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석유, 못다 이룬 꿈인가 대국민 희망고문인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오르 내리고 내수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00원대를 기록하던 당시, 사단법인 5대 거품빼기 운동본부라는 단체는 국민석유회사를 설립해 기름값을 낮추겠다는 기치를 내걸어 세간을 주목을 받았다.
이 단체는 통신, 카드, 약값, 은행 금리와 기름 등 5대 상품 거품빼기 운동을 전개했는데  특히 기름값 거품을 빼겠다며 직접 국민석유회사를 설립하겠다고 선언했다.

인터넷 통한 자본 약정 나서다

국민석유는 2012년 9월, 국민석유회사 설립준비위원회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당시 국민석유 측은 인터넷 운동 등을 통해 총 410억원의 참여 약정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국민석유가 출범해 기름을 생산하게 되면 기존 정유사 공급 가격 보다 리터당 200원 이상 싸게 판매할 수 있고 수익성이 높은 석유화학사업까지 진출하면 최대 400원까지 기름값을 낮출 수 있다는 청사진도 소개됐다.

국민석유출범준비위원회는 약정금액으로 1000억원이 모이면 국민석유회사를 설립하고 약정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국민석유 신주 인수 우선권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민석유는 2013년 3월, 인터넷 약정에 참여한 사람이 3만3800여명, 약정액은 1062억원이 모였다고 밝히며 국민석유주식회사라는 이름의 에너지 기업 설립을 선포한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유사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게 된 것인데 다만 정제 설비 건설 등에 천문학적 자금과 상당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해 단계별로 사업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단계적 사업 로드맵 제시하다

국민석유 주식회사의 단계적 사업 로드맵

국민석유주식회사는 1단계 사업으로 완제품 석유를 수입 판매해 국민석유 직영 및 거점 주유소를 통해 시중 기름값 보다 리터당 200원 저렴한 기름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정제 설비 건설과 가동에 앞서 완제품 석유수입을 통해 먼저 석유유통사업에 진출하겠다는 전략을 제시한 것이다.

2단계로는 자체적으로 석유제품을 브랜딩해 법정 품질 기준에 맞는 제품을 제조·판매하며 시중가격보다 15% 저렴한 기름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소개했다.

마지막인 3단계에서 국민석유는 직접 정제설비를 건설해 휘발유 일산 30만 배럴, 경유는 45만 배럴 규모의 석유제품을 생산하기로 했다. 2017년까지 최첨단 친환경 정유공장을 건설해 20% 저렴한 기름을 제공하겠다는 일정표도 제시했다.

또한 단계별 사업 전략의 첫 단추인 완제품 석유 수입을 위해 정부에 석유수입업 등록 절차도 밟게 된다.

망치 소리 들리지 않는다

2016년 5월 현재, 국민석유는 석유를 수입하지도 않았고 거점 주유소도 없다. 정제 공장 건설을 위한 부지는 확보하지 못했고 정제설비 건설을 위한 망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석유를 수입하지도, 정제공장이 건설되지도 않았으니 시중 기름값 보다 리터당 200원을 낮춰 공급하겠다던 그 석유가 있을 리 없다.

현재 천안에 소재지를 둔 국민석유는 여전히 이태복씨를 대표로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석유와 관련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법적 지위는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자등록서에는 ‘액체연료 및 관련 제품 도매업’으로 업종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석유 유통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정제업, 석유수출입업 또는 석유대리점, 주유소 중 어느 영역에서도 법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름값 인하는 실현 가능했나?

국민석유는 출범 당시부터 사업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에 휩싸였다. 기업의 존재 이유인 수익을 창출하고 주주들에게 배당을 실현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기름값을 낮출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을 제기했던 업계 전문가들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국민석유를 둘러싼 논란
휘발유, 경유, LPG 가격구성

기름값을 모니터링하고 발표하는 시민단체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에 따르면 올해 5월 둘째 주 기준 휘발유 소비자 가격은 리터당 1375.56원을 기록했는데 이중 정부 세입에 포함되는 제세공과금이 65.37%에 달하는 899.24원으로 나타났다. 또한 산유국 원유 도입 비용 등을 의미하는 국제 휘발유 가격은 394.1원으로 분석됐다.

주목할 대목은 주유소 유통비용과 마진은 5%에 불과한 69.05원, 정유사 마진과 유통 비용은 14원 수준에 그쳤다는 점이다. 기름값에서 정유사와 주유소 단계의 마진과 유통비용을 모두 합해도 리터당 100원이 되지 않는 상황을 감안할 때 1단계로 200원 수준의 기름값을 낮추고 궁극적으로 400원까지 인하시킬 수 있다는 국민석유의 선언은 불가능하다는 근거가 되는 자료인 셈이다.

투자자 피해 우려한 금융 당국

국민석유의 행보에 제동을 건 것은 잠재적 경쟁 사업자인 정유사도, 국민석유 상표 주유소와 시장을 나눠 가져야 할 주유소도 아니었다.

