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을 갖는다는 것! 본업과 딴짓의 경계선을 즐겨요. “마음과 마음” 송형석 원장의 이야기
정신과 의사지만 록밴드 활동을 하고, ‘Dr. Mad’라는 만화를 연재하고, 베스트셀러 심리학 책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본업과 딴짓의 경계선이 모호한 송형석 원장. 하는 일이나 관심사를 잘 해내는 방법을 궁리하고 세상 많은 것에 관심을 가지세요! 이제 그저 그 순서와 역할만 바꾸면 나만의 스타일이 삶 어디에서나 나타날 것이고 그것이 다름 아닌 창의라고 말하는 그를 만나보겠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재미있는 것
어릴 때부터 재미있는 것, 팝 음악이나 영화, 만화 등 B급 장르들을 많이 즐겼습니다. 고상한 장르(?)들도 많이 손대 보았지만 구색 맞추기에 더 가까웠다는 느낌이고, 솔직히 제 영혼은 댄스 뮤직을 원한죠(Hit It!).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가 제 음악세계의 시작이요 끝이었습니다. 창조적인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의 차이는 사소한 입장에서 차이가 나는데, 똑같이 TV 오락물을 봐도 창조적 인간은 ‘내가 저것을 만든다면’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고, 그렇지 않은 인간은 마음 편하게 즐기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저는 확실히 전자 쪽이었습니다.
아프로 아메리카인(미국 흑인)들의 자세에서 많은 감화를 받았습니다. 유럽인들은 음악을 만들더라도 개인적인 작품, 상품이라는 입장이 강한 반면, 아프리카인들의 방식은 재미를 추구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내 눈앞에 놓인 것이 턴테이블과 LP라면 ‘이거로라도 음악을 한다’는 사고 방식이 힙합을 낳고, 그저 DJ의 추임새 조차도 그것이 흥이 나면 음악이라고 생각해주는 태도가 랩을 낳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들은 스스로 ‘창조적’이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저 순수하게 재미를 추구하고, 음악적이지 않은 것도 음악적으로 볼 수 있는 열린 자세가 무언가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때의 생각이 지금도 일관적이어서, 글을 쓰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면 한다,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라는 태도와 ‘굳이 누군가의 책을 의식하거나 이야기하기 보다는 스스로 경험한 것에서 내용을 만든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악을 만들 때도 혼자서 깡통을 두들기든, 코고는 소리든, 아이패드로 적당히 찍은 것이든, 내가 재미있었다면 ‘예술’입니다. 큰 노력도 필요 없습니다. 스스로 ‘일기 쓰기’라고 생각하는데, 트위터에 글 남기듯 그날의 주변 소리를 녹음하고 그걸로 꾸며보곤 합니다. 다행히도 반복하면 할수록 실력도 조금씩 늘어갑니다.
저는 잡기가 많은 편입니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밴드 활동도 하고, 책도 내고, 만화 연재도 하고 있으니 당연 나는 매우 창의적 인간으로 보일 것입니다.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제가 매우 미적-지근-끈질-끈덕진데 있다고 생각하는데, 뭘 하나 잡으면 인생의 목표든, 기타든, 다이어트든 제대로 하지는 않지만 손에서 놓지는 않는 성격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손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단한 성과물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창의적인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요즘은 “창조적이어야 한다, 창의적인 것은 좋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그것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적도 없었고, 마음에 드는 뚜렷한 결과물을 생산해낸 적도 없었습니다. 인정해야 하는 것이, 이것 저것 좀 할 줄 안다고 해서 창의적인 것은 아닙니다. 온갖 악기를 다 다루지만 그저 연주만 할 줄 안다거나, 논문은 잘 쓰지만 간단한 산문은 못 쓰는 사람도 많습니다.
