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숨은 심리, 영화로 읽어볼까?
아이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어보는 영화 5편
가끔은 생각합니다. 외국어 번역 프로그램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이 행동 번역기’라고 말입니다. 부모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의 행동과 그 알 수 없는 속내 때문에 난처했던 경험이 많을 텐데요. 영화 속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아이들의 숨은 심리를 살짝 들여다볼까 합니다.
예쁜 여자에 친절한 짱구의 진짜 심리는?
아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능글맞은 짱구는 ‘애어른’으로 통하지요. 특히 어른들의 행동을 곧잘 따라해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곤 하는데요. 이는 비단 짱구만의 주특기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누군가를 따라하는 모방학습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자연스런 수순이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가까운 가족인 엄마, 아빠, 형제들의 행동을 무의식 적으로 고스란히 따라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인물을 닮아가고 동일시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끼는 심리가 담겨있는데요. 점점 자라면서 만화주인공, TV 속 스타를 따라하며 더 우월한 성취를 맛보고자 하지요.
짱구의 경우, 그것이 ‘예쁜 여자에게 친절하기’와 같이 웃어넘길 에피소드로 그치지만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의 경우, 자신도 모르게 그 폭력성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이 센 자와 동일시하며 불안감을 일시적으로나마 잠재우는 것이지요. ‘마음톡톡’ 상담을 하다보면 조부모의 폭력성과 방임이 부모대로 내려온 경우가 많은데요.
그래서 아동 심리 치료를 할 때는 부모의 상담 및 치료도 꼭 병행되어야 한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고 하지요. 아이들의 행동을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먼저 되돌아보는 어른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원이가 이불을 뒤집어 쓴 진짜 심리는?
올해 각종 영화제에서 걸출한 수상 소식을 전한 영화 ‘소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나오신 분들 많으시죠. 소원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을 짠하게 하지만 그중에서도 아빠 앞에서 창피하다고 이불을 뒤집어쓰는 소원이가 어찌나 안쓰럽던지요.
성폭력을 당한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특히 사건을 쉬쉬하며 덮어버리려는 어른들의 모습에 모든 게 자신의 탓이고,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자존감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말입니다.
철없는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죄책감과 부끄러움만큼 감당하기 힘든 심리적 압박이 없습니다. 다행히 영화 속 소원이는 가족들의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점점 웃음을 찾아가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지요.
‘마음톡톡’에서 만난 성폭력 피해 아동들도 대부분 폭력을 자신의 탓이라 여기고,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을 혼자 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폭력 피해 아동들이 더 이상 이불을 뒤집어쓰지 않도록, 어느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어른들의 마음부터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꼬마가 이불을 뒤집어 쓴 또 다른 심리는?
애니메이션 영화 ‘업’ 속에는 ‘소원’에서와는 또 다른 이불쓰기가 나옵니다. 주인공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불을 천막처럼 쳐놓고 이웃 소녀와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훗날 부인이 되는 이 왈가닥 소녀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의 다락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두기도 했지요.
늘 엄마, 아빠 곁에만 찰싹 붙어 있던 아이들은 대여섯 살이 되면서 자기만의 공간을 찾기 시작합니다. 박스 안에 들어가길 좋아하고, 책상 밑이나 옷장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기이한 행동을 벌이기도 하는데 이게 다 자연스러운 심리발달 과정 중 하나라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아이들을 위한 거실용 텐트까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어른들도 그렇듯 아이들에게도 자신만의 공간을 허용해주는 게 좋은데요. 아이의 비밀 이야기나 솔직한 고백을 듣고 싶다면 그 사적인(?) 공간에 정식 초대를 받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랍니다. 자신의 영역에서는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 말입니다.
갑자기 말문을 닫은 에이미의 진짜 심리는?
영화 ‘에이미’에는 말문을 닫은 소녀가 나옵니다. 세계적인 락 스타를 아빠로 둔 에이미는 어느 누구보다도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습니다. 아빠가 공연 중 감전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말이지요. 사고 이후 에이미는 돌연 말을 잃어버립니다.
에미미와 같은 선택적 함묵증은 가족간의 불화나 학대, 3세 이전의 충격적인 경험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대부분 심리적인 상처나 갈등이 원인이기 때문에 이를 찾아내어 풀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이미의 경우, 대규모 야외 콘서트장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노래 소리에 4년 만에 입을 뗍니다.
‘아빠’라는 외침이 그 첫마디였는데요. 이제껏 자신 때문에 아빠가 죽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작은 소녀가 그간 얼마나 큰 마음의 짐을 지고 있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마음의 병인 함묵증은 다그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주면서 따뜻하게 상처를 보듬어 줄 때 비로소 마음이 열리는 것인데요. 아이들의 침묵은 마음이 아프다는 가장 극단적인 신호입니다. 혼내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치료’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집안 대청소에 도전한 니콜라의 진짜 심리는?
한창 호기심 많고 엉뚱한 열 살 니콜라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부쩍 사이가 좋아진 부모님, 그 덕에 동생이 태어나면 자신은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 것이지요. 영화 ‘꼬마 니콜라’ 속 니콜라는 진심으로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칩니다. 일단 숲 속에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집안 대청소를 해 부모님의 점수를 땁니다. 물론 부모님은 그 속사정을 알 리 없죠.
태어나면서 부모의 완벽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라온 첫째에게 동생의 탄생은 ‘폐위된 왕’의 심정으로 대변됩니다. 그간의 지위와 특권이 박탈됨에 따른 상실감과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부모는 맏이로서의 책임과 양보만을 강조하니 그 심적 부담감은 커지기만 합니다.
동생에 대한 적개심과 질투는 맏이의 당연한 심리변화인데요. 무조건 ‘네가 참아야 한다’고 밀어붙이면 반항심만 커지게 됩니다. 오히려 동생 앞에서 권위를 세워주고, 형의 ‘의무’보다는 ‘권한’을 강조하며 자연스럽게 맏이의 역할을 긍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고 하네요. 동생이 생기면 자신은 버려질 거라 여기는 니콜라의 공포, 그저 웃어넘길 일만은 아닌 것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