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꽃은 그 아름다움을 꽃피우기 위해 씨앗을 깨고 나오며 아름다운 나비는 자기 살 가죽을 탈피한 후 인고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꽃이 되고 나비가 된다. 세상이 정의하는 아름다움 뒤에는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으며 인고의 시간과 희생이 뒤따른다. 그 모든 아름다움은 그 고통이 클수록, 그 아픔이 클수록, 그 상처가 더 크게 벌어질수록 극치를 이룬다. 참 아이러니한 법칙이 아닌가? 하지만 그 고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니며 상처가 아닌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더하고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한다.
장창익 작가는 오랜 세월, 인고의 시간을 거치며 이제는 그의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며 작품을 통해 소통한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시작 점에서 꽃피워보지 못한 젊음을 형상화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의 시작은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 상처가 벌어질 대로 벌어지고 아픔과 좌절 그리고 슬픔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표현된 작가의 작품은 그러므로 더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
장창익 작가는 근현대 호남 화단의 좌장이라 불리는 남농 허건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사군자를 사사 받았으며, 목판화를 비롯해 동양화적 기법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한때 장창익작가는 민중미술 작품을 하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민중미술은 퇴조하였고 이후, 작가의 실험과 열정은 “자연의 대상”을 주제(오브제)로 다루게 되었다.
작가의 작품에선 독특한 감정이 묻어난다. 한 송이가 아닌 다발의 꽃들, 꽃잎, 나무, 물고기들은 수많은 생각과 열정, 사랑을 열망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고 외로움에서 벗어나 함께하고픈 우리의 고단한 마음일 수도 있다.
전지(全紙)에 굵은 선으로 윤곽선을 만들어 겹겹이 쌓아 올려 채색한 꽃과 나무들은 작가가 경험했던 긴 시간들과 어우러져 무한한 힘이 느껴진다.
우리는 때때로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순간마저도 아름다운 한때이며 그 순간이야말로 자신이 경험할 최고의 순간의 작은 씨앗이 되리라는 것을. 그러므로 그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겨낼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탄생한다는 것을…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한 야생화 작품 등을 통해, 시련과 좌절의 상황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오늘도 작가는 진정한 아름다움의 빛을 발하며 꽃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