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정유시장 – 고도화 설비의 진가가 발휘될 2013년
경기 회복 속도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정유시장과 석유화학시장, 모두 단기적으로 어려움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일시적으로 불황을 겪을 것으로 보이지만, 하반기 이후 이익이 늘면서 차츰 호황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2013년 업계동향으로 멀리 보고 미리 준비하는 혜안(慧眼)을 길러야할 때 입니다.
2012년은 모두에게 힘든 한 해
2012년은 정유업이 많은 어려움을 겪은 한 해였습니다. 이는 마진 측면이 아닌 유가 급락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의한 것으로, 개별 기업의 유불리를 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2000년 이후 한 분기 만에 유가가 30$ 이상 하락한 경우는 2008년 하반기와 2012년 2사분기 단 두 번뿐으로 이 시기마다 국내 정유사의 실적은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게다가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벙커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지난 2년간은 고도화 설비의 경제성 역시 빛을 발하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고도화 설비의 효과가 나타나다
2013년은 고도화율이 높은 기업의 실적 개선 효과가 확연히 나타날 전망입니다. 벙커 가격 하락으로 인한 정제마진의 개선 가능성 때문입니다. 지난 2년간 벙커 가격 강세는 사실 일본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발전을 위한 벙커C 소비량은 2010년 일 평균 10.2만 배럴에서 2012년 28.2만 배럴로 2년 새 177% 급증했습니다. 동기간 발전용 석탄 소비량은 1% 감소했고 LNG는 39% 증가에 그쳤죠. 이에 일본의 화력 발전 비중은 2010년 연평균 57.7%에서 2012년 10월 90.9%까지 증가했습니다.
일본 원전이 재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벙커 가격의 약세를 전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일본 정유사들의 벙커 수율 변화 때문입니다. 정유사들의 기본적인 목표는 역마진이 발생하는 벙커 수율을 낮추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유사의 경우 그들만의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지난 2년간 벙커수율을 꾸준히 늘려왔고, 2010년 10.8%인 벙커 수율은 최근 15% 수준까지 상승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0년 일간 기준 37.8만 배럴인 벙커 생산량은 최근 48만 배럴로 27%나 증가했습니다. 정유제품 전 체 생산량이 동기간 4.9%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분명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원전 사고 전인 2010년, 일본의 일 평균 벙커 수입량은 5.1만 배럴이었으나, 원전 사고 후인 2011년에는 일 평균 9.2만 배럴에서 2012년 15.8만 배럴로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자체 생산량이 일간 기준 10만 배럴 정도 늘어났기 때문에 수입량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원전 사고 이후 발전용 벙커 소비량이 18만 배럴 정도 증가했음을 감안하면 수입량은 점진적으로 하락할 전망입니다.
이것이 2013년 벙커 가격 하락에 따른 정제마진의 개선을 전망하는 핵심 이유입니다. 기본적으로 벙커 수요가 늘어난다고 전망하는 기관은 없습니다. 최대 수요처인 선박의 경우도 탄소 배출량 감소를 위해 경유 또는 가스 사용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바, 벙커의 구조적 약세와 정제마진 개선에 따른 고도화 가치 상승은 필연적입니다.
물론 2014년 3월 일본에서 약 50만 배럴의 정제설비 폐쇄에 따른 벙커 수입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높아진 벙커 수율 15%를 감안해도 7.5만 배럴의 벙커 감소와 42.5만 배럴의 고수익 제품 감소 효과로 볼 때 비교할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EU와 미국 정유사들의 구조 변화
2008년 상반기 EU의 일간 정제 처리량은 1,330만 배럴이었으나 2009년부터 최근까지 일 평균 처리량은 1,200만 배럴 수준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일간 기준 130만 배럴의 설비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두 가지 상황이 맞물린 데 따른 결과로 판단됩니다.
첫째는 과거 EU 잉여 휘발유의 상당량이 미국으로 수출되어 정상 가동의 부담이 없었으나 2009년부터 미국 역시 휘발유를 수출함에 따라 잉여 휘발유 문제가 대두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EU는 2009년부터 미국으로부터의 경유 수입량이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익히 인지하듯 노후설비 및 규모의 경제 달성이 어려운 소형 설비 문제입니다. 이는 구조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기에 EU 정유업의 침체는 구조적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미국은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2005년 35%였던 경유•등유 수율은 최근 40% 수준까지 상승했습니다. 여기에 미국 최대 정유사인 Valero가 11.7만 배럴의 하이드로크래커를 2013년 초 가동함에 따라 Valero 기준 휘발유 수율이 기존 49%에서 2013년 42%로 낮아지고 경유•등유는 33%에서 39%로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휘발유 수율 감소는 석유화학의 나프타 투입량 감소와 더불어 방향족 강세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러한 변화는 바이오에탄올 소비량 증가 및 자동차 연비개선 등의 영향으로 휘발유의 수익성이 과거보다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EU는 여전히 침체 중이고 미국은 생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두 지역 모두 신규 설비 증설이 나오지 않고 있고, EU는 추가 설비 폐쇄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미국은 1976년 이후 그린필드 수준의 설비가 가동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역시 고도화율을 높이고 방향족 생산량을 늘리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입니다.
PX, 자체 원재료 확보가 관건이다
2014년 하반기 PX 증설은 분명 많습니다. 그러나 일부 신설 설비들은 콘덴세이트를 원료로 사용하거나 MX 구매를 통해 PX 생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기준 연간 100~150만 배럴의 정제설비 증가로는(연간 Capa 증가율 1.5% 미만) 연평균 7~8%에 달하는 폴리에스테르 수요 증가로 인한PX 수요를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신설되는 모든 정유 설비가 하이드로크래커를 기본으로 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조달되는 방향족 역시 예상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신규 정유 설비들이 대부분 Non OECD에서 발생된다는 점은 이들의 수요가 휘발유에 우선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2014년 하반기 PX 증설로 일시적인 어려움이 예상되기는 하나 이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것입니다. 특히 외부 구매기준 MX 피드 설비의 경제성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될 것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반면 GS칼텍스의 경우 기존설비는 물론이고, 신규 PX 증설에 필요한 MX의 40% 수준을 자체 조달 가능하기에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습니다. 원료의 자체 조달 능력은 불황기를 버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기대되는 2013년
2013년은 계사년(癸巳年)입니다. 뱀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풍요와 재물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2005년부터 시작되어 8년간 지속된 GS칼텍스의 설비투자는 성장을 위한 뱀의 허물 벗기이고 이제 그 마무리 국면에 와있습니다. 말 그대로, 이제 거두어들일 일만 남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안주하면 안될 것입니다. 아직은 미미한 해외사업부분을 의미 있게 보강해 국내외에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No 4 FCC로 이제 막 벗은 허물은 청년으로 태어나는 과정이기에 아직 할 일은 더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