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협정이 발효됨에 따라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Business As Usual) 대비 37%를 줄여야 한다. 2015년 도입한 배출권거래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정책이다. 정부가 탄소세 대신 배출권거래제를 선택한 이유는 저탄소 경제체제로 전환을 위한 ‘시장의 기능’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1톤을 추가로 배출하기 위해 기업이 만원을 지불해야 한다면, 배출권을 사는 것이 유리한지 내부적으로 1톤을 줄이는 게 유리한지 선택해야 한다. 저탄소 패러다임이 강화된다고 볼 때, 무작정 부족한 배출권을 사는 것이 유리한지 저탄소 핵심기술을 개발해 미래 시장을 주도할 지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장의 기능이다. 시장은 가격을 형성하고 참여자에게 합리적인 의사결정 기준을 제시해 장기적으로 경제체질 개선을 유도한다.
정부는 시장이 왜곡없이 작동하는지 올바른 가격시그널을 제시하고 있는지 글로벌경쟁력에 피해는 없는지 감시하고 조율해야 한다. 배출권거래제는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에너지 사용은 보다 효율적으로 하면서 동시에 경제성장과 일자리창출을 도모하기 위한 방향타 역할을 하는 제도이다. 때문에 도입보다 중요한 것이 ‘운영’이다. 정부의 배출권거래제 1기 운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다만 2018년 배출권거래제 2기 출범을 앞두고 운영에 대한 개선요구 사항은 분명하다. 네 가지 이슈로 구분해 살펴보자.
첫째, 배출권거래제 2기 할당량 이슈이다.배출권거래제 대상 기업에게 할당량은 일종의 ‘자산’이다. 1톤이라도 더 할당받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더더욱 공정한 룰에 의해 배분되어야 하며, 업종별 감축방향 또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1기 할당 시 크게 두 가지 사항이 쟁점이 된 바 있다.
우선, 업종별 실질적 감축률인 조정계수 산정방식이다. 당시 개별 업종에 배정된 할당량이 정해져 있어 생산설비 신증설을 추진할수록 더 불리한 조정계수를 부여받았다. 석유화학 업종은 2017년까지 3년 내에 온실가스 15.4%를, 비철금속 업종은 25.6%를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에 대해 업종 관계자들은 할당 시 개별 업종의 성장률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2조 1항 5조에 따르면 배출권 할당 시, 계획기간 중 업종의 예상성장률을 고려해 할당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당시 정부는 일괄적으로 2011~2013년 평균 배출량을 기준으로 배출권을 할당했고, 성장하는 업종의 신증설이나 쇠퇴하는 업종의 생산감소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다음으로 온실가스 감축대상에 간접배출을 포함했다. 전력, 스팀, 열을 최초 생산하는 업체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지만 이를 활용해 설비를 가동하는 수요업체는 그렇지 않다. 이를 규제하는 것은 이중규제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할당량이 시장에서 거래 중인 ‘자산’이라는 점에서 재산권 침해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2017년 2월 2일 배출권거래제 관련 주요 행정소송 판결 시 재판부는 배출권의 할당을 ‘수익적 행정행위’로 규정한 바 있다. 따라서 현재 간접배출로 인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추가 할당량을 배분하는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2기에는 이마저 중단될 가능성이 제기되어 기업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향후 Global Stocktaking이나 IMM(International Market Mechanism), 국가간 배출권거래시장 연계 등을 고려해도 간접배출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2기부터 유상할당이 시작된다. 유상할당 대상 업종으로 분류되느냐 아니냐는 비용상승과 직결되는 이슈이다. 100% 무상할당을 받는 것과 97%만 무상으로 할당받고 3%는 정부에 돈을 내고 구매해야 한다면 누구나 전자를 선호할 것이다. 특히나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국내 주력산업의 경우 글로벌경쟁력을 고려해 긴 호흡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2기부터 3%만큼 유상할당을 시행할 예정이나, 다음의 경우에 한해 100% 무상할당을 유지할 방침이다. 시행령에 따르면 ① 무역집약도 30%이상 업종, ② 생산비용발생도 30%이상 업종, ③ 무역집약도가 10%이상이고 생산비용발생도가 5%이상인 업종이 그 대상이다. 그런데 정부는 아직 어떤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무역집약도와 생산비용발생도를 산정할지 정하지 않았다. 주로 사용되는 산업연관표는 매년 한국은행에서 발행되지만 제작 특성상 5년마다 실측표를 작성하고 나머지는 실측표에 기반한 추정치로 업데이트 되기 때문에 기업의 사업보고서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데이터의 부정확성으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는 명확한 기준을 수립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미리 제거해 줄 필요가 있다.
