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 울리는 첼로의 선율 – 첼리스트 김기용의 ‘My friend, Cello’

 

여수에 울리는 첼로의 선율 – 첼리스트 김기용의 My friend, Cello

 첼리스트 장한나가 예전에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첼로에게 이름도 붙여주고, 비행기 탈 때 반드시 티켓 1장을 더 사서 옆자리에 첼로를 놓는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번에 예울마루에서 ‘My friend, Cello’라는 타이틀로 공연을 하는 연주자가 있어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첼리스트 김기용은 조금 특별한데요, 첼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1년만에 음대에 합격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연주자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시작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천재’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뒤늦게 시작한 음악 공부, 1년만에 대학에 합격하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닐 시절, 당시 고등학교가 밤 12시에 끝났습니다. 그러던 어느라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TV를 보는데 EBS에서 ‘한국을 빛낸 한국인’이라는 테마로, 장한나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장한나의 하이든 첼로 협주곡 C Major를 듣고 나서는 더 이상 공부에 매진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한나의 하이든 첼로 협주곡 C Major를 듣고난 뒤, 음악인의 길을 결심한  김기용

 어머니께서는 본인이 피아노를 전공하셨고, 음악인으로서 삶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아셨기에 제가 음악을 하는걸 썩 좋아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개월간의 설득 끝에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그 때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다. 하지만 니가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다오”

 그 말은 저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 들렸고, 전 아직도 제가 음악을 선택한 것에 대해 한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습니다.

 

양성원 선생님과의 인연

 우여곡절 끝에 첼로 전공을 하고 대학에 들어왔는데, 1학년 입학했을 당시 저는 스케일도, 연습곡도 배워본 적이 없고, 입시곡 하나만 외워서 합격을 했기 때문에 기초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첼리스트 양성원선생님께서 부산의 한 음악캠프에서 레슨을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참가했습니다.

 일주일 동안의 음악캠프가 끝날 무렵, 제가 선생님 방에 찾아 가서, “선생님, 일주일에 한번 또는 한 달에 한번 이라도 좋으니, 선생님께서 바쁘시더라도 시간을 내주셔서 수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떻게 시간 좀 내주시면 안될까요?”라는 질문에 “미안합니다. 제가 앨범작업에 연주일정에 바빠서 기용학생을 언제 한번 수업을 해 줄 수 있다, 라는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음악캠프에서 만날까요?” 정중한 거절을 듣고, 저는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첼리스트 요요마가 중국 상하이 방송 교향악단이랑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을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지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예술의 전당 로비에서 양성원선생님이 보이는 겁니다. 가서 인사를 할까, 말까?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릅니다. 용기를 내서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기억을 해주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저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시더군요.

 

예술의 전당에서 우연하게 만나 5년 동안 스승과 제자로 만남을 이어온 첼리스트 ‘양성원’

 “음악회를 보려고 지방에서 여기까지 온 거에요?”

 “열악한 지방에서 대가들의 음악을 듣는 게 좀처럼 쉽지 않고, 좋은 공연을 보기 위해서 일주일에 3번 4번도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수첩을 꺼내시면서, ‘얌폴스키 스케일 C Major, 바하, 다비도프 첼로 협주곡, 포퍼 에튀드’ 그리고 집주소와 날짜 시간… 이렇게 해서 저는 양 선생님께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첼리스트 김기용이 기억하는 양성원 선생님

 이렇게 일주일에 한번씩 약 5년 동안 거의 한번도 빠짐없이 수업을 받으러 갔었는데, 한번은 새벽6 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기용아~나 아들 났다. 지금 병원인데, 오늘 수업을 취소 해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렇지만 저는 수업을 빠질 수 없었기에 “선생님, 득남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수업을 받아야겠습니다. 오늘 못 받으면 2주 동안 수업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게 저에게는 너무 긴 시간입니다”라고 말씀 드렸지요.

 그리고 한번은 추석 명절에 무조건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선생님의 아버님이신 양해엽 선생님 댁에 가서 한복을 입고 있는 수업을 받고 내려 오기도 했습니다. 보기에는 냉정하고, 학생들에게 엄격할 것 같은 선생님이시지만 인간적이고, 솔직하고, 정이 많으십니다.

 서울에서 함께 공연을 본 후에는 기차역에 바래다주시기도 했으니까요. 당시 저에겐 정말 커 보이기만 했던 스승님이었는데, 그런 분이 저에게 소탈하게 대하셨던, 행동이나 말투가 저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양선생님께 수업을 받는 동안 첼로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힘들었던 독일 유학 생활

 처음에 민박집 예약을 하고 첼로랑 밥솥 하나 들고 공부를 하러 독일에 나갔습니다. 정말 비행기 티켓 한 장 들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독일로 무작정 떠난 셈이죠. 그래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일주일에 3일은 일본 식당에서 부 주방장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학원 봉고차 운전에 막노동까지 신문배달만 빼고 안 해본 거 없는 저였지만, 외국에서는 외로움까지 겹쳐서 더 힘들더군요. 그래도 독일에서 1집 ‘베토벤과 멘델스존의 첼로 소나타’, 2집’러브레터’를 발매까지 하게 됐으니 지금은 그 때의 어려움을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요.

 

이번 공연에 함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Hannelott Weigelt

 저는 선생님 복이 참 많습니다. 이번 순회공연 때 같이 호흡을 맞출 피아니스트도 2011년에 한번 한국에서 같이 연주를 했을 때 너무 좋았다며, 수고비나 교통비도 안받고 자비를 들여서 연주를 해주시겠다고 먼저 제안해주셨습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공연 준비를 하던 저에게 너무나 힘이 되고 감사하죠.

 

 

지방 순회 연주만 고집하는 이유

 제가 공부를 할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서울에 비해 아직도 지방은 문화예술수준이 열악합니다.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지방에서 연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거든요. 물론 예울마루 같은 공연장 덕분에 서울에 가지 않고도 양성원 선생님 공연이나 백건우 선생님 공연을 볼 수 있게 됐지만 말입니다.

 지방 공연만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여수 공연의 수입금은 어려운 가정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기부할 예정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목사님께서 여수에서 봉사를 많이 계시더군요. 그 중에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들도 있고, 소년소녀가장도 있는데 그 친구들이 악기 수업을 받고, 작은 앙상블을 만들어서 연습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악기 수업이나, 생활하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라고 보태고 싶습니다.

 

 첼리스트 김기용의 My friend, Cello

 

앞으로의 계획

 제가 작곡에도 관심이 많아서 현재 6개 정도 적어놓은 곡이 있는데, 3집 앨범은 제가 작곡한 곡으로 작업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Monday 라는 JAZZ 팀을 만들어서 벌써 1년째 연습 중에 있는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해보고 싶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한 선생님께서 제게 그러더군요,

 “예술가는 마음이 순수해야 하네. 기용군이 한국사회를 살면서, 예술가로서의 마음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네”

 저는 첼리스트 입니다, 예술가 입니다. 그리고 그전에 한 인간입니다. 음악을 통해 힘없고 가난한 분들을 위해 연주하고 싶고 힘이 되고 싶습니다. 음악인으로서 첼리스트로서 음악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여수 예울마루에서 그의 아름다운 첼로 선율을 만나보세요.

 커트 보네거트는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라고 했는데, 첼리스트 김기용이야말로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인생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번 순회연주가 더욱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