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었지] 인요한 교수와 회사의 오랜 인연

인요한교수
[사진설명] 1기 영어 회화반 수업 모습
여수공장은 1982년 2월 사원들의 외국어 능력을 향상시켜 보다 효과적인 업무수행을 하도록 하기 위해 영어 회화 교육을 실시했다. 총 30명의 수강생을 초급반 15명, 중급반 15명으로 나누어 반마다 일과 후에 매주 2일, 1일 2시간씩 훈련 홍보과 제 1강의실에서 교육했다. 강의는 5개월간의 교육과정이었다. 이후 수년간 진행했는데 당시로는 최첨단인 비디오테이프리코더 시스템(VTR System)을 강의실에 설치하여 교육 보조 기재로 활용하였다고 당시 사보에 자랑했다.

[사진설명]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인요한 교수

이때 영어 회화 강사가 당시 한국에 20년 이상 거주한 순천의 미국인 선교사 린튼 여사(Lois Linton, 한국명 인애란)다. 그녀는 4대째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 집안의 후예인 인요한(John Linton) 연세대 의대 교수의 어머니이다.

인요한 교수의 집안은 외증조부 유진 벨이 1895년 전주에 정착한 이래 선교, 교육, 의료, 봉사활동과 함께 3.1운동 지원, 신사참배 반대, 인천상륙작전 참가 등 4대에 걸쳐 한국 사회에 기여해 왔다. 이때 순천에 거주한 린튼 여사가 회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전주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란 인요한 교수는 선교, 봉사활동, 북한 결핵 퇴치 사업을 펼치고 특별 귀화를 통해 순천 인씨가 되었다. 그는 최근 TV 프로그램에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요한

영어 회화반 1기는 1982년에 시작되어 린튼 여사가 개인 사정으로 귀국한 1993년까지 12년간 이 수업을 담당했다. 여수공장에서는 그녀의 영어 회화반을 높게 평가했고, 이 수업의 출신인 임원/팀장도 많이 배출했다. 아직도 공장에는 그녀의 제자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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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인요한교수의 부모와 수강생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수료식을 기념했다

수료식 후에는 린튼 여사의 자택에서 파티를 하곤 했는데, 당시 그녀의 집에 기거하며 단기 봉사활동을 하던 미국 여대생들이 파티에 함께해 총각 수강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한다.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린튼 여사가 모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제자들은 안부를 계속 주고받았다. 미국 출장을 갈 때면 그녀를 찾아가거나 연락을 하여 예를 갖추고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당시 사진을 찾아내 인요한 교수에게 전해주었더니 어머니가 94세인데 보시고 너무 기뻐하셨다고 전했다.


박홍서 책임 | 브랜드관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