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대신 몽글몽글한 몽돌이 가득한 바다는 어때요? – 여름에 가볼 만 한 몽돌해수욕장들
여름휴가를 준비할 때마다 맞이하게 되는 딜레마. 산으로 갈 것인가 바다로 갈 것인가.
물론 취향에 따라 선택은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확고한 의지나 특별한 맞춤계획을 갖고 있지 않는 이상 산과 바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여름휴가!! 산이냐 바다냐 그것이 고민이로다~~
때문에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휴가를 앞두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 그런데 이런 고민에 하나를 더 보태면 어떨까. 흔하디흔한 백사장이 펼쳐진 곳으로 향할 것인가 셀 수 없이 많은 몽돌이 깔린 해변으로 갈 것인가.
혹시 몽돌해수욕장에 대해 별다른 정보가 없다면, 그래서 ‘뜬금없이’ 던져진 질문지에 당황스러워졌다면 조금만 침착해지자. 바다라고 해서 꼭 백사장이 있어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몽돌해수욕장에서는 아무리 물로 씻어내도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오는 모래를 신경 쓸 필요 없다.
특히 아이를 데리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이보다 더 훌륭한 장점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물결이 밀려올 때마다 파도소리에 더해 자그락자그락, 낭만적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몽돌해수욕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그러니 조금은 특이한 바다에 대한 욕구가 있다면 아래의 내용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몽돌해수욕장
자치단체를 기준으로 나누었을 때, 가장 많은 몽돌해수욕장을 갖고 있는 곳은 아마 경남 거제일 것이다. 제주도에 이어 한반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라곤 하지만 몽돌해수욕장을 네 곳이나 갖고 있으니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학동 흑진주 몽돌해수욕장이다.
거제의 남쪽에 위치한 학동 흑진주 몽돌해수욕장은 그 명성에 비해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다. 하지만 유명해지는 이유가 꼭 외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이곳에 대한 선명한 인상을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는 것은 단지 ‘스케일’ 때문은 아니니까.
처음엔 거제의 ‘핫스팟’인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시내를 벗어나 고갯마루를 넘어 이제 막 내리막길로 접어들던 참에 저 멀리에 있는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과 반가움에 한숨에 달려 도착한 그곳에는 온통 검은 몽돌이 깔려 있었는데, 파도가 칠 때마다 마치 배경음처럼 들려오는 둔탁하면서도 선명한 소리가 참 신기했다. 물결에 따라 몽돌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내는 소리라는 것은 곧 알게 되었지만, 신기한 마음은 금세 가시질 않았다.
이제 막 봄에 접어들던 어느 날에는 아기와 함께 찾기도 했는데, 손에 무엇인가를 쥐는 데에 재미를 붙인 아기에게 둥글둥글한 몽돌은 더 없이 좋은 장난감 역할을 해주었던 터라 꽤 즐겁게 놀았다. 모래밭이었다면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을 일이었다.
소박한, 그리고 은밀한
학동 흑진주 몽돌해수욕장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참 유명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많이 몰린다. 사람이 많아지면 놀거나 쉬는 데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질 않는다. 만약 좀 더 조용하고 외진 곳을 찾는다면 학동 흑진주 몽돌해수욕장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함목 몽돌해수욕장을 목적지로 삼는 게 좋겠다.
함목 몽돌해수욕장은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수의 해수욕장들이 그 너비를 ㎞로 표시하는 반면 이곳은 수백 m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위기는 그 어느 곳보다 아늑하다.
해안선이 움푹 파인 곳에 만들어진 해수욕장이다 보니 양쪽으로는 나지막한 바위 절벽이 감싸고 있어 은밀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게다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초입에 있는 펜션 이용객이 전부일 정도다 보니 아마 이보다 더 한가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찾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일 것이다.
여름을 앞두고 오랜만에 다시 찾은 함목 몽돌해수욕장에서는 정식 개장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해수욕장의 오른쪽 끝 부분에 모래가 드러난 게 보였다. 몽돌해수욕장인데 모래가? 이상한 생각에 마침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에게 물어보았다. 왜 이렇게 모래가 드러나 있는지. 그런데 답은 간단했다.
