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설비 부족과 전력수급 불안
작년 9월 15일 전국적인 정전 사태에 이어 올해는 연초부터 전력수급이 불안하다는 우려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작년 정전의 구조적 원인은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비해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설비가 충분히 확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주도로 향후 15년의 장기에 걸친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예측된 장기 전력수요에 따라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발전설비를 계획하고 건설이 이루어집니다. 이른바 2년 주기로 수립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올해는 제6차 계획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발전설비가 정부 계획에 의해 건설되는 구조에서 현재 발전설비가 부족한 이유는 그 동안 장기 전력수요가 전기요금의 인상 억제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실제 전력수요에 비해 상당히 작게 예측되어 왔으며([그림 1] 참조), 과소 예측된 장기 전력수요에 따라 과소하게 계획된 발전설비마저 제대로 건설되지 않아 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06년에 수립된 제3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10~2013년에 건설이 예정되었던 발전설비 가운데 6.7 GW가 취소 또는 6개월 이상 지연되고 있는데, 이는 2010년 우리나라 총 발전용량인 76 GW의 9%에 달하는 규모로서, 발전설비가 계획에 따라 제대로 건설되지 못한 점도 최근의 전력수급 불안에 상당한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발전설비의 추가 건설에는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력수급 불안 문제는 향후 몇 년간 지속될 전망이며, 요금 현실화, 연료비 연동제 등 적극적인 수요관리노력으로 전력수요의 일부라도 줄이지 않는 경우에는 2010년대 내내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에너지효율 개선, 전기요금체계 합리화 등 정부정책이 계획대로 추진되어 전력수요가 정책목표대로 실현되고, 발전설비 또한 계획대로 확충되는 경우에야 2015년이 되어서 설비예비율이 적정 수준인 15%를 넘게 됩니다([그림 2] 참조).
그런데 제5차 계획에서 예측된 장기 전력수요에 대해서도 과소 예측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0년에서 2010년 사이 GDP 증가율 대비 전력수요 증가율(전력수요의 GDP 탄성치)의 실적치가 1.49인데, 제5차 계획에서는 대폭 축소된 수치인 0.79를 가정하고 장기 전력수요를 예측하여, 결과적으로 향후 예상되는 GDP 증가에 비해 전력수요 증가가 상당히 과소하게 예측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설령 전기요금체계 합리화 등 정부정책이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2010년대 내내 설비예비율이 적정 수준을 밑돌아 전력수급 불안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자아내게 됩니다.
기후변화 대응과 전력수급 불안
발전설비의 상대적인 부족 현상으로 인해 전력수급 불안이 향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정책은 안정적인 전력수급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2011년 7월 정부는 2009년에 수립된 국가온실가스 중기 감축목표의 달성을 위해 전력부문에 2020년까지 BAU(배출전망치) 대비 27%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전력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 12%에서 2009년 32%로 급증한 사실을 감안하면, 전력부문이 향후 온실가스 감축의 주요 분야로 설정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감축목표의 수준이 과도할 경우에는 전력수급의 안정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전력수요 절감을 제외하면, 전력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수단으로는 원전/신재생 확대, 청정석탄발전 확대, LNG발전 확대 등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먼저 청정석탄발전이 온실가스 감축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CCS(탄소포집/저장), CCR(탄소포집/재활용)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포집된 CO2를 저장하기 위한 대규모 저장소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CCS의 상용화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CCR의 경우에도 포집된 CO2를 대규모로 재활용하는 것이 가능할지 여부가 현재로서는 불확실합니다.
LNG발전의 확대는 월등히 높은 발전단가로 인해 경제적으로 전력수급 안정에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됩니다. 최근 석탄발전 등 기저발전설비가 부족하여 연료비가 급등하는 LNG발전량을 늘려 전력수요 증가에 대응함에 따라 전력의 평균발전단가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 이를 말해줍니다.
