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치유(heal)와 미술 치료(cure)를 구분 짓는 것은 치료사의 역할
지난 시간 미술 교육으로부터 시작된 우리 나라 미술 치료의 흐름과 현실에 대한 박승숙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미술치료계가 당면한 문제적 현실의 원인이 무엇인지 조금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할까요?
치유와 치료의 구분
‘치유’는 제공된 환경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자신의 자연치유력으로 스스로를 회복하고 균형 잡는 과정을 말합니다. 예술의 치유성이 강조되는 자리에는 어디에서나 예술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환경이 제공되고, 거기서 치유는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에게서 자연적으로 벌어지는 것으로서 이해됩니다. 예술치료사든 예술강사든 치유로서의 예술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전면에 예술을 내놓고 있고, 그들은 그 예술의 장을 펼쳐주고 활동이 원만하게 벌어지도록 약간의 도움을 주는 사람들로서 기능합니다.
반면, ‘치료’는 본인의 자연치유력이 이미 망가진 상태로 병을 앓고 있거나 자연치유력이 살아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데 장애가 되는 문제가 있어서 그것을 먼저 치워내야 치유될 수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 해당됩니다. 망가진 자연치유력을 되살리거나 자연치유력을 방해하는 장애 문제를 파악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데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전문적인 기술을 발휘하는 경우를 두고 ‘치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미술치료사가 치유가 아닌 치료를 하는 사람일 때는 치유로서의 예술 활동 도모가 아니라 심리치료를 위해 예술을 도구로서 기술적으로 활용하는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미술치료사들은 치유적 미술활동을 도모하는 미술강사로서 활동할 수도 있고, 미술이라는 테크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심리치료사로서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치료가 요구되는 현장에서 치유적 미술활동을 도모하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치료가 필요 없는 자리에서 심리치료사로서 자신의 역할을 잡아서도 안 됩니다. 그 둘을 구분하여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각 자리에 필요한 역량을 개발하여 효과적이며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미술치료사들의 자리매김 필요
이 시대에 미술치료의 개념이 다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미술교육이 부활되기 전에는 미술치료사들이 치유적 미술활동을 도모하는 사람으로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미술가들과 미술교육가들이 치유의 현장에 투입되어 성공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은 치유적 미술을 도모하는 게 아니라 심리치료를 하는데 있어 미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전문가로서 자리매김을 다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미술치료 대학원들에서는 치유로서의 미술이라는 예전 모델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미술의 치유성을 촉진하는 데는 미술치료사들보다 미술강사들이 더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고 능력도 더 뛰어나다고 봅니다. 미술활동 자체의 치유적 장을 펼치는 데는 개개인의 심리적 특성 및 문제를 크게 보지 않는 시선이 치유의 장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반면 미술치료사들 중에는 미술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 많고, 미술치료를 배울 때 심리학적 마인드로 사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상담을 하는 기술을 배우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걸려서 미술의 다양한 활동을 익히고 기획하는데 부족함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술전공자들이 미술치료 교육을 받아도 문제는 마찬가지입니다. 미술전공자들이 미술치료사로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도리어 미술의 창의적 활용성을 잃게 되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미술강사로서의 능력과 힘도 잃게 만들고, 미술치료사로서의 전문성도 온전히 갖춰주지 못하는 미술치료 교육 및 훈련 상의 문제점이 심각합니다.
저는 미술교육이 되살아나고 미술의 치유적 활동의 장이 미술강사들에 의해 도모되는 현 상황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미술치료사들이 미술강사들에게 제 자리를 되돌려주고, 더 제한적이고 더 구체적인 ‘치료’의 파트를 맡아 더 전문적으로 자신들의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봅니다. 이제 미술가와 미술교육가 그리고 미술치료사들의 이상적인 역할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예술치료, 전문적인 개입과 평가가 들어가야
예술은 범위나 제한 없이 무작위의 일반 대중을 상대로 제시됩니다. 반면에 예술교육은 교육의 대상이 정해지고, 그 대상에게 예술이라는 정서적, 창의적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면서 그것을 올바로 경험할 방법을 알려주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경험의 질이 바뀌고 풍요롭게 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줍니다. 예술이라는 새로운 경험의 장으로 대상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하는 것이 예술교육이 맡은 임무입니다. 그 안에서 성장하고 확장되며 변화되고 치유되는 것은 교육 대상자 각자가 자기의 때와 운에 따라 각자의 몫으로 가져가야 할 일입니다.
반면 예술치료는 예술교육보다 더 한정된 대상을 상대로 합니다. 대상에게서 변화되어야 하는 방향을 정해 치료사가 직접적으로 그 변화를 꾀하는 데 개입합니다. 변화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예술 활동을 특별히 선별하거나 기획하여 대상을 그 작업으로 이끌고, 그 과정 내내 치료사와 대상 간의 인간관계를 치료적으로 활용합니다.
예술활동을 치유적으로 쓰긴 하지만 예술치료에서는 제3자의 개입이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에 치유라는 말 대신 치료라는 말을 씁니다. 치유(heal)라는 말은 펼쳐진 환경 안에서 내재된 힘으로 스스로 균형 잡고 회복되는 것을 가리키는 반면, 치료(cure)라는 말은 그러한 치유가 벌어지게 하는 데 제 3자의 힘과 영향 즉 전문적인 계획과 개입 및 평가가 끼어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예술가, 예술교육가, 예술치료사들은 서로 중첩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사회적 효용과 가치에 대한 이 시대의 요청에 모두가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관심은 같더라도 세 영역의 전문성이 다르고 각각 교육배경도 다르기 때문에 맡는 일은 조금씩 달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