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배우다. – GS칼텍스 윤활유공장 생산기술담당 진교중 부장

 

윤활유계의 진정한 프로페셔널 Deep Smart를 향한 꿈 – GS칼텍스 윤활유공장 생산기술담당 진교중 부장

GS칼텍스가 윤활유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년 후인 1989년 7월 진교중 부장은 기술연구소로 입사를 하게 됩니다. 정유 파트, 기술 파트, 석유화학 파트, 윤활유 개발 파트 중에서 윤활유 기술 연구를 맡게 된 그. 윤활유공장 품질보증과 근무를 시작으로 윤활유와 인연을 맺은 지 벌써 25년이 되어 갑니다. GS칼텍스 윤활유 역사의 산증인 진교중 부장을 만나러 갑니다.

 


25년이란 시간동안 GS칼텍스와 함께 달려온 GS칼텍스 윤활유공장 생산기술담당 진교중 부장

“1989년 인천 윤활유공장 실험실에서 윤활유 처방개발을 시작했고 1994년에는 생산계획을 담당했죠. 1995년에는 품질
보증과장을 했고, 1998년에는 생산과장을, 2000년 12월에는 본사 윤활유기술팀으로 옮겨가 기술영업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다 2007년 9월 북성동과 원창동 공장 통합 프로젝트를 하러 공장으로 내려왔죠. 2010년에 초에는 인도로 날아가서
법인과 생산시설을 만들었고 같은 해 말 북성동에 글로벌 물류센터를 짓고 지금은 생산기술담당 부공장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지난 25년간의 이야기를 단숨에 쏟아놓는 진교중 부장. 윤활유라는 한우물에서 하나의 일가를 이루어낸 지난날을 담담히
회상하는 그의 모습에서 윤활유에 대한 그의 애착이 엿보입니다.

 

GS칼텍스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다

단언컨대 국내에서 윤활유 기술, 생산, 품질, 플랜트까지 전분야에서 진교중 부장을 따라올 자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올챙이 적 시절이 없을 리는 없겠죠.

 

입사 직후 스스로 공부를 해가며, GS칼텍스의 자체 브랜드 개발에 큰 힘이 된 진교중 부장

 “입사 직후에 윤활유 처방 개발 업무를 맡았어요. 처방을 만들려면 윤활유 기술을 공부해야 하는데 문제는 교과서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윤활학이라는 것이 없었으니까요. 첨가제는 화학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기계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려면 기계를 알아야 하죠. 기계도 쇠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합금도 있고 하니까 재료도 알아야 하구요. 유압이 무엇인지도 공부해야 했고요.

그래서 화학, 기계, 재료, 물리 분야를 전부 다 알아야 했어요. 그렇게 수험생처럼 책을 파고 공부를 해가면서 1991년도에 처음으로 GS칼텍스의 자체 브랜드를 개발했죠. 디젤엔진오일인 ‘다이나믹’과 가솔린엔진오일인 ‘디럭스골드’ 였어요. 그전까지는 텍사코나 셰브런의 브랜드를 빌려 썼으니 큰 의미가 있는 해였죠.”

GS칼텍스식 설비와 기술 서비스를 만들어내다

1994년 1월 1일 원창동 공장이 첫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북성동 공장에서 배합한 완제품을 충전 설비를 갖춘 원창동 공장에서 용기에  담아 출하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첫 가동 이후 충전 라인은 고장이 잦았다고 합니다. 대단위 충전기계는 대부분 이탈리아나 미국에서 생산된 경우가 많은데다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가 가득한 매뉴얼은 기계 수리에 무용지물이었다고 하네요.

1998년 생산과장으로 일했던 그는 당시 생산 상황에 맞게 기계를 뜯어고쳐 고장을 줄이고 생산량을 높이기 시작합니다.

