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교수가 본 창의성 – 상상이 창의의 지름길이다

고뇌, 고민

 

철학과 교수가 본 창의성 – 상상이 창의의 지름길이다

 누구나 원하는, 그러나 아무도 알지 못하는 창의성을 찾아서……

누구나 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창의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창의성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단번에 창의성을 높여준다는 기법에만 열중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입니다. 이제 다시 생각해봅시다. 창의성은 언제, 어디서, 무엇에 의해, 어떻게 발현될까요? 매월 다양한 분야의 고수들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창의성이란 무엇인지, 또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자 합니다.

 

창의는 공식이 없다

창의에는 공식이 없습니다. 수학 문제 풀듯이 공식에 대입하면 누구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텐데…… 그러나 편법은 있습니다. ‘가위손’ 이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습니다. 가위손은 천재 과학자가 손을 완성하지 못하고 심장 마비로 죽는 바람에 가위손을 달고 있는 인조 인간의 별명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팀 버튼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뛰어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위손’ 에서 가장 멋진 아이디어는 눈 선물입니다. 가위손은 사랑하는 이가 눈 아래서 춤추는 모습을 떠올리며 평생 그때처럼 행복하게 살라고 얼음 조각을 부지런히 날려 보냅니다. 팀 버튼 감독은 눈 선물을 어떻게 생각해냈을까요?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비범한 선물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눈, 달, 산, 강, 별 같은 자연의 일부를 선물할 수 있다고 누가 상상조차 했을까요. 창의의 편법은 바로 상상에 있습니다.

 

수학공식
창의에도 공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상상한다

저는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철학이 어렵다 보니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수업에 영화를 끌어들입니다. 학생들과 함께 ‘가위손’ 을 보고 철학의 한 가지 주제인 사람과 기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가위손은 좋은 사람을 만나면 정원을 다듬고 개털과 머리털을 깎는 도구가 되지만 나쁜 사람을 만나면 만능 키나 살인 흉기로 변합니다. 가위손을 기계로 보면 기계는 사람 하기 나름이죠. 기계는 사람 하기에 따라 벗이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영화로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철학이라는 위대한 학문을 가르치는 데 감히 영화 따위를 끌어들이다니’ 라는 꼰대 철학 교수들의 눈총이 따가운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대학에는 ‘영화’로 이름 붙인 교과목이 많습니다. 영화와 여성학, 영화로 본 한중일 문화, 영화로 생각하기 등등.

 

남이 따라 오면 떠난다

이렇게 영화로 강의하는 교수들이 늘자 저는 눈길을 대중 음악으로 돌렸습니다. 대중 음악은 영화와 함께 20세기 대중 문화의 꽃입니다. 대중 음악 속에도 시대를 반영하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0년대에 등장한 우리나라 신세대의 대통령이라 불렸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국민 가수가 있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은 신세대가 자기들만의 소유권을 주장한 가수이기도 했습니다.

신세대는 다른 세대와 차이를 원했고 이 욕망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으로 채워졌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현대인이 다른 세대, 다른 개인과 차이를 원하고 차이에 대한 욕망을 채워주는 상품을 소비한다’는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의 생각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어렵고 딱딱한 철학을 영화와 대중 음악으로 설명하려는 내 시도는 학생들이 조금 더 수업에 집중하게 만드는 방법을 상상하는 데에서 시작됬습니다. 물론 철학의 구체적 내용을 영화, 대중 음악과 짜맞추어 설명하기 위해서도 많은 상상을 필요로합니다. 사람 하기 나름인 기계와 차이에 대한 욕망을 설명할 수 있는 영화나 대중 음악을 찾기 위해 머리 속으로 많은 상상 실험을 합니다.

 

과학, 논증, 상상

제 전공은 철학 중에서도 자연 철학입니다. 자연 철학자 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은 바로 뉴턴입니다. 뉴턴 시절에는 과학을 자연 철학이라 불렀습니다. 뉴턴은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힘과 지구에서 돌이 낙하하는 힘이 모두 중력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사실 뉴턴은 과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연금술사이기도 했습니다. 연금술은 돌을 금으로 만드는 기술이라 하지만 뉴턴은 돌이 금으로 ‘자라는’ 생명의 원리를 발견하기 위해 연금술을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물론 뉴턴의 연금술 연구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힘, 지구에서 돌이 낙하하는 힘, 돌이 금으로 자라는 힘이 모두 같은 원리에 따른다는 원대한 상상이 뉴턴의 과학을 낳았습니다.

 

 

사과
중력의 법칙은 뉴턴의 상상력으로부터 시작됬습니다.

과학에도 상상이 필요합니다. 우리 철학 업계에서 동업자들이 자나 깨나 하는 일은 논증입니다. 시쳇말로 논술이 더 익숙하겠지만 논술이나 논증은 모두 ‘주장 더하기 근거’입니다. 어떤 주장만 하지 않고 근거를 함께 대는 것이 논증이죠. 어떤 주장을 펼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근거를 대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근거를 대는 좋은 방법 한 가지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 들기’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제일 좋은 근거는 나도 죽고 너도 죽는다는 ‘예’들입니다. 예를 드는 것이 근거를 대는 제일 쉽고 좋은 방법입니다. 그럼 예를 잘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식, 지식이 필요하지만 상상도 필요합니다.

어느 기업에서는  ‘두루마리 휴지 한 통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라는 입사 문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마 코 풀고 땀 닦는다고 쓰면 당장 입사 시험에서 떨어질 것입니다. 기발한 상상을 묻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예를 잘 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