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문화의 최전선 : 독서 모임

침체된 출판시장, 구원투수처럼 등장한 독서 스타트업

2019년도 이제 두 달 남짓 남아있습니다. 신년 계획을 세우시며 ‘독서’를 한 번쯤은 생각해보셨을 텐데, 올해 책은 좀 읽으셨나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2017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성인 독서율은 59.9%입니다.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성인이 10명 중 4명이라는 것이죠. 1994년 처음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당연히 출판사들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습니다. 2018년 상반기 출판산업계의 영업 이익액은 약 18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약 61억 원)보다 약 43억 원가량 감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출판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독서 모임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트레바리 (50억)>, 전자책 구독 서비스인 <밀리의 서재 (100억)>, <리디북스 (335억)>,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 (60억)> 등 국내 투자시장에서는 독서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자본이 몰리는 곳에는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며, 그곳에서 새로운 변화가 생겨난다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사양산업에 이익 추구 집단인 벤처캐피털이 주목 할 리는 없으니까요. 이렇게 상반되는 온도 차가 발생하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들의 공통점을 잘 살펴본다면 하나의 핵심적인 변화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바로 ‘비 독자를 독자로 전환’ 시키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출판시장이 모든 사람을 타깃으로 삼았다면, 이들은 시장을 세분화하여 그들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트레바리에 참여하는 이들은 독서 모임을 통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높은 만족도를 얻고 있으며, 전자책 시장은 ‘오디오북’ 서비스를 통해서 바쁜 일상에 책을 읽을 시간을 따로 확보하기 어려운 이들을 공략하고 있고, 퍼블리 같은 콘텐츠 플랫폼은 전문가들의 잘 정리된 한 편의 글을 통해서 신속성과 정확성을 제공하여 책이라는 콘텐츠가 갖고 있는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즉, 책을 접하고 소비하는 행태가 바뀌었고, 이들은 그들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gs칼텍스, gs칼텍스사보, 독서모임독서 문화의 새로운 변화

이렇듯 독서 문화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크게 3가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1) 무료 소모임이 아닌 유료 커뮤니티, 혼자가 아닌 함께 읽기

여전히 소모임 수준으로 운영되는 독서 모임이 많이 있지만, 앞서 소개한 트레바리를 비롯하여 숭례문학당, 아그레아블 독서 모임, 북메트로 등 유료로 운영되는 커뮤니티형 독서 모임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적게는 회당 15,000원에서 많게는 회당 약 8만 원 수준까지 지불을 하는데요, ‘내가 책을 읽고, 소감문도 쓰고, 이야기도 하는데, 참가비까지 낸다고?’라며 의문을 갖는 분들도 있으시지만, 참여하시는 분들이 오로지 모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참가자 모집과 관리, 기획, 운영을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낮아지고 있습니다.

참여하시는 분들 역시 무료보다는 유료 모임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옵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모임에 참여를 하게 될 때 가장 걱정이 되는 요소 중 하나는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는가’인데, 이에 대한 불안함을 유료 멤버십이 다소 해결해줍니다. 유료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고 참여를 할 정도라면 ‘자기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이라는 상호 신뢰가 우선적으로 형성되며, 내 돈을 내고 참여하는 만큼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게 참여하시는 분들이 더욱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독서 모임 외에도 취향을 나누는 만남 ‘취향관’, 비즈니스 토론클럽 ‘인사이터’, 장르문학 창작자 커뮤니티 ‘안전가옥’, 모임 문화 플랫폼 ‘2교시’ 등 다양한 커뮤니티가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는 만큼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동창회 같은 기존 오프라인 모임들처럼 관계를 위한 관계가 아닌 관심사, 취향 중심의 관계로 맺어진 만큼 서로에게 매력적인 ‘느슨한 관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니까요.

