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보다 값싼상품? 전기요금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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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분야도 원료와 상품 시장이 구분되어 있으니 부가가치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연의 가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확보되는 석유나 석탄, 태양열 등은 1차 에너지로 불린다. 1차 에너지를 사용해 만들어지는 전기는 2차 에너지로 칭해진다. 1차 에너지가 원료이고 2차 에너지가 상품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인 석유보다 2차 에너지인 전기 가격이 더 싸다.
이를 두고 최근 열린 한 정책 토론회에서 서울과학기술대 유승훈 교수는 ‘봉지라면 보다 끓인 라면이, 쌀보다 즉석 밥이 더 싼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유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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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만큼 고급인 전기 에너지

전기에너지

전기만큼 편한 에너지가 어디 있을까? 스위치 하나로 찰나에 빛과 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가 바로 ‘전기’다. 사용하는 과정에서 전기만큼 깨끗한 에너지가 또 있을까? 전기는 소음도 배출 가스도 없다. 한 자동차 광고 카피로 유명해진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표현에 ‘편하고 깨끗하다’라는 이미지까지 갖춘 것이 바로 전기에너지다. 그래서 전기는 ‘고급 에너지’로 분류된다.
하지만 세금 구조 때문에 고급 에너지인 전기의 가격이 원료 에너지인 석유보다 낮게 형성되면서 왜곡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화여대 석광훈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국내 에너지원별 가격은 동일 열량 기준으로 전기가 경유나 등유 등 발전 연료보다 크게 낮았다.

국내 에너지원 별 가격

Mcal 기준으로 산업용 전기는 108원, 가정용 전기는 144원을 기록했다. 반면 등유와 경유 세전 가격은 모두 156원으로 분석됐다. 세금이 포함되지 않은 상태의 발전 연료 가격이 2차 에너지인 전기 가격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난 것이다. 유류세가 포함되면 석유제품 가격은 더 높아지는데 경유는 254원, 등유는 192원으로 전기 요금보다 2배 이상 높게 형성됐다. 고급 에너지인 전기에 소비가 몰리는 것이 당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난방에너지 시장, 전기가 주도하다

등유, 경유, 석탄은 전통적인 난방 에너지다. 하지만 이제는 고급 에너지인 전기가 등유나 석탄을 대신해 주력 난방에너지로 사용되고 있다. 전기를 만들려면 석유 석탄 같은 화석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똑같이 난방 용도로 사용될 거라면 굳이 화석 에너지를 태워 전기에너지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 난방에너지로 사용 가능한 경유로 발전하고 거기서 생산된 전기로 또다시 난방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에너지 낭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화석 에너지를 난방 연료로 사용하면 대기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불안감은 전기 난방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화석 에너지를 투입한 발전 과정에서 전기 역시 유해 배출 가스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이 전기 난방을 선호하는 것은 값싸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전력 피크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력 피크는 하절기에 발생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에어컨 등 냉방기기 사용이 절정에 달하는 7~9월 사이가 최대 전력 사용량의 정점을 찍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동절기 전력 사용량이 피크를 찍고 있다. 전기장판이나 전기히터 등 난방용 전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에너지를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열 에너지 수요의 전력화 심화..그 원인은?

최근 들어 에너지원 간 세금 구조의 형평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금 구조 때문에 에너지원 간 가격경쟁력이 왜곡되고 특정 에너지 특히 전기에 대한 수요 집중이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 에너지의 수요 급증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에너지 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가정*산업부문 최종 에너지 소비량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에 52.4%였지만 2015년에는 14.9%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전력에너지는 17.3%에서 41.4%로 크게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국내 모든 ‘열에너지 수요의 전력화’가 진행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열원으로 사용되는 에너지는 모두 전기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택이나 상업용 냉난방 에너지는 모두 전기로 대체되고 있고 심지어 심야 전기를 사용한 보일러까지 정책 차원에서 보급된 바 있다. 농어촌에서는 농수산물을 건조하는 에너지도 전기를 사용할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OECD 국가중 우리나라의 전력소비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는 것이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공짜 에너지는 없다! 왜곡된 전기 요금 구조 개선 필요

올해 살인적인 폭염을 견디면서 요금 폭탄을 맞은 소비자들은 전기 에너지 가격이 낮다는 주장에 ‘무슨 이야기냐’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전기 요금 폭탄은 냉방 전력 사용량이 높아지면서 가정용 요금에 적용된 살인적인 누진제도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전기 가격은 동일한 발열량 기준으로 타 에너지에 비해 크게 낮은 것이 사실이다. 고급에너지인 전기에너지가 석유나 석탄 등에 비해 월등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이유는 세금 구조 때문이다.
석유제품인 경유는 관세,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지방주행세, 부가가치세, 수입부과금, 품질검사 수수료 등 다양한 제세 부과금이 매겨지면서 소비자 가격 중 50%를 넘나드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서민 에너지인 유연탄도 개별소비세와 부가가치세가 매겨진다. 하지만 전력은 부가가치세 10%만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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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 유명한 경구(警句) 중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비록 공짜는 아니지만, 소비자들은 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값싸게 사용하는 대가로 석유에너지 등에 편중된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을 부담하며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석유와 전기, 가스 등의 에너지원 간 균형적인 조세 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은 특정 에너지에 편중된 세금 구조가 에너지 상대가격의 왜곡을 낳고 소비 불균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싸지 않은 전기가 왜곡된 세금 구조로 값싸게 이용되면서 낭비 요인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소비자에게 에너지는 ‘값싼 점심’이 아니라 ‘값비싼 식사’가 될 수도 있다.

봉지 라면 보다 끓인 라면 가격이 더 싼 아이러니, ‘값싼 점심’이라는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세금 구조에 따른 에너지 상대가격의 불균형이 반드시 해소돼야 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industrial writer GS칼텍스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