“제가 워낙 기계에 취미가 있어요. 전부 다 분해해서 하나하나 뜯어보고 어떻게 하면 될까 고민하고, 다른 부품도 이것저것 달아보고 그랬죠. 교과서도 없죠. 매뉴얼도 형식적이죠. 제조사는 기본사항만 알려주고요. 그러니 우리 기술과 노하우로 우리 입맛에 맞게 개조할 수 밖에 없었어요.”

무용지물은 매뉴얼을 뒤로하고 직접 우리 기술과 노하우로 대단위 충전기계를 개조해낸 진교중 부장

공장에서 10년 넘게 탄탄한 백그라운드를 쌓은 그는 2000년 12월 정든 인천을 떠나 본사 윤활유기술팀에서 기술영업을 시작합니다. 고객사의 요청을 받아 하나의 제품을 개발하고 최종 승인을 받는데 통상 2년 반에서 3년 반이 소요되는 작업인데요. 고객사의 요청에 맞는 제품 개발을 위해서 별의별 일을 다 해봤다고 이야기합니다.

“제주감귤농장에 무공해 농약까지 만들어 공급했죠. 독성이 강한 농약은 벌레를 죽이면서 인체, 토양, 작물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윤활유를 물이랑 섞은 형태의 농약을 개발했어요. 벌레 몸에 농약이 묻으면 물은 대기로 날아가고 기름만 남아서 숨구멍을 막아서 질식사시키는 원리였죠. 순광유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람이나 식물에는 해가 없었죠.”

이렇게 제품 개발과 승인, 기술서비스 제공까지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기술영업이 현장에서 빛을 발한 것은 당연지사였습니다.

북성동과 원창동, 공장을 일원화하다

2008년 현장에서 열심히 기술영업을 수행하던 중 북성동과 원창동 공장 통합에 대한 BB프로젝트를 맡게 됩니다. 프로젝트는 CEO 승인을 받았고, 당장 실행에 옮기라는 명을 받고 또다시 공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두 공장을 일원화하는 LOBP U&R
(Lube Oil Blending Plant Unification & Rationalization) 프로젝트를 2008년부터 실행에 옮겨 2009년 3월 완료합니다.

2009년 3월 31일 그리스공장만 남겨놓고 북성동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4월 1일부터 원창동에서 배합과 충전을 일괄적으로 처리하게 된 것이죠. 25년이라는 그의 근무 기간 중에 가장 고생스러웠고 기억에 남는 큰 프로젝트였다고 회상합니다.

가장 고생스럽고 기억에 남는 일로 북성동과 원창동 공장 통합 프로젝트를 회상하는 진교중 부장

“모든 공장은 라이센스라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여수공장의 CDU를 이렇게 만들어라 하는 UOP 라이센스라는 것이 있어요. 엔지니어링 회사가 밑면적, 두께, 볼트, 다단의 높이, 재질까지 규격화되어 있는 가이드가 전부 나와 있는 것이죠. 그것대로 그대로 지을 수 있는 설계도라고 이해하면 되요. 하지만 윤활유공장은 그런 식의 설계가 없어요. 그전까지 윤활유 자체만 파다가 공장을 처음 지어야 하는데설계도가 없는 꼴이었죠. 그러니 설계 단계부터 참여할 수 밖에요.

어떤 식으로 공장을 지을지 PFD(Process Flow Diagram)를 그리기 시작했죠. 비용과 기간은 제한되어 있죠, 재료 값은 자꾸 오르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10개월간 공장에서 먹고 자며 생활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내 손으로 공장 짓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말하는 그는 정말 뼛속까지 엔지니어인가 봅니다.

악조건 속에서 인도 법인을 설립하다

공장 일원화 임무까지 완수한 그. 2010년에는 인도 뭄바이로 날아가 윤활유법인을 만들고 생산시설을 만들고 생산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명이 떨어집니다. 난생 처음 가보는 인도에서 법인을 세우고, 생산공장을 계약하고, 금형을 파서 용기를 만들고, 배합하고 충전해서, 라벨을 붙이고 박스를 담아 출하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세팅하게 됩니다.

