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었지] 인요한 교수와 회사의 오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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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영어 회화 강사가 당시 한국에 20년 이상 거주한 순천의 미국인 선교사 린튼 여사(Lois Linton, 한국명 인애란)다. 그녀는 4대째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 집안의 후예인 인요한(John Linton) 연세대 의대 교수의 어머니이다.
인요한 교수의 집안은 외증조부 유진 벨이 1895년 전주에 정착한 이래 선교, 교육, 의료, 봉사활동과 함께 3.1운동 지원, 신사참배 반대, 인천상륙작전 참가 등 4대에 걸쳐 한국 사회에 기여해 왔다. 이때 순천에 거주한 린튼 여사가 회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전주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란 인요한 교수는 선교, 봉사활동, 북한 결핵 퇴치 사업을 펼치고 특별 귀화를 통해 순천 인씨가 되었다. 그는 최근 TV 프로그램에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어 회화반 1기는 1982년에 시작되어 린튼 여사가 개인 사정으로 귀국한 1993년까지 12년간 이 수업을 담당했다. 여수공장에서는 그녀의 영어 회화반을 높게 평가했고, 이 수업의 출신인 임원/팀장도 많이 배출했다. 아직도 공장에는 그녀의 제자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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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료식 후에는 린튼 여사의 자택에서 파티를 하곤 했는데, 당시 그녀의 집에 기거하며 단기 봉사활동을 하던 미국 여대생들이 파티에 함께해 총각 수강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한다.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린튼 여사가 모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제자들은 안부를 계속 주고받았다. 미국 출장을 갈 때면 그녀를 찾아가거나 연락을 하여 예를 갖추고 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당시 사진을 찾아내 인요한 교수에게 전해주었더니 “어머니가 94세인데 보시고 너무 기뻐하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