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인상 억제와 전력소비 증가, 전력수급 안정
2000년대 들어 국제 에너지가격의 상승에 따라 국내 등유가격과 도시가스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지난 9년간 각각 139%, 61% 오른 반면 전기요금은 21% 상승하는 데에 그쳤습니다. 이에 따라 등유소비량은 동일 기간에 52% 급감했으나 전력소비량은 68%나 증가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필요한 에너지를 전량(97%) 해외에서 수입하는 나라는 에너지원간 상대적인 가격체계의 변화가 국제 가격의 변화를 반영했을 경우 국가 전체적인 관점에서 에너지원간 소비 대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전기요금은 그 동안 물가 인상, 제조업의 가격경쟁력 저하 등을 이유로 정부에 의해 인위적으로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규제를 받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2002년에서 2011년 사이 우리나라에서 원자력과 함께 전력 생산의 주된 연료로 사용되는 유연탄과 LNG 가격은 각각 178%, 124% 급증했는데, 전기요금은 단지 21% 상승에 그쳤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들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한전의 원가보상률(판매단가/전력공급원가)은 2005년 이후 100%를 밑돌면서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 책정은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를 초래하여 한전의 신용등급 하락, 차입비용 상승 등의 비용도 유발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등유, 도시가스, 전기 등의 에너지원간 상대적인 가격체계가 인위적으로 왜곡됨으로써 등유, 도시가스 등을 사용해도 되는 상황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비효율적인 소비 대체 현상이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가까운 예가 겨울철 난방입니다. 최근 등유난방이 전기난방으로 급격하게 대체되면서 2009년 이후 겨울철 전력수요가 여름철 전력수요를 넘어서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KDI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에너지 소비가 전기로 대체되면서 2007년 한 해에만 1조원 가까운 에너지가 낭비되었다고 합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요금 인상 억제로 인해 한전에 누적되는 대규모 적자야 나중에 세금으로 보전할 수도 있겠지만, 전기를 비효율적으로 소비함으로써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 낭비는 국민들이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사회적 비용인 것입니다.
요금에 기반한 전력 수요관리
2000년에서 2007년 사이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해외 주요국의 연평균 전력소비량 증가율이 0.5%~1.6%이었던 반면, 우리나라 전력소비량은 (전기요금 인상 억제 등을 이유로) 2000년에서 2009년 사이 연평균 5.7%씩 증가해 왔습니다.
이러한 전력소비 증가 추세는 향후에도 쉽게 꺾이지 않을 전망입니다. 그러나 발전설비 부족으로 인한 전력수급 불안이 2010년대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존재함을 감안한다면, 적극적인 전력 수요관리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전력 수요관리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좁은 의미에서 전력 수요관리는 한전이 특정 전력소비자, 주로 대규모 전력소비자와 계약을 맺고 해당 소비자가 일시적으로 전력사용량이 많은 피크 시간대에 전력수요를 줄이는 경우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넓은 의미의 수요관리는 전기요금체계를 통해 적정한 가격신호를 전력소비자 전체에게 전달함으로써 전력소비자가 자발적으로 피크시간대의 전력수요를 줄이도록 하는 방식을 포함합니다. 전자가 인센티브에 기반한 수요관리라면 후자는 요금에 기반한 수요관리라고 할 수 있지요.
비록 산업용, 일반용 등에서 계절별/시간대별로 차등적인 요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적용되고 있지만 전기요금 자체가 원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규제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전력 수요관리가 사실상 인센티브에 기반한 수요관리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향후 전력수급 불안이 장기간 지속될 전망이고 발전설비 확충에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이 소요됨을 감안한다면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적극적인 수요관리는 불가피하며, 이에 따라 수요관리의 방식을 기존의 인센티브 기반에서 요금 기반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금에 기반한 수요관리는 가격신호에 의해 전력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전력수요를 줄이거나 전력수요를 다른 시간대로 옮기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요금에 기반한 수요관리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격신호가 적절하게 전력소비자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요금에 기반한 수요관리의 일차적인 전제조건은 전기요금의 현실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전기요금의 원가보상률은 2005년 이후 100%를 밑돌면서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습니다. 올해 1월~4월의 경우에는 원가보상률이 80%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전기요금 현실화와 더불어 전력수급 안정을 위한 요금기반 수요관리방안으로는 연료비 연동제의 실시, 계절별/시간대별 차등요금제의 강화, 최대피크 요금제 등 부분적 실시간 요금제의 실시 등이 주요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전기요금 현실화와 연료비 연동제 실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전기요금 현실화: 가격정책과 세제정책의 통합적 접근
최근 전력수급 불안이 지속되면서 전기요금의 현실화 필요성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작년 연 2회에 걸쳐 전기요금을 평균 9.6% 인상했는데, 원가 수준까지 인상했더라면 작년 전력소비량을 4.2% 정도 추가 감축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기요금 현실화는 공급설비가 충분해서 전력수급이 불안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에너지원의 비효율적인 대체를 억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00년대 들어 유류, 가스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전기요금 인상이 억제되면서 에너지원간 상대적인 가격체계가 왜곡되었는데, 이로 인해 유류, 가스에서 전기로 에너지원간 비효율적인 대체가 발생하면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음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전기요금을 원가에 맞춰 현실화하면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에너지원간 비효율적인 대체가 해소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 에너지의 가격에는 상당한 비중의 에너지세가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기와 타 에너지원에 적용되는 세금구조가 매우 차별적이기 때문입니다.
