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에너지 소비
우리나라의 총에너지 소비는 경제성장과 함께 빠르게 증가하였습니다. 시기별로 구분하여 보면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는 경제가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이룩함에 따라 총에너지 소비 역시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였습니다. 특히 1970년대 이후에는 중화학공업이 경제성장을 주도하면서 에너지 소비가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1990년대에도 철강이나 석유화학과 같은 에너지 다소비업종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총에너지 소비가 크게 증가하였고, 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산업구조도 비교적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산업 위주로 개편됨에 따라 에너지 소비 증가율도 크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1982년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과 총에너지 소비 증가율을 비교한 것입니다.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경제성장률과 총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거의 유사하게 움직이고 있고 2000년대 들어서는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2010년에 경제성장률이 급증하고 총에너지 소비도 크게 증가한 것은 2009년 국제 금융위기로 우리경제가 침체를 보이고 총에너지 소비 증가세도 크게 둔화된 것에 따른 상대적 효과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파악됩니다.
그래프에서 나타나는 특징의 하나는 1980년대에는 경제성장률이 에너지 소비 증가율보다 높았던 반면 1990년대에는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1990년대에는 에너지 다소비업종이 크게 성장한 것에 따른 결과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정보통신과 같은 에너지 저 소비업종이 경제성장을 주도함에 따라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크게 둔화되어 경제성장률이 에너지 소비 증가율보다 높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에너지 소비에 대한 기온의 영향
에너지 소비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크게 경제적 변수와 비경제적 변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변수로는 가격이나 소득 또는 산업의 생산활동 등을 들 수 있고, 비경제적 변수로는 기온을 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수요는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즉 가격의 변화에 비하여 에너지 소비의 변화는 매우 적게 나타납니다. 에너지가 지닌 필수재적 특징 때문입니다. 반면에 소득이나 생산과 같은 변수에 대해서는 가격보다 탄력적으로 반응합니다. 1990년대까지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높았던 것은 활발한 경제활동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둔화되면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기온이 에너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에 비하여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에너지 소비 변화에 소득이나 가격과 같은 경제변수보다 기온 변화의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너지 소비 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을 비교한 그래프에서 2004년에서 2008년까지의 기간을 보면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데 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높아지고, 또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처럼 경제성장률과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서로 반대의 움직임을 보인 것은 기온 변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한 통계기법을 이용하여 분석해 보면 총에너지 소비 변화에서 기온의 변화로 인한 소비 변화량의 비중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5년 총에너지 소비는 전년보다 5,406 TOE 증가하였는데 그 가운데 64.5%가 기온변화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즉 에너지 소비 변화는 소득이나 가격과 같은 경제변수보다 기온변수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2006년은 경제성장률이 전년보다 1.2% 높아진 5.2%를 기록하였으나 총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2.1%로 오히려 전년보다 1.7%p나 하락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기온 변화가 총에너지 소비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것입니다.
만약 2006년의 기온이 2005년과 동일하였다면 2006년의 총에너지 소비는 전년대비 4.3% 증가하여 경제성장률과 마찬가지로 전년의 증가율보다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0년의 경우에도 총에너지 소비 변화의 32.6%가 기온변화에 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온 변화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에너지로는 전력을 들 수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석유나 가스와 같은 에너지에 비하여 전력의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소득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가전기기 보급이 확대되고, 특히 냉방 및 난방용 전력기기 보급이 크게 증가한 것에 따른 결과입니다. 전력 소비 추이를 보면 여름철과 겨울철에 소비가 크게 증가하는 계절성을 보이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변동성이 더욱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석유 등 화석연료의 가격은 급등한 반면 전력요금은 물가안정 등의 이유로 인상이 억제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석유나 가스에서 전력으로의 대체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전력 소비가 크게 증가하고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공급설비는 수요에 맞추어 증가하지 못해 최근 여름철과 겨울철에 전력수급 불안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전력 수요가 기온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입니다. 2011년 발생한 전국단위의 정전사태가 기본적으로는 수요예측의 실패로 인해 발생한 사고이지만 이상고온과 같은 기온변화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에너지 소비에서 기온 변화의 영향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향후 에너지 수급 분석 및 전망에서 예측 오류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기온의 예측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상하지 못한 기온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 에너지 수급 불안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온변화가 에너지 수요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정확히 분석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 증가로 기상 이변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므로 기온과 관련된 다양한 시나리오 하에서 에너지 수요를 예측하고 적절한 수급안정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