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와 설국열차의 지구, 그 배후의 조종자, 기후변화 티핑포인트

아찔하도록 뜨거웠던 지난 여름 밤. 밤새 잠 못 들고 뒤척이게 했던 그 열대야의 기억이 아득해질 무렵, 우리는 끝나지 않을 듯 쏟아져대는 기나긴 장맛비와 폭우를 맞이하였다. 으레 상식으로 알고 있던 여름철의 날씨 패턴, ‘장마 후 한 달 가량의 폭염,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지면서 가을로 접어드는’ 그 패턴이 올 해는 완전히 무너졌다. 이런 이상한 날씨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심화되었다는 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 최근 몇 년간의 기억을 더듬어봐도 알 수 있듯이, 지구온난화는 단순히 기온이 올라가는 현상이 아니라, 고온/ 저온/ 폭우/ 가뭄 등 다양한 이상기후를 동반하는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더 두려운 건, 이러한 극한 기후 현상도 우리가 앞으로 겪어야 할 기후위기의 작은 전조 증상에 해당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악화된 미래의 기후 환경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선, 최근에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 (2013)’가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혹한의 지구를 살펴보자. 영화 초반부에 짧게 지나가버려서 다들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인데, 설국열차는 심각해진 온난화 피해를 막기 위해 과학자들이 CW-7이라는 물질을 대기의 성층권에 살포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실제로 화산 활동이 발생하면, 다량의 화산재가 성층권에 도달하여 태양에너지를 반사시킴으로써 지구의 온도가 몇 년간 떨어지는 현상에서 착안한 것으로, 실제로 기후 공학(geo-engineering)이라는 분야에서 지구온난화를 저지하기 위해 고려되고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속의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를 증폭시키는 ‘기후 피드백’의 역할을 과소평가하였고, 이후 한랭화 피드백이 급격하게 진행되어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빙하기 시대가 찾아왔다. 영화 속 혹한의 지구는 기후 변화로 인해, 지금보다 좀 더 더워질 것이라는 우리의 일반적 예상으로부터 벗어나지만, 충분히 개연성 있는 미래를 보여준다. 하지만, 다행히도(?), 현실 속의 과학자들은 다양한 기후 피드백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 공학의 방법론들은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될 전망이다.

 

다채로운 우주의 모습과 스토리로 우리에게 감동을 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 (2014)’도 미래 지구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데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은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과 일상적으로 몰아닥치는 모래폭풍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육지가 건조해지고, 강수량이 줄면서 새로운 종류의 병충해까지 더해져 동식물 군의 멸종이 급증하게 된다. 재배가 가능한 식물이 하루하루 줄면서 황무지가 늘어나게 되고, 이는 대형 모래폭풍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안타깝게도, 항성계 간 우주탐사를 할 정도로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인류이지만, 이러한 급격한 환경 변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인류는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영화 ‘투모로우 (2004)’는 급격한 기후변화의 모습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기후변화로 인해 북극해와 그린랜드의 빙하가 급격히 녹으면서 대서양의 해양 순환이 역전된다. 원래 북대서양의 고위도 지역에서 차가워진 바닷물은 심해로 깊이 가라앉으면서 적도 지역의 따뜻한 해수를 북쪽으로 끌어당기는 모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이 모터가 일순간 멈춰 서면서 북반구 고위도를 중심으로 거대한 한랭 저기압이 발생하게 되고, 모든 것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한랭화가 수 일 이내에 급격히 전개되는 양상은 영화적 상상력에 의해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투모로우의 갑작스런 빙하기 발생은 실제 과거에 있었던 사례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만2천년 전, 지구는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서서히 온난화가 진행되던 중, 그린란드 지역을 중심으로 갑작스러운 한랭화가 나타났는데, 이때 수십 년 사이에 연평균 온도가 5도 이상 급격히 하강하면서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라는 한랭기가 몰아닥쳤다. 이렇게 발생한 한랭기는 1,000년 정도 지속되다가, 십 년 사이에 지구의 온도가 10도 이상 갑자기 증가하는 급격한 변화를 맞으며 끝이 났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가 100년 동안 약 1도가량 상승한 것에 비하면, 10년 동안의 10도 상승은 실로 엄청나고 급격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가 그린랜드 빙하의 붕괴와 해양 순환의 역전에 의해 발생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질학적 관측 기록들은 영거 드라이아스기의 사례 외에도, 이러한 급격한 변화가 그 이전에도 수차례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단스가드-오슈가 이벤트’라고 알려진 현상이 있는데, 이는 가장 마지막 빙하기 동안에 급격한 온난화와 한랭화가 25차례나 연속적으로 반복되며 나타났던 현상을 지칭한다.

