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력은 분석보다 신념에서 나온다

최근 경제신문이나 비즈니스 잡지에서는 핀란드 기업 노키아가 부활했다는 기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세계 1위의 휴대폰 제조업체였던 노키아는 아이폰 등장 이후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다가 끝내 휴대전화 사업을 매각했습니다.

그래서 최근 실패 사례로 경영학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했는데요, 다시 재기했다고 하니 경영학 교재를 쓰는 분들이 꽤 바빠졌을 것 같습니다. 노키아가 세계 최고의 기업이었을 때가 2008년이었으니 딱 10년만에 지옥으로 떨어졌다가 도약하게 된 겁니다.

 

<이미지출처 : NOKIA 웹사이트>

노키아 사례를 보면 기업을 둘러싼 변화가 얼마나 빠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어떤 경영원칙을 익혀야 할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노키아의 실패가 CEO의 오판이었다고 비평하다가 이제는 새로운 CEO의 뛰어난 판단으로 성공했다고 합니다. 어떤 말을 들어야 할까요?

이런 변화의 시대에 문제의 본질을 보는 ‘통찰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리더는 통찰력을 길러야 정신 없는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미래를 개척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통찰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는 사례 하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샤넬의 복귀 계기

1953년 초 뉴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마리 엘렌이라는 명문가의 딸이 무도회에 입고 갈 드레스를 어머니의 친구에게 선보였습니다. 어머니의 친구는 당시 매장을 닫고 쉬고 있었던 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었습니다.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에 대해 천박하다며 혹평을 퍼부었죠. 마리 엘렌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쳐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유명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손보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 순간 그녀의 눈에는 빨간 실크 커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단숨에 커튼을 뜯어 즉석에서 옷을 만들었습니다. 몇 시간 후 마리 엘렌 모녀는 한번도 본 적 없는 드레스에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옷이었죠.

더욱 놀라운 일은 무도회에서 일어났습니다. 미국 최고 명문가의 상속녀들이 모두 마리 엘렌의 드레스에 감탄했습니다.

GS칼텍스 사보, 샤넬

<글에 나오는 샤넬이 만든 드레스는 아닙니다. 이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요?>

모두 그 옷에 대해 이야기했고 누가 만든 것인지 물었던 것입니다. 그날 마리 엘렌은 무도회의 꽃이 됐습니다. 바로 샤넬의 나이 일흔 살 때 일입니다.

 

디오르와의 싸움

이 일을 계기로 샤넬은 복귀를 결심합니다. 사실 2차 세계대전으로 사업을 접었고 독일군 장교와 사귄 일로 15년 가까이 프랑스에 돌아가지 못했지만, 샤넬은 늘 파리 패션계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패션계는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주도하고 있었는데요, 디오르의 디자인은 이전의 실용적인 복장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뉴 룩(New Look)’이라고 불렸습니다.

뉴 룩은 꽉 조인 허리, 부드러운 어깨선,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내려오는 롱스커트로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를 드러내는 디자인입니다. 평소 샤넬은 뉴 룩이 여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디자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친구의 집에서 아직까지 시들지 않은 디자인 감각을 확인하자, 이런 뉴 룩에 대한 불만과 질투가 폭발했는지도 모릅니다.

드디어 1954년 2월 5일 파리의 루이 캉봉가 31번지에 있는 살롱에서 샤넬의 패션쇼가 열렸습니다. 기자, 사진작가, 배우, 예술가 등 유명인사들이 모여들었지요. 그런데 뉴 룩과는 정반대인, 단순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에 사람들은 실망합니다. 복귀를 위한 샤넬의 컬렉션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GS칼텍스 사보

하지만 세상 모두가 샤넬을 버린 건 아니었습니다.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에 미국과 영국 패션계는 두 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해외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다시 곧 프랑스에서 샤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습니다. 뉴 룩에 열광하던 사람들이 허리에 꼭 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기지 시작했습니다.

불과 1년 만에 샤넬은 뉴 룩을 완전히 몰아내게 되었죠. 심지어 디오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그의 회사를 떠맡게 된 젊은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역시 샤넬을 따라서 입기 편한 의상을 선보였습니다.