전기를 사용하는 냉난방의 경우 원재료의 세금이 부담되고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가정에서 겨울철 난방을 위해 등유난방과 전기난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고 할 때, 2009년 8월 기준으로 등유난방에 사용되는 등유가격에는 19.4%에 달하는 세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 (전기난방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는 데에 투입되는 우라늄, 유연탄, 천연가스에는 실질적으로 세금이 전혀 부과되지 않거나 부과되더라도 등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당히 작은 비중의 세금만이 부과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와 같이 난방에 사용되는 에너지원별로 최종 소비자가격에 포함되는 세금의 크기 또는 비중에 큰 차이가 있다면, 전기요금을 원가에 맞춰 현실화하더라도 전기난방으로의 쏠림현상을 억제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타 에너지원에서 전기로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 대체가 발생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을 원가에 맞춰 현실화 해야 함은 물론이고 (환경에 대한 영향 등) 에너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원칙을 각각의 에너지원에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차별적인 세금구조로 인해 에너지원간 상대적인 가격체계가 왜곡되는 현상을 해소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에너지부문, 특히 전력과 같은 규제부문에서는 가격정책과 세제정책이 통합적으로 수립될 필요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연료비 연동제는 에너지의 최종 소비자가격을 해당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에 소요되는 연료비에 연동해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에 도시가스요금에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으며, 작년 7월에는 전기요금에도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되었습니다. 연료비 연동제는 에너지 공급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적 요인인 연료비의 변동을 최종 소비자가격에 자동 반영함으로써, 소비자의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를 유도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입니다.
연료비 연동제 하에서는 요즘처럼 석탄발전설비가 부족하여 LNG발전량을 늘림에 따라 발전에 소요되는 연료비가 급증하면 전기요금이 이를 반영하여 자동 인상됩니다. 그러면 전력소비를 줄이라는 가격신호가 전력소비자에게 적시에 전달되기 때문에 전력수급 안정을 도모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현재는 물가 상승을 이유로 연료비 연동제가 적용되지 않고 유보되고 있습니다.
즉 연료비는 증가하는데 도시가스요금과 전기요금이 이를 반영하여 인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도시가스의 경우에는 2008년부터 연료비 연동제가 유보되어 2011년 말 현재 한국가스공사에 4조3천여 억 원의 미수금이 발생하고 있으며, 전기의 경우에는 작년 7월에 도입하자마자 적용이 유보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연료비가 오른다고 물가 문제를 들어 연동제를 유보하면 사실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한 이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연료비 연동제를 통해 수요감소효과 및 미수금을 줄여야 합니다.
물론 연료비 연동제가 연료비의 변동을 그대로 최종 소비자가격에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택용, 일반용, 산업용 등 소비자 그룹별로 그와 같이 소비자가격이 변동하는 위험을 관리하는 능력에는 현실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일반 국민들이 전기나 도시가스를 공공서비스로 인식하는 상태에서는 전기요금이나 도시가스요금에 대해 연료비 연동제를 적용할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불가피하게 정치적인 고려가 개입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소비자 그룹별로 차별적인 위험관리능력이나 전기/도시가스의 공공적인 성격을 고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연료비 연동제 도입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려면, 연료비 연동제 적용이 유보될 수 있는 대상을 주택용/농사용으로 제한하고 산업용/일반용 등 대규모 소비자 그룹은 연료비 연동제 적용 유보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격변동위험에 가장 취약한 그룹이 주택용/농사용 소비자들이며, 전기/도시가스 / 소비의 공공성이 강하게 부각되는 부문도 주택용/농사용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연료비 연동제의 조속한 실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여러 이유로 연료비 연동제의 적용을 유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유보대상을 주택용/농사용으로 제한하고, 다른 대규모 소비자 그룹에 대해서는 연료비 연동제의 본래 취지를 살려 연료비 변동에 따른 전기요금의 변화에 맞춰 자발적으로 수요 절감 노력이 발생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