴욕현대미술관의 개관전시로 기증받은 9점의 작품들을 소개했는데 경제대공황임에도 5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며 대성공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날 소장품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샤갈의 ⌈생일⌋,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 등 15만여 점으로 현대미술의 성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제1, 2차 세계대전 중 유럽 근대미술작품들을 미국 컬렉터들이 사들인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현재 세계미술의 흐름을 뉴욕현대미술관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구겐하임미술관과 함께 뉴욕의 3대 뮤지엄으로, 시민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독학으로 자신만의 예술적 양식을 발전시키다

고흐의 자화상
고흐의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후기인상파 화가입니다. 1853년 네덜란드에서 독일 개혁 교회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종교적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한편 그의 삼촌들 몇 명과 그의 남동생이 아트딜러였기 때문에 고흐 역시 한때 네덜란드 헤이그∙영국 런던∙프랑스 파리 화랑에서 아트딜러로 근무한 바가 있습니다. 그의 삶의 시선과 사유는 자연스럽게 종교와 미술의 범위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중 상품으로 취급되는 예술작품의 가치에 분노한 그는, 종교에 대한 열성으로 아트딜러를 그만두고 신학공부와 석탄 광산마을에서 임시 선교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너무나 열정적 선교방식은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켜, 동생 테오와 아버지는 종교인이 아닌 화가의 삶을 권하게 됩니다.

고흐는 그렇게 20대 후반에 미술공부를 시작합니다. 형식적인 학교제도를 싫어했지만 동생의 설득으로 ‘그림에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을 위해 브뤼셀에 있는 로얄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해부학, 원근법 등을 배웁니다. 그의 예술적 성취는 전승된 아카데미 공부보다는 독학으로 색채학 등을 공부하며 자신의 양식을 발전시켜나간 경우입니다.


예술의 열정과 인생의 좌절 사이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다

초창기 그는 ⌈감자를 먹는 사람들⌋처럼 고단한 삶에 직면한 사람들을 소재로 어두운 색조의 작품들을 주로 그립니다. 그림 대상과 색채가 밝아진 것은 1886년 파리에서 인상파 화가들인 쇠라, 시냑, 폴 고갱, 로트랙 등을 만나 교류를 시작한 후부터 입니다.

하지만 그즈음 ‘유럽의 수도’라 불리던 19세기 파리 생활에 지쳐있던 고흐는, 로트랙의 추천으로 1888년 남프랑스 아를로 거처를 옮기고 그곳의 풍경과 햇빛을 화면에 담아내게 됩니다. 고갱의 작업에 호감을 갖고 있던 그는 고갱을 초대해 한 달여 작업을 함께 했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과 예술관 때문에 잦은 의견대립을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격렬한 논쟁 끝에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그 사건 후에 고갱은 떠나게 됩니다. 그 후 고흐는 망상과 환각이 심해져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마을사람들로부터 ‘위험한 정신병자’라는 탄원서를 받은 경찰이 그의 집을 폐쇄하기에 이릅니다.

1889년 생 레미 지방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본인이 직접 입원하자, 동생 테오가 병원에 작업실을 만들어주었고 고흐는 그곳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1890년에는 동생 테오가 사는 곳과도 가깝고, 카미유 피사로가 추천해 준 아마추어 화가이자 의사인 가셰와도 가까운, 파리 근처의 ‘오베르’ 지역에 70여일 머물며 정신 치료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질병은 예술적 열정과 인생의 좌절 사이에서 더욱 심한 우울증으로 깊어져, 1890년 37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생전에 팔린 작품은 단 한 작품입니다.


밤하늘의 요동침은 화가의 불안한 정신의 요동침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Oil on canvas, 74×92cm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Oil on canvas, 74×92cm

대중에게도 인지도 높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새벽의 푸른빛이 젖어드는 밤하늘에 거대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대기의 소용돌이와 별의 반짝임이 절정에 이르는 시간, 세상은 미동도 없이 조용히 잠에 빠져있습니다. 마을의 몇몇 집은 불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밤하늘의 별도 반짝이고 마을의 불빛도 반짝입니다. 반짝임은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고흐의 밤은 불면의 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앞서 ⌈밤의 카페 테라스⌋와 ⌈론 강 위로 별이 빛나는 밤⌋이란 작품을 그리기도 했고,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도 새벽에 혼자 깨어 바라 본 세상에 대해 적어보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오늘 아침 나는 해가 뜨기 한참 전에 창문을 통해
아무 것도 없고 아주 커 보이는 샛별 밖에 없는 시골을 보았다.

반짝이는 하늘의 별과 반짝이는 마을의 불빛을 바라볼 때마다, 고흐의 마음은 상실감과 외로움이 짙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생명의 반짝임에 참담한 심정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가 1889년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즉 그가 자살하기 1년 전에 그린 작품입니다. 화면 곳곳에서 요동치는 움직임은 당시 고흐의 불안한 정신의 요동침인 것입니다. 의학자들은 고흐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노란빛이나 소용돌이 붓 터치에 대해 육체적 정신적 질병의 증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 서양미술사의 불멸의 별이 되어 반짝이다

삶이 척박한 사람들에게 종교적으로든 미술적으로든 구원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했던 고흐를 생각하면, 그의 바람은 그 자신에 대한 절실한 구원의 바람이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자신도 사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지요. ⌈별이 빛나는 밤⌋ 마을에는 구원자 역할을 해야 할 교회가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불이 꺼진 상태입니다. 화면에서 고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은 사이프러스 나무입니다.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고흐의 요동치는 정신처럼, 화면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그림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이프러스 나무도, 마을도 아닌 밤하늘이며, 그 중에서도 반짝이는 별들입니다.

고흐가 입원했던 생폴드모졸 수도원(정신병원)의 모습
고흐가 입원했던 생폴드모졸 수도원(정신병원)의 모습

어쩌면 고흐는 차가운 새벽녘 정신 병원의 창가에서 별에게 신호를 보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존재감 있는 별이 되어 반짝이고 싶다고. 그의 기도는 살아 생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후에 불멸의 별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그림에 그려 넣은 빛나는 별만큼이나 고흐는 서양미술사의 빛나는 별입니다.


이일수 (미술서 작가, 전시총감독)
이일수 (작가, 전시총감독)

대중에게 그림을 통한 지적 유희와 감정적 치유를 경험하게 하고자 지속적으로 미술서 출간, 전시기획,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작아도 강한, 큐레이터의 도구>,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등 12권 집필. 하나코 갤러리 경영 및 SBS기획전시 총감독 등 다양한 전시현장에서 전시기획 수십여 회.


2019 GS칼텍스 캘린더 ‘세계 미술관 산책’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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