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어느 민족의 속담이라고 알려진 이 말은 아동과 청소년 문제를 거론할 때 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책임은 가정 혹은 교육기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지역사회라는 공동체가 함께 고민하고, 협력함으로써 완수해야 할 책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는 ‘온 마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과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많은 아동과 청소년들이 심리・정서적으로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GS칼텍스는 지난 2013년 부터 아동과 청소년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마음톡톡 예술 심리치료 지원 사업을 이어왔습니다. 마음톡톡은 음악, 미술, 무용・동작, 연극 등 다양한 표현예술 분야를 치료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아이들의 건강한 심리・정서적 표현을 돕고 있습니다. 예술을 통한 치료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앞으로 GS칼텍스가 함께 나아가야 할 예술 심리치료 사업의 방향은 무엇인지를 마음톡톡 미술 프로그램에 수퍼바이저로 참여하신 김선희 교수(서울여자대학교 특수치료전문대학원) 인터뷰를 통해 소개합니다.
Q. 심리・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표현예술 치료가 효과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표현력이 떨어집니다. 아직 표현의 기술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심리・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있어 표현예술은, 그 중에서도 특히 미술은 또 하나의 언어가 되어줍니다. 아이들은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그림을 통해서 쉽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그림을 그림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만의 언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그림을 매개로 치료적 접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확장됩니다. 표현이 서툰 아이들일수록 표현예술 매체를 활용한 치료가 효과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미술 이외의 다른 예술 매체도 마찬가지 입니다.
Q. 예술이, 특히 미술을 통한 자기표현이 어떻게 치료적 효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일까요?
아이들에게 있어 심리・정서적 치료는 자기 세계를 창조하는 ‘경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아동들은 창조의 과정에서 자기만의 시각적 은유와 사고를 하고, 그 안에서 문제해결 방식을 스스로 찾아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엄마와 아빠가 심하게 싸우고, 법원까지 간 상황을 아이가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아이는 갈등 상황을 표현하는 동안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사고하게 됩니다. “엄마 아빠가 곧 이혼할지도 몰라” “이혼을 하면 엄마 아빠가 한 집에 살지 않을텐데” “나는 엄마와 아빠 중 누구와 함께 살아야 할까?” 등등. 이런 사고 과정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본능적 욕구와 외부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중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만의 문제해결 방식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Q.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해결 방식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예술치료사들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심리・정서 치료는 3단계의 사고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본능의 욕구를 따르는 1차 사고과정, 그리고 본능과 외부 현실 상황을 중재하는 2차 사고 과정을 거쳐서, 이 두 단계의 사고가 통합되는 창의적 단계인 제3의 사고 과정을 통해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이 때 각 과정에서 심리치료의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예술 치료사들이 적절하게 개입하여 아이들의 사고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조율해주고, 어떻게 현실의 경험을 받아들여야 할지 이끄는 안내자의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Q. 다양한 예술 작업을 통해 아이들이 경험하는 변화는 어떤 것인가요?
치료실을 찾는 아이들은 여러가지 현실의 갈등에 처해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싸웠어요, 친구들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담임선생님도 나를 별로 예쁘게 보지 않아요, 문제가 있는 아이라고 찍혀서 이 집단에 들어온 것 같아요… 등등. 아이들은 예술작업을 통해 위와 같은 현실 원리의 적용을 받지 않는 놀이, 무용, 조각, 그림 등의 ‘중간대상물’을 창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중간대상물을 통해 현실과 균형을 잡음으로써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Q. 표현예술 ‘치료’와 표현예술 ‘교육’의 가장 큰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미술 ‘교육’의 기본적인 목적은 아이들이 발달단계에 맞춰 심미적 발달을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근법도 가르치고, 명암 표현도 가르쳐서 사실적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지도’ 하는 것입니다. 각 학생의 발달단계에 맞춰 학생이 도달해야 할 분명한 목표가 있고 이에 맞춰 필요한 교육을 하는 것이지요.
반면 미술 ‘치료’에서의 목표는 치료사들이 아이들 각각의 상황에 맞게 정하는 것입니다. 미술치료에서는 아이가 새로운 자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새롭게 진단하고 평가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나 행동, 태도에 얽매이지 않고 실제로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를 치료사의 기준으로 새롭게 평가하게 됩니다.
치료실에 오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미 사전 진단을 통한 평가를 가지고 들어오는데, 막상 그림 진단을 해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전 진단이든, 그림검사든 둘 중 하나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언어인 미술 표현을 통해 아이의 이면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는 조용하고 소극적이라 내현화된 아동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사실은 내면의 엄청난 공격성을 표시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평소에는 굉장히 공격적인 행동과 태도를 보이는데 사실은 너무나 위축이 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치료사는 그 평가를 기반으로 아이에게 맞는 치료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그 과정에 적절한 ‘개입’을 하게 됩니다.
Q. 예술 치료의 효과와 발전을 위해 치료사들은 어떤 노력과 교육이 필요한가요?
무엇보다 치료사들은 예술작업을 통해 드러나는 아이들만의 언어, 즉 내면의 상징과 표현을 이해하는 눈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를 판단하거나 지시하지 않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치료사들의 전문성 확보 및 역량 강화는 필수 사항입니다. 성장하지 않고 멈추면 진정한 전문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치료사 스스로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힘과 노하우도 필요하지만, 치료사들이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지원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필요한 때입니다. 전문가를 키우고, 더 훌륭한 전문가를 발굴하며, 그들이 소진되지 않고 계속해서 전문성을 확보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입니다. 그것이 심리・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지원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궁극적인 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GS칼텍스가 마음톡톡 사업을 통해 심리・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치료사들의 역량강화 및 재교육을 위한 지원까지 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상전문가로서, 그리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자로서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