공장 일원화를 마친 뒤에는 악조건 속의 인도 뭄바이에서도 GS칼텍스의 공장을 안정화시킨 진교중 부장

“기존에 있던 윤활유공장 하나를 빌려서 쓰는데 북성동 공장보다도 더 심하게 낙후되어 있더군요. 또 인도사람들이 영어를 못해서 통역사를 불러다놓고 어떻게 생산하는지 하나하나 시범을 보여주고 품질관리, 주의사항, 안전관리, 포장과 출하까지 모든 과정을 설명했어요. 기온은 45도를 육박하고 직원들은 서툴고 정말 힘들었어요.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세어서 돌아왔죠. 하하.”

엔지니어 DNA와 실험정신

지난 25년 동안 수많은 과제와 프로젝트를 맡아 성공으로 이끈 과정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고 새로웠기 때문에 물어보고 알아보고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하나하나 헤쳐왔다는 겁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법률, 장사, 예체능 이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의사 아니면 과학자가가 되겠다는 꿈을 꿨다는 그.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입사했지만 영업, 인사, 총무, 재무, 법무 쪽으로는 전혀 눈길이 가지 않았다고 하네요.

자신의 일을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한 우물만 멋지게 파온 진교중 부장!

“저는 뼛 속까지 공돌이에요. 1 더하기 1은 2가 되어야지 다른 값이 나오면 마음이 불편해요. 과학이나 수학은 정직하잖아요. 오로지 기술, 생산, 연구 쪽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애를 쓰고 공을 들인 만큼 결과가 나오는 솔직한 일들 말이에요. 결과가 나쁘면 몇 개의 원인 중에 하나인 것이죠. 내가 몰랐든지, 어떤 것이 부족했든지, 내가 열심히 안 했든지 중에 하나죠. 내가 모르는 것은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또 필요한 것은 돈을 주고 사거나,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구요.”

공부와 연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는 자기 손으로 실제로 꼭 해보는 습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대졸 사원으로 윤활유 실험실에서 업무를 시작한 당시. 배합을 실제로 해보려는 그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며 선배가 말렸다고 하네요

어떤 문제든지 두려움 없이 부딪히고, 도전하며 몸으로 배워나가는 진교중 부장

“내가 이걸 직접 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현장직원들에게 지시를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제가 평생 그 일을 할 것은 아니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죠. 현장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를 계속 궁리하면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하고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이 오는 것이죠. 실제 내 몸으로 부딪혀보고 답을 찾는 과정이에요.”

그가 동료들에게 자주 하는 말 중에 ‘인우제’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의 기우제’를 뜻하는데요.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단 한번도 실패를 안 한다고 합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하니까 성공확률 100%라는 것이죠. 그는 그런 정신으로 하나를 물고 늘어지면 기필코 답을 찾아냅니다.

대신 안될 것 같은 일에는 포기도 빠르다고 하네요. 하지만 하고 싶고, 가능성이 있고, 의미가 있는 일에는 끝까지, 될 때까지 하는 집념의 사나이입니다. “정유 쪽은 수많은 연구, 책자, 정보가 축적되어 있어서 배우기도 쉽구요. 그에 비해 윤활유는 상대적으로 아직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는 스릴과 자부심이 있죠.”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진교중 과장을 응원합니다 C-:

 이론에만 능한 북 스마트, 실전에만 강한 스트리트 스마트를 부정하고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을 지닌 진정한 프로페셔널인 딥 스마트(Deep Smart)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에게 와서 고민을 이야기하고 상의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기술 한 분야만을 파고 싶어하는 후배들이 많이 들어와서 후배들과 신나게 토론하고 연구하며 후배를 양성하는 것이 제일 큰 꿈이라고 말하는 그의 심장은 아직도 또다른 도전을 향해 힘차게 뛰고 있습니다.

GS칼텍스 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