신재생과 관련해서는 현재 신재생 발전비중을 2012년 2%에서 2022년 10%로 점진적으로 늘리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제도’(RPS)가 시행 중입니다. 그러나 2012년 목표치도 달성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2022년까지 목표치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부문의 온실가스 감축비율은 2022년 기준 11%에 그칠 전망입니다. 이마저도 현재로서는 경제성 확보가 불투명한 해상풍력과 해양에너지에 절반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은 낮은 발전단가와 안정적인 연료수급, CO2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특성으로 인해([그림 3], [그림 4] 참조), 효과적인 기후변화 대응과 전력수급 안정의 측면에서 타 전원에 비해 월등히 우월한 전원으로 간주됩니다. 이에 따라 에너지와 기후변화 문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려는 현 정부에서 원전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작년 4월 일본 원전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 따라 2024년까지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되어 있는 14기(18,200MW) 이상으로 원전을 증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0년 BAU 대비 27%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LNG발전의 확대가 불가피합니다. 그렇게 되면 발전단가가 급증하고 안정적 전력수급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장기 전원구성과 원자력 정책
일본 원전사고 이후 원전비중(설비기준)을 2010년 23%에서 2030년 41%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현행 전원(電原)구성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 원전사고 이전에는 계획의 기준이 전력수급 안정(경제성, 안정성)과 기후변화대응(환경성)으로 설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원전 확대 정책이 도출된 바 있습니다.
물론 이는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을 수출해서 신성장동력을 만들어내겠다는 계획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원전사고 이후 전원구성 계획의 기준에 원전에 대한 국민의 수용성이 더해지면서 원전 확대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진 상황입니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2010년대 내내 발전설비의 부족으로 전력수급 불안이 지속될 가능성을 감안해야 합니다. 즉, 원전의 안전성 확인, 전력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고려하기 이전에 에너지 부문의 1차적 정책목표인 수급안정을 위해서 2020년까지 건설이 예정되어 있는 10기(12,800MW)의 원전 건설은 원전에 대한 안전규제기능의 강화와 병행하여 계획대로 추진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특히 현재 건설 중인 7기의 원전은 5년 이상 소요되는 건설공기를 감안할 때 타 전원으로 대체하기도 곤란한 상황입니다.
2021년 이후 원전 확대 정책의 유지 여부는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 CCS/CCR을 적용한 석탄발전의 상용화 가능성과 그러한 청정석탄발전의 경제성 등을 고려하여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력수급 안정과 기후변화 대응 필요를 감안할 때, 주 전력공급원으로서 현실적 대안은 장기적으로 원전과 CCS/CCR이 적용된 석탄발전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신재생에너지원은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고, 출력조절을 통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전원도 부족할 전망이므로 신재생에너지를 기저전원인 원전의 대체수단으로 고려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LNG발전 또한 향후 국제 천연가스가격에 큰 변화가 없는 한, 전력수급 안정의 측면에서 원전의 대체수단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들어 셰일가스 등 비전통가스의 생산 확대와 가격 급락을 본다면 LNG발전이 향후 주 전력공급원으로 기능할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셰일가스 등 비전통가스는 개발 측면에서 전통적인 천연가스에 비해 경제적으로 불리할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상의 문제로 인해 정부 규제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설령 셰일가스를 대량 생산함으로써 국제 천연가스가격이 대폭 하락하는 경우라도, LNG발전이 주 전력공급원으로 기능할 만큼 LNG발전량을 대폭 늘리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LNG를 도입하여 국내 발전소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설비의 대폭적인 확충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입지 여건 상 그러한 대규모 설비 확충은 용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CCS와 CCR의 상용화 가능성 또한 불투명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작년 말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회의 이후에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공조에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감안하면, 주 전력공급원으로서 원전에 대한 1차적인 대체 수단은 CCS와 CCR을 적용한 석탄발전으로 한정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합리적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021년 이후 원전 확대가 필요한 경우에 적정한 증설 규모는 기저부하(base load: 시간별/계절별로 변동하는 전력수요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연속적인 전력수요량)에 대한 장기 예측, 송전망의 송전용량, 원전 부지 및 폐기물 처리장의 확보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저부하에 대응하는 전원인 원전의 적정 규모는 일차적으로 기저부하에 대한 ‘장기’ 예측에 의해 제약되는 바, 향후 원전의 운전수명이 60년 이상일 것임을 감안하면 기저부하에 대해서는 충분히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또 향후 송전망 건설의 어려움도 지속될 것임을 감안한다면 원전 부지 및 확충 규모도 (생산된 전기를 주된 전력 소비지역인 수도권으로 옮길 수 있는) 송전망의 안정적 송전용량의 제한을 많이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