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이야기 11 – 책과 술, 나누면 좋은 것

올 해 초 봄,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 보지 못했던 남한산성을 찾아 갔습니다. 3개월 마다 진행되는 전통주 기행의 일환이었습니다. 늘 이번 기행은 어디로 갈 것인가가 숙제였습니다.

남한산성의 모습

이번 전통주 기행은 남한산성으로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가 본 기행지가 여럿인데다가 선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기호나 출신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동안 가 본 전통주 기행지를 꼽아 보자면 전주 삼천동 막걸리 골목, 한산 소곡주 동자북 마을, 면천 두견주 양조장, 신평면 신평 막걸리 양조장, 대부도 와이너리, 문경 호산춘 양조장, 동래 금정산성 막걸리, 포천 막걸리, 전주 전통주 박물관, 아산 외암리 연엽주, 용인 부의주, 정읍 죽력고 등등이 있습니다. 모두 직접 방문해 무형문화재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거나 방문해서 해당 술을 마셔 보았거나 한 곳입니다.

그 외에도 지나가면서 들러 사온 술이 부지기수인데 중원 청명주나 진도 홍주, 두레앙 백주, 파주 감홍로 등이 그러합니다. 원래 현대대림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아내가 벽에 붙은 공간을 개조하여 술 부스로 만들어 주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들여 놓은 술이 많아 지게 되었답니다.

거기다가 외국 여행을 하거나 지인이 사다 준 외국의 다양한 술 까지 합해 놓으니 그야말로 세계의 술이 한 자리에 모이는 꼴이 되었지요. 또한 여러 술들을 음미하다가 술 발달사에 중요하다 싶은 술은 일부러 사기도 했으니 이젠 몇 종류인지 세기가 불편해져 버렸습니다.

다시 송도로 이사를 오면서 집안에 걸 맞는 냉장고를 들려 놓는다는 핑계로 새 냉장고를 사주고는 그 동안 쓰던 냉장고를 술 냉장고로 전환하는데 아무런 잡음(?)이 없이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한(?) 술은 모두 냉장고에 넣고 상온에 보관하여도 탈이 없는 술은 술 장에 그리고 오랫동안 보관해야 하는 것들은 창고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식구들의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그 대가로 딸내미의 방안 가구를 새로 바꾸거나 아들녀석의 무리한 요구를(괜찮은 카메라와 렌즈) 들어 주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정리가 된 지금의 송도 집은 절친한 누군가가 방문하게 되어 술판이 벌어지게 되었을 때면 술에 의한 세계 여행을 하거나 우리 나라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지요. ^^

그런데 세계 여행 코스를 택한 사람이 막상 세계 일주를 하면 꼭 뒤탈이 났습니다. 너무 마셔 인사불성이 되거나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사고가 비일비재하였으니까요. 할 수 없이 코스에 제한을 가하여 대륙별 코스로 바꾸거나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 더 이상 세계일주가 힘들어지면 그 자리에서 정지하는 방안을 세운 것입니다.  이후로는 그러한 불상사는 없어졌지만 일단 제 집에서 세계 일주거나 전국 방랑의 코스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러한 여행을 무척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더군요.

술이 갈수록 많아지고 다양해지니 저장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술에 집착하기 전에는 책이란 놈에게 집착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문단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자연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러한 모임이나 행사에 자주 참여하게 되면서 내가 사거나 얻거나, 다른 이가 보내오는 책들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제가 하도 책을 좋아하니까 책 미치광이란 소문이 났던 모양입니다. 장모님 친구분의 남편께서 돌아가시면서 유언하시기를 당신이 가진 수많은 장서를 아들에게 물려 주었으면 하나 아들이 책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책들이 사장될까 염려하여 책만큼은 반드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라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친구분이 기억하기로는 제 장모님이 우리 사위가 책을 너무 좋아해서 딸이 불편해하더라는 말을 듣고는 그 말을 잊지 않고 계셨던지 아니면 인연이 그리 되려 하였던지 다행히 제가 그 책을 물려 받게 된 것이지요. 정말로 귀중하고 값나가는 책이 많았습니다. 책을 가져 가라는 연락을 받고 화물차 2.5톤을 준비하여 그 댁을 갔습니다. 물론 하루 전에 가서 책들을 모두 분류하여서 정말 비싸거나 희귀하지만 이 댁에 두어야 할 책은 모두 골라낸 후 그 댁 안주인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책과 자료들은 아주머니께서 잘 모르셔서 내어 놓았지만 나중에 아드님이 알게 되면 섭섭해 하실 테니 남겨 두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고 대략 1/3을 제외하였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돈을 드리면서 장차 자녀들이 필요한 책을 사실 때 보태라고 말씀을 드렸죠. 하지만 골라내고 정리하여도 책의 분량은 많았더랬습니다.