뉴 룩에 대한 승리는, 샤넬이 1920년대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였던, 폴 푸아레(Paul Poiret)와의 경쟁에서 이긴 것과 비슷합니다. 푸아레는 귀족과 부자들을 위한 화려한 옷을 만들었고, 샤넬은 속옷감으로 쓰이던 저지 같은 소재를 활용해 실용적인 의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나면서 샤넬이 만든 편리한 의상이 점점 인기를 얻게 돼 푸아레의 패션을 밀어냈습니다. 샤넬은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입기에는 불편한 뉴 룩의 인기도 오래 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즉, 샤넬은 시대의 흐름을 직감하고 있었던 겁니다. 샤넬의 시장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원시 부족 추장의 통찰력

잠시 다른 에피소드를 살펴보겠습니다. 수십 년 전에 영국 탐험가들이 말레이시아 고산지대에서 원시 종족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아직 바퀴조차 없는, 그런 문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부족의 추장은 매우 지적이었으며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탐험가들과 말이 잘 통했습니다. 그래서 탐험가들은 이 추장을 싱가포르에 데려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탐험가들은 추장을 24시간 내내 데리고 다니면서 문명 세계를 맛보게 했습니다. 선박이며 자동차, 호텔, 아파트, 텔레비전과 전화기 등 여러 가지, 원시 사회를 바꿔놓을 수 있는 수많은 신호들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런 후에 추장을 자기 마을로 데려다 주고 지난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물어봤습니다.

놀랍게도 추장은 그 동안 겪은 경이로운 경험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단 하나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건 수레였습니다.

GS칼텍스 사보

한 장사꾼이 바나나를 가득 채운 수레를 밀고 가는 걸 보았을 때, 그 물건의 유용성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추장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수많은 도시 문명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입니다.

 

통찰력은 신념에서 나온다.

우리 주변에는 미래의 시장 변화에 대한 수많은 시그널들이 널려있습니다. 그러나 평소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시그널들은 무의미한 잡음에 그칠 뿐입니다.

GS칼텍스 사보, 통찰력

통찰력은 시장에 있는 여러 시그널을 분석한다고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해석은 남이 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하는 것이죠. 즉 통찰력은 스스로의 생각, 자기만의 열정, 남과 다른 역량에 따라 수많은 시그널 중 하나를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샤넬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의 소녀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지냈다고 합니다. 색깔은 무채색이었고 실용적인 옷이었죠. 샤넬이 바느질을 배운 곳도 여깁니다. 옷은 편리하고 단순해야 한다는 생각은 단체복을 입던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가졌던 철학이었습니다. 반면, 디오르는 비료 사업으로 성공한 부잣집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고급의상실에서 주문한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고,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했습니다. 그림을 잘 그렸던 디오르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죠. 그에게 옷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억압돼있던 여성들의 욕구가 폭발했습니다. 여기에서 샤넬은 활동을 원하는 여성들의 실용적인 욕구를 보았고, 디오르는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여성들의 욕구를 본 것입니다.

그들은 각자 가진 생각과 자기만의 스타일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통찰력은 각자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지브 수리의 통찰력

처음에 이야기했던 노키아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노키아 부활 스토리의 요점은 경쟁력이 안 되는 휴대폰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핵심역량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운전자들이 대부분 쓰고 있어서 그나마 짭짤하게 돈을 벌고 있었던 지도 서비스 사업도 매각했습니다. 그리고 통신장비개발 자회사인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의 지멘스 지분 50%를 모두 사들이고, 프랑스 통신장비업체인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했습니다. 통신장비업체로 거듭난 것이지요.

110억 유로까지 떨어졌던 매출은 급격히 회복되어 2017년 23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현재 통신장비 분야에서 화웨이, 에릭슨과 3강 체제를 견고히 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이끈 CEO가 바로, 노키아맨이라고 불리는 ‘라지브 수리’입니다.

GS칼텍스 사보, 노키아

인도 뉴델리에서 태어나 인도에서 공부한 수리는 노키아 입사 때부터 줄곧 네트워크 장비 사업부에서 성장했습니다.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의 사장을 하다가 노키아를 지휘하게 된 것이죠. 현재 노키아가 핵심역량으로 삼는 네크워크 사업은 바로, 수리 CEO가 노키아에 입사해 23년 간 몸담았던 분야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변화가 일어나는 현재 환경에서, 수리 CEO가 네크워크 사업의 미래를 꿰뚫어 본 통찰력 역시 경험에서 바탕이 된 그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이병주 | 경영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및 석사를 마치고 LG경제연구원 경영컨설팅센터에서 경영 리서치와 컨설팅을 수행했습니다. 이후 생생경영연구소를 설립하여 다양한 기업에 강의하고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더밸류컨설팅을 설립하여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 육성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동아비즈니스리뷰 등 경영전문 매체에 아티클을 연재하였으며, 경영자 교육 사이트 Seri CEO의 코너를 5년째 담당, 베스트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3불 전략, 촉, 애플 콤플렉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