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이야기 6 – 술에 얽힌 전설
우리 술 이야기 여섯 번째, 술에 얽힌 전설로 다시 찾아 뵙네요. 제가 살고 있는 인천 연수구는 역사적으로도 무척 오래된 지역일 뿐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 꺼리가 많습니다. 특히 이 지역의 진산인 문학산은 옛날 백제가 건국할 당시 비류왕자와 온조왕자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얼마 전 역사 드라마에서도 등장했던 동명성왕의 둘째 부인 소서노가 왕위를 자신의 아들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믿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유리에게 왕위가 전해지자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백제 건국의 터전을 마련합니다.
소서노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요. 온갖 공을 들여 고구려를 일으켜 세웠으나 왕위는 정작 듣도 보도 못한 유리왕자에게 전해져 버린 것입니다. 소서노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온 비류와 온조왕자, 비류는 바로 이 곳 문학산 아래에 터전을 잡고 온조는 한강변인 위례에 터전을 잡습니다. 그리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 누구의 나라가 더 융성한가를 비교해 보아 나라가 더 융성한 쪽이 대통을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두 왕자는 자신을 따라온 가신들과 함께 각자 나라를 열심히 다스렸습니다만, 결국에는 온조가 세운 나라가 위례백제가 더 번창하여 온조왕자가 백제의 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비류왕자의 나라는 정통성을 잃게 되었지만 이곳 문학산 기슭은 비류왕자가 터전을 잡을 만큼 명당이라는 뜻도 되겠지요?
문학산을 자세히 보면
문학산은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면 길마산, 수리봉, 문학산정상, 연경산, 서달산 등이 동에서 서쪽으로 길게 이어져 산맥을 이루고 있어 우리고장 연수구의 지붕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셈인데 문학산 정상과 연경산의 사이에 고개가 하나 있습니다. 이 고개의 이름은 한자말로는 삼호현(三號峴) 인데 세 번을 부르고 넘는 고개라는 뜻입니다.
지난 번 글(주막집 이야기)에서도 밝혔듯이 한양성에서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의 행차가 출발하게 되면 그 무리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사신들과 호종하는 무리들뿐 아니라 역관이며 상인들까지 거기다가 배웅하려는 가족들까지 합치면 수 백 명은 넘기 마련이었습니다. 이 많은 인원이 오류동 주막거리까지 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걸어 도착한 곳이 부평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배웅하는 사람들은 남고 길 떠나는 사람들만 내처 가게 하였지요. 부평에서 삼호현 고개까지는 높은 산이나 고개가 없어 길 떠나는 사신들의 행차가 보입니다. 그러나 삼호현 고개를 넘고 나면 그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되지요.
먼먼 사신길 행여 무슨 일이 있으면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 가족들의 마음이야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그래서 삼호현 고갯마루에서 잘 갔다 오라고 손을 흔들며 세 번을 부르고 답하였다고 삼호현 고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넘은 사신 일행은 능허대까지 곧장 걸어와 배를 타고 중국 땅으로 향하였습니다.
삼해주 전설
그런데 이 삼호현 고개는 또 달리 부르는 이름이 있는데 사모지 고개라는 이름과 삼해주 고개라는 이름이 함께 전합니다. 아마도 사모지 고개는 삼호현 고개에서 변화한 말이라 생각 되지만, 삼해주 고개는 또 다른 전설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삼해주란 정월 돼지 해(亥)가 들어가는 날을 잡아 밑술을 빚고 다시 돼지 해가 돌아오는 날에 덧술을 빚되 한 번 더 돼지 해가 돌아오는 날에 두번째 덧술을 하니, 모두 돼지 해가 세 번 돌아올 날에 술을 빚었으므로 삼해주(三亥酒)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삼해주는 돼지 해가 12일 마다 돌아오니 결국 36일 이상이 걸린 술입니다. 발효가 끝나고 걸러서 숙성까지 하면 적어도 4,50일은 걸리지 않겠습니까? 일반 술은 이틀, 사흘이면 술이 끓어 덧술를 해야 하나, 삼해주의 경우 겨울철이므로 발효온도가 낮아 덧술한 후 무려 12일간을 발효하는 관계로 술이 달고 무척 맛이 좋습니다. 저온 숙성 발효법이 저절로 완성된 것이지요. 따라서 조선시대 여러 주방문을 살펴보면 삼해주라는 이름이 자주 나오며 명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삼해주가 얽힌 고개의 전설을 보면 삼해주 고개 옆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바위에는 움푹 파여 술 한잔 고일 수 있는 홈이 파여져 있었고, 그 홈에는 항상 맛있는 삼해주가 고여 있어 그 고개를 지나는 나그네로 하여금 갈증을 풀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근 절의 중이 맛있는 삼해주가 항상 한잔 정도로만 나오므로 더 마시고 싶은 욕심으로 그 홈을 후벼 파게 되었는데 홈은 비록 커졌지만 다음부터는 삼해주는 아니 나오고 물만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비록 전설이지만 술과 관련한 고개라는 것이지요. 옛날부터 명주가 나오는 고장에는 항상 좋은 물이 함께합니다. 과연 삼해주 고개도 그러한가 주변을 살펴보니 삼해주 고개 주변에는 여러 곳의 약수가 지금도 철철 넘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 이치를 살펴보면 약수에는 풍부한 미네랄 성분이 있는데 이런 미네랄이 술에 작용하는 효소의 성질을 제어하게 되지요. 따라서 보통의 물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유도하게 되는데 이런 이유로 술 맛이 달라지게 되는 이유입니다.