금융 정책 당국이 국민석유의 발목을 잡았다. 국민석유는 금융감독원에 국민주 공모를 신청했는데 사업 계획이 명확하지 않다며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반려했다.

금융감독원이 공모 신청서를 반려하자 국민석유는 사업 내용 등을 보강한 증권신고서를 다시 제출했고 신고서에서는 사업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담겼다.

국민석유는 증권신고서에 회계법인 감사 결과를 첨부했는데 휘발유와 경유의 도입단가를 20% 할인해 들여올 수 있다는 국민석유의 사업 계획을 분석한 결과 신뢰할 수 없고 사업 개시 이후 5년간 매년 매출손실과 영업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평가됐다. 정유사들과 경쟁해 기름값을 낮추면서도 주주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이익 창출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해석된 것이다.

약정에는 참여했지만 실제 투자는 없었다

자금 공모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사업의 위험성을 공지한 끝에 금융감독원은 주식 공모를 승인했는데 이번에는 국민석유가 공모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국민석유는 주당 5000원의 가격으로 총 2000만주를 모집해 1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는공모를 진행했는데 청약 금액이 150억원 미만일 경우에는 전액 환불한다는 옵션 조항을 충족시키지 못해 불발에 그치게 된 것이다.

1억5000만불의 외자유치에 성공했다고 발표하고 있는 이태복 대표

국민석유가 추진하는 사업의 진정성에 대한 회의적인 사건도 연이어 발생했다. 자금 공모 작업이 진행중이던 시점에 국민석유는 싱가포르 투자회사로부터 1억5000만달러(당시 환율 감안시 약 1600억원)의 외자를 유치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서는 바레인, 터키의 석유 트레이딩 및 투자 기업들과 석유 장기공급을 위한 상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외자 유치나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민석유측은 정유사들의 방해공작과 음해 등으로 주식 공모가 불발된 것이 외자 유치 등을 받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라는 입장이지만 한편에서는 국민주를 공모해 대기업의 시장 독과점에 대항하겠다는 기치를 내건 일종의 사회적 기업이 법적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로 투자자들을 유인하려 했다는 비난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석유, 여전히 살아 있지만…

‘착한 기름 국민 석유’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국민주 공모 방식으로 정유사를 건설하려도 시도는 일단 무산된 상태다. 시중 기름값을 낮추겠다는 선언에 환호했던 소비자들은 실현 가능성에는 회의를 품었고 국민주 공모에 참여하는데는 주저했다.

기름값 거품을 빼겠다는 시민 활동에서 출발해 실제로 국민기업을 설립해 정제산업에 진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해외에서 만들어진 완제품 석유를 수입하는 단계 조차 넘지 못하고 중단된 상태다.

현재 국민석유는 설립 당시 선언했던 착한 기름값을 실현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소규모 무역 사업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유화유 등을 소규모로 해외에 수출 판매하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민석유 주식회사’라는 명칭으로 석유와 상관없는 유통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석유 관계자는 “국민석유가 설립 당시 선언했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정제업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회사가 생존하는 것이 필요하고 현재의 상황은 그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민 정유사 출현, 국민석유 몫이다

국민석유 출범 당시 국내 한 중앙 언론은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험한 표현까지 동원하며 사업의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하지만 국민주 공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국민석유는 청약금을 환불 조치했고 이후 진행된 운영 자금 증자에서 참여자들에게 사업 목적이나 자금 사용 등을 의도적으로 기망(欺罔)하지 않았다면 국민석유를 사기 기업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다만 고의성이 없더라도 실현 불가능한 또는 현실화되기 어려운 ‘꿈’을 소비자들에게 팔려 했다는 지적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시장 경제에서 사업은 성적으로 얘기해야 한다. 국민석유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는 ‘국민석유 주식의 1주당 자기자본가치가 마이너스 3만5532원에서 4만2957원으로 책정됐다‘는 회계법인의 분석이 소개되어 있다. 당시 국민석유가 발행한 주당 발행 가액이 5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사업이 진행됐다면 투자자들의 원금 보장은 아예 불가능했고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고 결국은 도산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국민석유는 여전히 주식회사 형태로 살아 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유사가 설립될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의미다. 판단은 국민 몫이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국민석유가 제시해야 한다. 높은 기름값에 시름이 깊었던 국민들에게 한 때 나마 기름값이 싸 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다 준 국민석유가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려던 것인지 실현 불가능한 꿈에 대한 희망 고문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주장하는 것 처럼 정유사 등 기득권 세력의 음해로 잠시 주춤하고 있는 것인지는 온전히 국민석유가 보여줘야 한다.


industrial writer 국내 유가 에너지, 에너지칼럼
지앤이타임즈 김신 발행인

전북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는 에너지 분야 전문 언론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몸담고 있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