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산업의 위기와 97년 자유화 체제의 딜레마

석유산업의 성장

크게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산업으로 구분되는 석유산업은 97년 자유화 조치를 기점으로 괄목할 성장을 이루게 된다. 당시 정부는 환율 등과 연계하여 석유류 제품의 소비자가격을 변동 조정함으로써 소비자들이 변동 가격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조치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가격을 시장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소비자의 수용성을 제고하기 위한 현명한 정책이었다.

 

크게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산업으로 구분되는 석유산업은 97년 자유화 조치를 기점으로 성장

 

이러한 여건들을 형성한 후 정부는 1997년 본격적으로 석유산업에 진입 자유화와 가격자유화를 도입하였다. 정부의 자유화 정책의 의도는 석유산업의 자생적인 경쟁력 제고를 통하여 성장 동력화를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후 이 97년의 정책 시도는 상당히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즉 현재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은 공히 국내 제조업 생산규모에서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였고 수출품목에서도 각각 4위와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1997년 본격적으로 석유산업에 진입 자유화와 가격자유화를 도입

 

이와 같이 성장 동력화를 위한 석유산업 자유화 조치의 성과는 아마도 당시 이를 주도한 정부의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또 하나의 대한민국의 기적이라고 평가될 만 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석유산업은 민간의 자율성과 효율성에 기반을 두어 거대한 성장 동력을 창출한 것이 사실이다. 민간주도의 과감한 대규모 투자와 구축한 양산체제 확립과 고도화 설비에 대한 집중투자 등의 기술혁신에 의한 성공신화이다. 민영화는 성공한 것이다!

 

세계 석유 정제시설 규모 및 순위
국내 정유사 3개사가 세계 5위권 내에 있으며, 단일 공장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 석유산업 위기에 봉착하다

에너지산업의 성장 동력화는 세계적인 유행으로서 특히 지난 시절 녹색성장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런데 여기에 빨간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국내 석유산업 위기에 봉착하다

 

과연 우리 석유산업은 현재의 수출시장을 유지할 수 있는가? 혹은 심지어 가까운 미래에 내수 방어는 위협받지 않을 것인가? 우리 공장의 가동률을 유지하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하여 최근 우울한 답변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울한 상황의 원인이 통상적인 경기순환의 흐름인가 혹은 구조적인 흐름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외부의 구조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그런데 지금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우울한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원인들은 다양하게 분석되고 있다. 우선 미국의 세일가스는 국가경쟁력을 일거에 변화시켜서 전 세계 질서를 새로이 할 정도이다. 그러나 세일가스와 세일 오일의 등장으로 미국은 이제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막대한 새로운 에너지의 출현은 미국의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사업 그리고 제조업의 경쟁력을 일거에 변화시켰다.

석유산업 경쟁력이 증강되고 있는 미국, 중국
석유산업 경쟁력이 증강되고 있는 미국, 중국

미국 원유 생산 및 수입량의 변화 그래프

 

미국은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에서 드디어 벗어나 국가 안보의 획기적인 향상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 역시 풍부한 석탄자원을 활용하여 자국의 에틸렌 등의 석유제품의 가격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고 있다. 미국의 정유산업은 부활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정제설비의 대규모 신증설을 통하여 자급률을 제고시키고 있다. 한 마디로 미국과 중국의 석유산업의 경쟁력은 획기적으로 증강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중동과 아시아 지역 역시 대규모 공정 설비의 신증설로 자급률을 제고하는 상황이다. 이는 바로 우리의 수출시장의 급속한 축소뿐 아니라 우리 석유제품의 이윤율의 급속한 감소를 의미한다. 즉 우리나라 석유산업의 경쟁력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수출경쟁력 상실은 우리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이는 다시 가격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하는 악순환의 상황에 봉착할 경우 내수 방어조차 힘들 수 있다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리가 아직 보유하고 있는 양산체제와 나름의 신기술 그리고 운영 능력 등의 우위 요소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우리 석유산업은 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석유산업의 발전을 위해 펼쳐야 할 노력은?

 이러한 석유산업의 위축은 결국 국가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자원도 없으면서 중화학공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석유산업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 기간산업임에 분명하다. 현재의 석유산업의 위기는 세일가스 개발 등 예상치 못한 외부 여건의 변화, 석유산업계의 전략적 미스와 과잉투자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정부의 정책 역시 단순 소비자가격 인하라는 목표만을 가지고 사실상 시장에 직접 간여하여 산업계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정부와 산업계의 정책 기조의 변화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97년의 자유화 조치는 지금까지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이제 그 반대급부의 어려움을 우려하는 상황으로 변하였다.

 

석유산업의 발전을 위해 펼쳐야 할 노력은?

 

이러한 상황하에서 우선 급한 대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선 기업은 자체적으로 좀 더 장기적인 예측과 전략적 판단 능력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과연 석유산업계는 기술과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예측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화석에너지와 미래 에너지 간의 다양한 포트폴리오에 대한 이야기는 많으나 과연 적기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현재의 위기는 내수가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의 시장 방어가 핵심이고 장기적인 기회의 포착이 핵심인 것이다. 따라서 산업계의 중장기적인 전략적 투자가 필요할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그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상세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경우 정부도 민간 대규모 투자를 결심한다면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후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석석유업의 발전을 위해 펼쳐야 할 정부와 기업의 노력

 

정부는 이제 국내 소비자가격 인하만을 강조하는 경쟁 확대 만능주의식 정책 기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알뜰주유소와 같은 정책이 소비자의 이익을 얼마나 보장할 것인지 그리고 동북아 오일 허브와 같은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한 많은 우려가 있다. 이러한 조치는 석유산업계의 투자를 왜곡하고 결국 소비자의 비용만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기름값이 묘하다는 전 정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리고 정치적 수사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과도한 전기화에 따른 지나친 탈석화 추세인 내수시장의 합리화 역시 대단히 실질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에너지세제 조정 등의 전기대 비전기의 합리화는 석유산업뿐 아니라 우리나라 에너지 수급 안정화의 핵심적 조치이다. 정부는 석유산업의 위기와 그 위기가 가지는 국민경제에의 시사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에 합당한 정책의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처하기 위한 민관의 적극적인 소통이라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예전에 추진되다 중단된 석유산업 발전전략을 정부와 민간, 전문가 그룹들이 모여서 다시 한번 수립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치 97년 자유화 조치를 추진한 선각적인 비전을 가졌던 관료와 산업계 지도자들의 고민을 이 시점에서 새로운 시각에서 되살려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97년 체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체제를 고민해야 하는 엄중한 현실에 봉착한 것이다. 새로운 각오로 더 많은 조사연구와 더 깊은 고민과 더 허심탄회한 소통을 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