2) 개인 브랜딩의 시대, 독서를 넘어 글쓰기, 책쓰기로

사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인문학 열풍’ 기억나시나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거기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iOS4를 발표하는 기조 연설에서 자신들이 Technology(기술)와 Liberal Arts(기초 교양)의 intersection(교차 지점)에 있다고 표현하면서, 이 열풍은 기업 경영에까지 확산이 되며 경영과 인문학을 접목한 강의가 높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는 수많은 인문학자들을 강단 위로 세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대중들은 석학들의 고증 담론을 들으며 곧 자신의 삶도 극적으로 변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환상은 집 문을 여는 순간 마주하게 되는 변하지 않는 일상 앞에서는 무기력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나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라는 깨우침을 안겨주었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많은 독서 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3) 즐겨라, 다양하게

2019년 최고의 화제작이라 할 수 있는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를 보면 90년 대생들은 길고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재미를 추구하고, 다른 사람이 불편해한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세대라고 합니다. 이들에게 책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독서 모임은 다소 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책을 즐기는 방법 역시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는 매월 낭독회를 진행합니다. 어렵게만 생각되는 시를 시인이 직접 낭독하고 온몸으로 시를 느껴보는 것이죠. ‘경험 수집 잡화점’에서는 하루 15분 필사 모임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글을 베껴 쓰면서 문장의 구조와 표현력을 기르기도 하지만, 책을 가장 꼭꼭 씹어먹는 방법이기도 하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책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위스키 성지순례」 같은 책을 읽은 뒤 각자의 감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 다 함께 공원에 나가서 러닝을 하고, bar에 가서 위스키를 함께 즐기는 방식으로 독서를 체험하는 만남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교보문고, 민음사, 문학동네 등 출판사와 대형 서점에서도 자체적으로 북 클럽을 기획·운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독서 모임은 더욱 많아질 것이며,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세분화되고, 전문적으로 운영이 될 것입니다.

gs칼텍스, gs칼텍스사보, 독서모임과연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까?

서브 컬처가 제대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하이 컬처 역시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처럼, 다음 단계의 독서 문화로 넘어가기 위한 핵심은 독자들의 다양성에 걸맞은 깊이의 확보인데,  여기서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019년 한 해 서점가를 휩쓸었던 베스트셀러들과 1인 출판, 또는 독립 출판을 통해 출간되는 도서의 대다수가 ‘쉽고 가벼운 에세이’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서점에서 제공하는 ‘큐레이팅 서비스’와 독서 모임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적극적인 독서활동 참여 경험’을 확산시킬 필요성이 있습니다. 읽고 싶은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읽어봐야 하는 책들을 함께 읽는 것이죠. 이 또한 도서정가제가 유지되면서 최소한의 경쟁력을 확보한 동네 서점들의 확산과, 하나의 비즈니스로서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독서 모임들이 늘어나면서, 각자의 생존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실험적인 프로그램들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보완이 되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더욱 많은 저자들이 탄생할 것이며,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이들이 형성해나갈 스몰 마켓은 긴밀한 연결이 핵심 역량인 만큼 ‘로컬의 시대’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 여러분께서 함께 동참해주신다면 21세기에 새로운 독서 문화 르네상스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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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독서 문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어요!

  • 새로운 독서 문화를 정착시킨 곳들의 공통점은, 바로 ‘비 독자를 독자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점입니다.
  • 독서 모임 내 유료 멤버십은, ‘어떤 사람들이 모임에 참여하는가’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켜줍니다. 유료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고 참여를 할 정도라면 ‘자기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이라는 상호 신뢰가 우선적으로 형성되며, 내 돈을 내고 참여하는 만큼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게 참여하는 사람들 또한 더욱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 과거처럼 출판사를 통하지 않아도 펀딩이나 독립 출판을 통해서 자신의 책을 출간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시스템적 기반이 마련된 것 또한 새로운 독서 문화 정착 성공에 한몫하는 요소입니다.
  • 이제는 대형 출판사와 대형 서점에서도 자체적으로 북클럽을 기획·운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독서 모임의 개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며, 다양한 취향 만족을 기반으로 세분화되고, 전문적으로 운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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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훈 대표 | 북 커뮤니티 사과 운영자

매월 300여 명이 참여 중인 부산, 울산, 경남 최대 규모 독서 모임 커뮤니티인 ‘사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0년 부터 시작하여 약 10년간 독서 모임을 운영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독서 모임 운영자 과정’을 개설하여 다양한 독서활동가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