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로 여러분과 만나게 된 전준희 과장입니다.
앞으로 에너지와 관련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가지고 자주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 세계에 흐르는 어두운 기운
그렇잖아도 올해 세계경제의 전망이 어둡다는 예측이 쏟아지는데, 늘 불안하던 중동의 정세도 만만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9년간 지속된 이라크전을 마무리하며 미국은 이라크에서 물러났습니다만, 이란은 이 기회를 빌어 핵무장을 서두르고 있었지요. 그러나 새로운 핵 보유국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미국은 전세계 국가들에 협조를 구하며 이란에 금수조치라는 경제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이란은 전세계 원유수송의 관문이라 할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익숙한(?) 그들의 카드를 꺼내든 상황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실제적 손실계산을 따져볼 때 분쟁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신중론과 제3의 오일쇼크를 운운하는 호들갑스러운 반응도 있는 것 같습니다. 비산유국인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산유국이라며 전세계를 대상으로 협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은근히 부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산유국이라고 해도 전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니, 당사국 모두 현명한 선택을 하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원유 분쟁, 그리고 대한민국
회사에서도 원유도입 부서는 사태추이 파악에 분주한 것 같은데요. 지난해에 우리 블로그에서도 충격적이었던 1,2차 오일쇼크를 회고하며 오일쇼크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기도 했었네요. 자, 그렇다면 이번 갈등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 뿐 아니라 지구상 모든 나라에게 중요한 곳입니다. 전세계 원유의 35%가 운반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먼저 이란산 원유의 금수조치로 인해 우리나라는 어떤 영향을 받는 걸까요?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원유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세계에서 이란산 원유 수급으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가 드물 정도입니다. 특히 이란산 원유 의존율이 100%인 스리랑카, 51%인 터키, 25%인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곳은 생존이 걸린 문제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주변국가들도 자유롭지 않아서 중국은 수입량의 20%, 일본은 17%, 우리나라는 9%의 원유를 이란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사실상 자국 내에서 이란산 원유를 수입 금지시켰고, 다른 나라들에게도 이란 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동참요구에 정부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동참하게 되면 이란산 원유만큼 다른 지역에서 사와야 합니다. 다행히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은 증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만, 가격이 올라갈 것은 불문가지지요.
오일쇼크,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들 파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어떨까요? SK이노베이션은 10%(하루 3만5천 배럴), 현대오일뱅크는 20%(하루 7만 배럴)를 이란에서 도입한다고 합니다. GS칼텍스는 다행히 이란산 원유를 쓰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국가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맞불을 놓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뤄진다면 어찌 될까요?
이 경우는 더더욱 곤란한 상황이 되겠지요. 이란산 원유뿐 아니라 중동산 원유 전체의 수송이 어려워져 도입량의 80% 이상을 중동산 원유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에 직격탄이 될 전망입니다. GS칼텍스도 76.3%를 중동으로부터 들여오고 있기 때문에 사태가 악화될 경우를 대비해야 합니다. 해협이 봉쇄되거나 국지전이 일어나면 원유수송선은 해당 지역을 피해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수송비의 추가 부담이나, 러시아나 호주와 같은 중동지역 이외의 산유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원유 가격대가 낮게는 160달러, 높게는 210달러까지 치솟을 거라고 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비상사태를 대비해 비축원유 1억8천만 배럴(6개월분)을 방출하거나, 차량 2부제 시행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산유국은 항상 약자여만 할까?
비산유국인 우리나라는 언제까지 산유국의 이런 도발에 속수무책이어야 할까요?
장기적으로 전국민적인 에너지절감 노력, 에너지 소비구조에 대한 대책마련과 체계적인 실행, 대체에너지 개발, 자원자급율의 제고도 필요하겠지만, 원유 공급선을 다양화하는 방안도 재검토해볼 시점인 것 같습니다.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로 인해 우리나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안정적인 원유공급방안을 찾았습니다. 1982년부터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 도입되는 원유에 정부가 운송비를 지원해주기 시작했는데요, 중동산 원유 대비 수송비 차액에 대해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04년부터는 방식이 조금 바뀌어서 석유수입부과금을 할인해주는 것으로 제도가 변경되었습니다. 미주, 아프리카, 유럽, 러시아 등을 염두에 두고 실시된 이 제도는 최소 700만 배럴 이상이 돼야 하고, 1년 이상 장기계약을 맺어야 하며 연간 4항차 이상 도입돼야 하는 등 열가지가 넘는 단서조항들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대부분의 국내 정유시설들이 중동산 원유에 맞게끔 설계되어 있어 다른 지역 원유와 궁합이 안맞는다는 이유도 있는 관계로, 2004년부터는 국내 어떤 정유사도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GS칼텍스는 2011년 현재 21개의 나라에서 원유를 들여오고, 이는 전체 도입량 중 23.7%에 달하는데요, 원유도입선 다변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배럴당 1달러가 오르면 국내 소비자 물가는 0.1% 상승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저도 운전하는 사람으로서 모쪼록 이번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어 고통받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설날이 코앞이네요. 세상사 고민일랑 접어두시고 가족과 따뜻한 정만 나누시는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