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중반까지 배럴당 100달러가 넘던 국제유가가 연초에 20달러 대까지 떨어졌다. 예상치 못 했던 큰 폭의 유가하락은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우리의 경우 득보다 실이 큰 것으로 보인다. 저유가 국면이 가시화되자 사우디는 작년에 우리나라 주식을 5조원 가량 매도하였고 아랍에메리트는 7000억원 가량 우리 주식을 매도하였다. 두 나라 합쳐서 약 5.7조원을 매도 한 것이다. 작년도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3.5조원 가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사우디와 아랍에메리트의 매도물량이 엄청났다는 점이 확인이 된다.
1973년 오일쇼크 당시 배럴당 3달러 정도였던 유가가 12달러 이상으로 4배 이상 상승하자 전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연료소모가 큰 대형 차량 생산에 비교우위가 있던 미국 자동차 산업은 에너지 가격상승으로 인해 철퇴를 맞았다. 연료효율이 좋은 소형차량에 강한 일본자동차 산업이 강자로 등극한 것도 오일쇼크가 가져온 커다란 변화 중 하나였다. 유가가 오르면서 전세계가 불황을 경험하는 가운데 제품제조원가 상승으로 인해 물가는 오르면서 불황과 물가상승이 겹치는 소위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세계 금융시장의 자금흐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점이다. 원유판매대금이 늘어나면서 중동국가로 막대한 달러가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 가격상승으로 인한 손실이 산유국의 이익으로 집중된 것이다. 산유국들은 이 돈으로 거대한 토목 및 건설공사를 발주하기 시작하였고 세계경제에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었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중동시장에 진출한 것이 바로 이때였고 우리에게 소위 ‘중동특수’가 나타났다. 달러자금이 우리나라로 유입되면서 부동산가격이 폭등하는 등 부작용도 일부 있었지만 우리 경제는 이 덕분에 오일쇼크의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오일머니는 국제금융시장 내에서 자금흐름을 변화시키면서 소위 유로달러 시장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미국과 사이가 안 좋은 산유국들이 오일머니를 유럽에 있는 금융기관에 예치하면서 소위 유로달러시장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지기 시작하였다. 유로달러 시장에 자금이 풍부해지자 이를 운용하는 금융기관들은 전세계 기업들을 대상으로 소위 신디케이트론 형식을 통해 자금을 대출해주었고 이 규모가 늘어나면서 우리 나라도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석유가격상승으로 인해 에너지 비용이 증가하는 부분은 전세계 모든 경제주체들이 골고루 부담하였지만 이 돈이 몇몇 산유국들로 집중되니까 새로운 수요가 창출이 되었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이 풍부해지면서 실물과 금융이 모두 도움이 되는 상황이 나타났다. 적응이 되고 나니까 고유가가 역기능만이 아니라 순기능도 상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100달러를 넘나들던 원유가격이 20달러 수준까지 하락하면서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모든 세계경제 주체의 부담이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몇몇 산유국들이 원유판매대금이 줄면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국가재정이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나이지리아의 경우 공무원 급여를 지불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또한 자금부족으로 인해 해외 수입품의 물량이 줄면서 전세계적 교역량마저 감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금년 1월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8.5% 감소한 바 있다.
후폭풍도 상당하다. 교역량이 줄어들면서 해운운임이 폭락하고 있다. 벌크선 운임수준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11,800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300근처까지 하락하였다. 8년여 만에 40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한 셈인데 이는 이 지수가 발표되기 시작한 198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한다.
한때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리던 효자산업들이 이제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고 혹독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과거 석유가격 급등을 ‘오일쇼크’라 불렀다면 최근의 석유가격 급락은 ‘역오일쇼크’ 인 셈이다.
저유가국면이 나타나면 원유 수입국에서는 연료비 전기료 등이 동결되거나 하락하면서 가계의 실질구매력이 증가하고 기업수익이 개선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같은 양의 석유를 수입하는데 드는 돈도 줄어들면서 경상수지도 좋아진다. 사실 석유수입국의 경상수지 및 실질구매력 개선 등 긍정적 영향이 일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분기에서 3분기까지 통계를 보면 유로지역의 경우 경상수지 및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일본의 경우 엔화약세 효과가 겹치면서 경상수지 흑자도 커지고 무역수지 적자도 대폭 축소되었다.
그러나 워낙 다른 악재들이 많이 나타나다 보니 투자 및 소비 증대까지 연결되는 선순환구조는 실종된 모습이다. 또한 전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국면이 가 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까지 떨어지다 보니 추가적 물가하락이 나타나고 이는 디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면서 어려운 세계 경제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설상가상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국제석유시장 여건을 보면 공급과잉이 단기간 내 해소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저유가 기조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 지배적인 것이다. 또한 투자 감소 및 채산성 악화로 OPEC 산유국을 제외한 산유국에서 석유생산은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란의 석유수출이 재개되면서 OPEC 산유국들의 석유 생산은 늘어나고 있다. 핵심 산유국간에는 점유율 경쟁까지 나타나면서 경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올해 1월 16일 미국 및 EU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이란 핵협상 이행 조건 점검 결과를 받아들여‘포괄적 이란 제재법’(2010년 7월) 에 의해 지속되어 온 경제제재를 해제하였다. 이란은 현재 일 평균 약 28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으나 경제제재 해제 후 연내 일평균 약 40~100만 배럴의 추가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에서 보았듯이 유가하락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되도록 순기능을 살리고 역기능은 최소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에너지 가격 하락은 실질소득 증대효과가 있으므로 이 부분이 내수확대로 이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저유가는 제조원가하락을 통해 기업의 제품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므로 이를 장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다른 접근도 필요하다. 저유가 국면에 끝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낭비 요소를 제거하도록 하는 다양한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이를 기회로 하여 해외유전 및 광물자원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저성장기를 맞아 소득국가모형 보다는 자산국가모형이 더 어울리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꾸준히 해외에 자산을 확보하여 해외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가지고 저성장 국면의 부진한 국내생산을 보충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주식과 채권 부문을 제외한 투자로서의 대체투자적 관점에 있어서 광산과 유전은 매우 가치가 있을 수 있는 투자대상이다. 저유가 국면에서 유전이나 광산가격이 떨어지는 경우 우량 자원을 값싸게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경우 세계경제가 다시 정상화되는 경우 투자수익도 좋고 자원의 저가확보 계기를 마련한 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투자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유로중앙은행이 추가 양적완화 계획을 발표하자 석유가격이 배럴당 29달러 근처까지 상승한 일도 있다. 세계경제 회복의 기미가 보이면 석유가격은 50달러 정도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원유가격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들에 대한 투자를 눈 여겨볼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국가차원의 해외자산 확보와 대체투자활성화 차원에서 이러한 투자가 가진 장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저유가 국면의 순기능을 살리는 정책과 함께 저유가 국면 이후에 대해 긴 안목을 가지고 대응하는 현명한 접근이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