 

이러한 급격한 기후변화를 학자들은 ‘기후변화 티핑포인트’ 또는 ‘기후변화 임계점’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티핑포인트는 어떠한 현상이 처음엔 서서히 진행하다가, 돌연 급격하게 변화하게 되는 그 순간을 가리킨다. 탁자 위의 컵을 천천히 밀면 한동안은 조금씩 밀려갈 뿐이지만, 탁자 끝에 도달했을 때는 작은 힘에도 탁자 밑으로 추락하게 되는데, 이 탁자 끝 지점이 티핑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 증가가 지금까지 가져온 변화는, 테이블 위의 컵이 조금씩 밀쳐지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지구의 기후는 해양, 대기, 삼림, 지면, 해빙 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기후시스템 내의 여러가지 힘의 균형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기체 증가와 같은 외부적인 힘이 가해지면, 기후변화를 가속시키려는 힘과 변화를 막으려는 힘이 균형을 이루면서 점진적으로 천천히 변화하게 된다. 하지만, 한쪽 방향의 힘이 일방적으로 계속되면,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게 되는 시점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에는 완전히 새로운 균형점에 이를 때까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급변하는 과도기가 펼쳐진다. 이는 25차례에 걸쳐 급격한 온난화와 한랭화가 반복되었던 과거의 기록과 같은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새로운 균형점을 찾은 지구는 영화 ‘워터월드(1995)’에서와 같은 물에 잠긴 모습일 수도, 설국열차의 지구일 수도, 모든 육지가 황폐화된 인터스텔라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모두 지구의 역사상 실존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기후변화는 지구가 천천히 반응하는 점진적인 변화를 가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급격한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력은 점진적 기후변화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점진적 기후변화에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요구된다. 하지만, 적응을 위한 시간이 어느 정도는 주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희생이 경제적 비용에 국한될 수 있다. 하지만, 급격한 기후변화가 우리 사회의 적응 속도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면 이는 엄청난 혼란과 함께 사회경제시스템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사례를 시리아 지역에서 확인한 바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연이은 가뭄과 농촌 경제의 붕괴, 도시 빈민의 급격한 증가라는 배후 조건의 변화는 정치, 종교 분쟁과 맞물려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갔다. 급격한 기후변화는 이러한 갈등과 위협을 지구 어느 곳에서든 일어나게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기후 위기가 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이미 막을 수 없는 추세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기후 티핑포인트에 도달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2015년 195개국의 정상들이 이룬 파리 협약은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제한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으로 질주해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을 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파리협약에서 195개 당사국들이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을 약속했으며,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망치 대비 37%까지 줄이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 달성 가능성은 확실치 않으며, 비관적인 전망이 오히려 우세하다. 따라서,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 저감이 계획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계획을 통해 정부가 목표를 달성해낼 것인지 묻는 것이다. 기후변화 의제에 관심을 갖는 정치인에게 투표하고, 정책 입안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권자로서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이는 안정적인 주거를 위한 부동산 정책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요구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계획과 정책을 고민하도록 목소리를 키우자. 이러한 얘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대들은 다 계획이 있구나~”

 


국종성 석좌교수 |포항공과대학

포항공과대학 환경공학부에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 기후 예측과 기후변화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기후변화 관련 170여 편의 논문을 출판하였으며, 기후변화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2015년에 APEC 과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