내가 사는 고장에 술과 관련한 전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옛날부터 좋은 술이 있었던 고장임에는 틀림없지 않겠습니까? 사실 프랑스의 와인 중에 값비싼 와인이나 세계 유명한 여러 나라 술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그 문학적인 요소뿐 아니라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흥미를 자극하여 많은 인기를 불러 모아 결국에는 경제적인 가치를 대폭 올려놓게 되지요. 어찌 보면 주가 되는 술 보다는 곁들인 요소들이 더욱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의 삼대 명주(평양의 감홍로, 전주의 이강고, 정읍의 죽력고) 가운데 하나인 정읍 땅의 유명한 술인 죽력고의 경우 대나무를 쪄서 나오는 죽력을 사용하여 술을 빚는데 (지금도 정읍 신태인에서는 송명섭 명인이 죽력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죽력에는 타박상을 치유하는데 기이한 효력이 있답니다. 조선 말 동학혁명이 일어나고 많은 농민들이 전봉준장군이 이끄는 혁명군의 깃발 아래 모여들었습니다.
그 의기는 양양하였지만, 중과부적이라 현대식 군사 무기를 가진 일본군과 관군들을 당해 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종당에는 전봉준장군이 일본군들에게 잡히게 되었는 바, 무수한 구타를 당하고 함거에 실려 한양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타로 인해 심하게 다친 장군이 몸을 추스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는 누군가가 죽력고 한 사발을 함거 안으로 디밀었습니다. 애틋한 농민들의 마음이었지요.
장군은 그 죽력고 한 사발을 벌컥 벌컥 마시고는 드디어 몸을 추스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죽력고 그 이름 만으로는 어떤 정서도 불러 일으키는데 한계가 있겠지만 이렇게 전봉준 장군의 이야기와 맞물린 죽력고는 민족의 기상을 불러일으키는 술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로 인한 죽력고의 가치는 몇 곱절로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효과 즉 돈 만을 따진다는 비난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왕지사 스토리텔링으로 인한 그 가지가 높아진다면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독일의 라인 강가에 있는 로렐라이 언덕은 그 전설과 하이네의 시로 유명하여 수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간다고 합니다만, 막상 강가의 볼품 없는 돌무더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날 부의 원동력은
오늘날에는 문화적인 콘텐츠가 많은 부를 창출합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콘텐츠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고 그 기초에는 시와 소설 등 문학과, 음악, 미술 등 순수 예술이 풍부하게 발달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순수 예술의 여러 가지가 접목되어 다양한 공연이나 전시물을 생산하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이러한 요소는 결국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기업은 근시적인 결과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도 눈길을 두어 투자함으로써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나중에는 기업의 이익을 높이는 결과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미래에도 끊임없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기업이 되려면 이렇게 멀고 긴 안목을 가지고 보다 인간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기업들의 도덕적 기준이 많이 낮아져 사람들로부터 배척 받는 일들이 잦아졌습니다. 나라를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하고 백성들을 잘살게 하겠다던 초창기의 정신은 사라지고 고용 없는 성장만 초래하여 부익부 빈익빈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된 원인 중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부류가 대기업들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술 이야기에서 갑자기 왠 사회적인 이야기로 흘렀을까? ^^ 아무튼 각설하고 다음 번 글에서는 우리 나라의 유명한 술과 지방의 이야기,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술과 관련한 옛사람들의 생활상과 글에 대하여 이야기를 꾸려나가 볼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