“물때 따라, 파도 따라 몽돌이 위로도 올라갔다 아래로도 내려왔다 그랍니다. 몽돌이 이리 다 걷힌 거맹키로 보여도 시간 지나모 다시 내리오지요.”
참 신기한 일이었다. 몽돌해수욕장의 은밀한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번 여름 함목 몽돌해수욕장을 찾는 누군가는 나와 같은 횡재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통영에도 있다, 몽돌해수욕장!
‘바다의 땅’이라 불리는 통영이지만 정작 해수욕장은 귀하다. 그나마 있는 공설해수욕장은 봄마다 모래를 쏟아놓아야 유지가 되는 형편이고 유명한 비진도 해수욕장은 배를 타고 40분은 가야 할뿐더러 한여름엔 다른 어느 곳보다 뜨겁다.
게다가 오가는 배가 많지도 않은 것도 단점. 하지만 한산도의 봉암 몽돌해수욕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렇다. 이순신 장군의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에 등장하는 바로 그 한산도에도 몽돌해수욕장이 있다.
통영여객터미널에서 한 시간에 한 대씩 출발하는 배를 타고 25분 정도 바다 위를 나아가면 도착하게 되는 한산도 제승당 선착장에서 왼편으로 길을 잡고 계속 차를 타고 나아가기만 하면(한산도까지는 차를 싣고 갈 수 있다) 20분이 채 걸리지 않아 봉암 몽돌해수욕장에 도착하게 된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뒤로 나무도 많고 소박한 산책로도 마련되어 있어 분위기가 좋다. 무엇보다 시간에 따라 저절로 커다란 그늘막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파라솔 대여료를 놓고 누군가와 옥신각신 할 일이 없는 것도 큰 장점.
다른 곳에서야 그렇지 않지만, 사방이 온통 섬으로 막혀 있어 파도를 구경하기 힘든 통영에서 가끔은 시원한 파도를 탈 수 있는 것도 봉암 몽돌해수욕장의 흔치않은(?) 자랑거리 중 하나다.
수평선이 보이는 그 곳
일반적으로 몽돌해수욕장은 남해와 서해에 많지만, 동해라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니다. 울산의 주전 몽돌해수욕장이 그렇다.
동해의 흔치 않은 몽돌해수욕장인 이곳은, 남해의 다른 몽돌해수욕장들보다 몽돌의 크기가 작다. 마치 작은 구슬만큼이나 귀엽게 생겨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는 더 없이 좋다. 도심으로의 접근성 역시 위에 소개한 다른 곳보다 훨씬 용이한 것도 장점인데, 무엇보다 드넓게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게 바로 동해바다의 자랑이기도 하거니와 섬이 많은 다도해에서는 즐길 수 없는 호사이기도 하다. 다만 동해바다답게 가끔은 파도가 심한 날이 있으니 그럴 때는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다. 파도도 파도지만 빠른 물살에 휩쓸려 다니는 몽돌이 사람을 아프게 하니까.
소개한 몽돌해수욕장들은 가장 대표적인 곳일 뿐 전국적으로 보자면 더 많은 수가 있다. 모두 아름다운 몽돌을 품고 있고 모두 가족 휴가지로 적격인 곳들이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는데, 몽돌해수욕장 중에는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는 곳들이 있으니 아이와 함께한다면 반드시 어른이 먼저 바다 속의 경사도를 확인해야 한다.
주전 몽돌해수욕장의 소개글에도 적은 것처럼 파도가 심한 날은 물속의 몽돌에 의해 다칠 수도 있다는 점도 기억하자. 그리고 모든 몽돌해수욕장에서 몽돌을 반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혹시라도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에 몽돌을 가지고 가다 적발되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처벌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런 이기적인 마음이 우리 후손들에게 몽돌해수욕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거기에 있도록 하는 마음이 언제나 즐거운 여름휴가를 만들어준다.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에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