그 많은 책을 가지고 집으로 옮겨 온 날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횡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후로도 책은 계속하여 불어나 이제는 나 자신도 책이 몇 권 정도 되는지 숫자를 모릅니다. 다만 이사 할 때 마다 홍역을 치르는 것은 나나 이삿짐 센터 직원이나 매 한가지이지요. 이삿짐 센터 직원이 견적을 뽑는데 항상 터무니 없이 적게 뽑아서 포장 박스가 모자라 인근에 있는 자사 물품을 있는 대로 다 갔다 써도 발을 동동거리기 일쑤이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삿짐 분량의 절반이 책이니까요. ^^ 그런데 이제는 술이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더군다나 술이 이리 늘어난 것은 부지불식간이라 나도 술 장을 정리할 때면 “어! 이런 술도 있었나?” 하고 놀랄 때가 많습니다. 너무 많아서 주체 할 수 없는데도 자꾸 불어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IN PUT = OUT PUT를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들어 오는 만큼 퍼내기로(?) 하였습니다. 책도 상당량을 부산 남구 도서관에 기증하고 인천으로 올라 왔으며, 술도 정기모임이나 벙개를 칠 때마다 들고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결심하기에는 쉽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였습니다만, 나 보다 더 광대한 이가 있었습니다. 전통주 모임 멤버 가운데 “상황대부”라는 이가 있는데 이이는 술을 한 번 가져오면 말 통으로 가져 옵니다. 가히 참석자 모두가 입을 딱 벌리는 친구이지요. 또 한 번은 귀한 산삼 열 두 뿌리를 통째로 갈아 술에 우려 모두에게 질리도록 먹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무소유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데도 천성이 그러한지라 전혀 아낌없이 지인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친구가 산삼을 보러 갔다 하면 산신령이 섭섭지 않게 선물을 줘서 보냅니다. 청량산 전통주 카페에 열심히 참석하다 보면 산삼주도 먹고 송이버섯주도 먹고 귀한 재료로 만든 술은 모두 마셔 볼 수 있답니다.

거기다 이제는 구성원 대부분이 술 빚는 데는 달인이 되어서 들고 오는 술들이 엄청 맛이 좋습니다. 행색이 전통주 선생인지라 다른 이 보다는 내 술이 더 맛이 있어야 된다는 강박(?) 때문에 술을 내어 놓기가 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만 ^^ 그냥 묵묵히 내어 놓을 수 밖에 없는데 실은 맛이 별로이지만 그래도 선생 술이라 극찬을 아끼지 않는 청량산 전통주 동도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여튼 봄이 온데다가 새로운 전통주 기수들에게 남한산성 소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전통주 기행지로 좋다고 하니 모두 일거에 찬성을 이루었습니다. 남한산성 소주는 경기도 무형 문화재 제 13호로써 강석필옹이 기능 보유자입니다.  지금은 그의 아들인 강순구대표가 맡고 있으면서 우리 나라 쌀 막걸리의 현대화와 보급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남한산성 소주가 바로 그 분의 작품입니다. 남한산성 소주는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근거로, 조선조 제 14대 선조 때부터 빚어졌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병란이 잦아 왕실과 지배계층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해 도성과 가까우며 방어하기도 적합한 남한산성에 요새를 구축하고는 그곳에다가 많은 시설과 물자를 구축하고 생활할 수 있는 집도 많이 지어 놓았습니다. 그 수가 1000여 호에 다다랐으니 그 규모가 대단히 컸습니다.

유사시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로 치면 강남의 부자들이거나 정부 요직에 있는 상류층들이지요. 이들은 남한산성 마을을 형성하고는 별장처럼 이용하며 살았습니다. 따라서 생활이 부유한데다 각 집안 마다 전해 내려오는 음식이나 비법으로 술을 빚었으므로 자연히 남한 산성 마을은 그러한 고급(?) 문화가 모여서 흥청거리기 시작한 것이랍니다.

이러한 흐름이 남한산성 소주를 낳게 되었으니 그 술 맛은 범상치 않은 것이 당연한 귀결이겠지요? 남한산성 소주는 안동 소주와 더불어 우리 나라 증류주로서 최고를 구가했습니다. 남한산성 소주는 곡물로 빚은 순 곡주이지만 엿을 사용하는 특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좋은 술이 있는 곳은 반드시 좋은 물이 있듯이 남한산성 곳곳은 좋은 약수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남한산성 소주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남산산성 소주 전시관 투어
남한산성 소주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남산산성 소주 전시관 투어

 

미리 사전에 통지한대로 강순구 대표가 운영하는 남한산성 소주 전시관을 찾아 갔습니다. 봄비가 흩날리는데도 오히려 봄 비 덕분에 행락객들이 줄어 지체 현상 없이 시간 내에 당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미리 강대표가 나와서 우리 일행들은 환영하여 주었으며 친히 전시관 내부를 안내하고 설명도 곁들여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