특히나 제가 종사하고 있는 의료라는 직업은 창의적이기 보다는 보수적인 기술을 오랜 기간 단련하는 곳이며 그렇게 승계된 지식이 더 중요한 분야입니다. 저는 항상 제가 가진 아이디어와 끼를 누르고 억제하고 남들과 맞추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당장 할 일이나 열심히 해라’라는 소리를 주로 들으며 살아왔다는 이야기고, 덕택에 저 자신 역시 꾸준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사에게 창의성이란?
자, 이제부터 저의 이러한 생각들이 정신과 의사의 일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본론으로 들어가보죠. 저는 그저 환자 상담도 일상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면담이 심각하기 보다는 즐겁기를 바라며, 상담실 안과 밖에서의 나의 감정과 태도가 같기를 바랍니다. 저 스스로의 가식이나 억지가 너무 혐오스럽습니다. 이런 태도는 나를 약간은 독특한 의사의 자리에 놓게 합니다. 연예인 이야기만 한다든가, 전자 기타를 배우자고 조른다든가, 어느 날은 냉정한 태도로 대하기도 하고, 같이 궁시렁거리기도 합니다. 좀 별나게 보이더라도 나는 환자의 치료가, 그 사람과 나라는 사람과의 솔직한 상호작용 과정 중에 생겨난다고 보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전혀 치료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에도 개방적 태도를 취하려 합니다. “저런 자식은 두들겨 패야 할까요?” 라는 막무가내 부모의 말도 일단은 고려합니다. 정말 패면 좋아질까? 쟤는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 당장 설득은 되겠지만 10년 뒤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폭력의 정당성 같은 원칙과 상관없이 그것이 치료에 효과적일지 아닐지만 생각합니다.(물론 대개의 경우 충동적인 폭력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치료에 있어서 이런 자유스러운 사고 방식은 ‘괴짜’로 보이는 반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꾸준하고 일관적인 태도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부족할지 몰라도, 한참 격동기를 산다거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독특한 사람, 전통적 방법으로는 치료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저 같은 스타일이 맞을 것입니다. 원래 창조나 변신은 기존의 것이 잘 듣지 않을 때 필요한 것이고, 저는 제가 소수의 어떤 사람에게는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단지 필요한 것은 내가 내 스타일에 빠져 자아도취 되어 있는지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 의료는 오랜 경험과 지식이 축적 된 것이라 나 자신을 검증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했다간 큰일 나기 십상입니다. 항상 자신을 견제하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제 방식이 제한 받고 사회 기준에 맞추도록 교육받고 억압 받아온 과정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개성과 아이디어가 타인에게도 의미를 가지려면, 규제와 조절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살려라
정리해보자면, 일단 너무 ‘창의적’이려고 애쓰지 말고, 그저 당신이 하는 일이나 관심사를 잘 해내기를 꿈꾸기 바랍니다. 사악한 방법으로든 멍청한 방법으로든 잘 해내는 방법을 궁리하세요. (대개 사악한 방법으론 오래 잘해내기 힘듭니다) 상상이면 충분합니다. 스스로 한계를 두지 말고 여러 가지 방식을 고려하세요. 그리고, 세상의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가져라. 옷이든, 음식이든, 주식이든, 포커든…. 자신이 그것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기억해 두세요. 급하게 먹는 자는 옷도 급하게 입고 주식도 급하게 합니다.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꼭 기억해둬야 합니다.
이제 그저 순서와 역할만 바꿔보면 됩니다. 당신이 게임을 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하고, 영업을 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하세요. 반찬 먹는 순서로 위기에 대처하고, 위기에 대처하듯 밥을 먹으세요. 고객을 대하듯 가족을 모시고, 가족을 대하듯 고객을 모셔보세요. 당신의 스타일이 삶 어디에서나 나타나도록 하세요. 적어도 내가 아는 창의란 건 그런 것입니다. 당사자에게는 좀 따분할 지도 모르겠지만, 자기만의 오래된 것을 ‘가둬놓지 않고 자유롭게’ 적재적소에 발휘할 때 그런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