셋째, 2기에는 벤치마크 적용 업종이 확대될 예정이다. 배출권을 할당하는 방식은 크게 그랜드파더링과 벤치마크로 나뉜다. 전자가 과거 배출량 기준으로 감축률을 정해 할당하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에 유리하게 할당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보다 효율적인 생산방식을 지향하고 저탄소 기술개발을 촉진하려는 측면에서 벤치마크 적용 업종을 확대하고자 준비 중이다.
다만, 벤치마크 계수는 동일 업종 내에서도 여러가지가 존재할 수 있으며 적용대상상품과 적용설비경계를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 업종에서 에틸렌 1톤 생산에 대한 벤치마크 계수를 산정하려면 생산에 사용된 적용설비경계가 동일해야 생산공장간 효율비교가 가능하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업종별로 준비한 벤치마크 계수는 적용설비경계가 상이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를 사용하는 등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선 적용대상상품과 적용설비경계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세우고, 다음으로 그 기준에 근거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검증하며, 최종적으로 업종 특성이 고려된 벤치마크 계수를 도출하는 일련의 체계를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넷째, 정부는 배출권거래제 1기 잉여배출권의 이월제한을 검토 중이다. 이유는 배출권 가격이 높게 형성되었기 때문인데, 시장의 가격기능이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부 개입은 최소화 될 필요가 있다.
2017년 2월 21일 현재 한국의 배출권가격은 24,000원이다. EU의 6,200원(5.04유로), 중국의 6,400원(상해기준 38.09위안)에 비해 약 4배 가량 비싼 상황이다. 가격상승의 요인으로 1기 전체의 배출권 공급부족을 꼽기도 하지만 이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제도 시행과정에서 노출된 정책의 불확실성이 잉여배출권의 매도보다는 이월을 선택하게 했다는 분석이 많다. 대표적으로 조기감축실적에 대해 정부는 동일한 1톤으로 환산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0.525톤으로만 보상받게 되었다.
과거 EU의 사례를 보면, EU ETS 1기 당시 잉여배출권의 이월을 전면 제한하자 배출권 가격이 폭락해 결국 0유로에 수렴한 바 있다. 2기의 경우 이월을 전면 허용해 가격이 5~10유로 수준에서 유지된 바 있다. 시장을 통해 형성되는 배출권의 가격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시장의 현황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가격이 잘 형성될 수 있는 거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따라서 자산 처분의 자유를 제한하는 듯한 이월제한에 앞서 정부는 최대한의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정부가 보유한 배출권거래제 예비분은 조기감축실적, 시장안정화, 기타예비분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시장안정화 예비분은 가격 급락 혹은 급등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물량으로 부족하다면 기타예비분을 전용할 여지가 있다. 예상치 못한 신증설을 위해 마련된 기타예비분의 경우 할당취소 물량이 편입되면서 2017년까지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정부는 잉여 기타예비분을 소각처리할 방침을 세워둔 바 있었다. 1기 전체 할당량 중 일부를 예비분으로 편성한 것이므로 잉여예비분은 다시 시장으로 돌려주는 것이 소각처리보다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 자산 처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시장체제의 근본원칙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는 늘 합목적성을 견지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남들보다 앞서 기초체력을 다지는 중이라면 현재의 노력은 경제체질의 개선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기초체력이 쌓이는 상황을 점검하고 이에 합당한 부하를 더해야 체계적 체력증진이 가능하다. 제도는 도입보다 운영의 디테일이 더 중요하다. 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도록 조정하는 정부의 균형감각이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