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바이러스의 관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설파한 총균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코로나19라고 불리는 바이러스의 전파와 확산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느냐고.

인류 역사는 반복적이고 익숙한 흐름을 갖는다. 그것은 우리가 스물세 쌍의 염색체를 갖는 인간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이번뿐만 아니라 과거 니파(Nipah), 사스(SARS), 에볼라(Ebola), 메르스(MERS) 등 바이러스 질병 확산의 흐름을 쫓다 보면 포유류 중 유일하게 비행할 수 있는 박쥐가 등장한다.

박쥐는 아주 오래전부터 바이러스와 함께 해왔다. 비행을 위한 빠른 속도의 날갯짓은 신진대사와 체온을 높인다. 박쥐는 날갯짓 때문에 같은 크기의 육상 포유류보다 3~5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유해산소가 발생하고 세포 손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포유류에 일반적으로 염증을 일으킨다. 과도한 염증반응은 질병을 일으키고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박쥐의 면역체계상 염증반응이 약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체에 대해 염증반응이 강하게 일어나면 비행으로 발생하는 체내 변화가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박쥐는 생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자연계의 바이러스 창고가 되었다. 바이러스는 박쥐의 몸속에 들어와 약한 면역 반응 덕택에 사라지지 않고 저장되었다.

과학자들은 박쥐의 몸속에 137여 종의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박쥐가 바이러스의 자연 저장소가 된 것과 바이러스가 중간 숙주를 거쳐 인간에게 전파되는 현상은 기후변화와 큰 관계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생태계 변화를 동반하기에 관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어떤 장소에 살지 않던 생명체가 새롭게 나타났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세계에서는 큰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이 발전하고 숲을 포함한 자연이 인간에게 정복되면서 인간과 박쥐의 생활 영역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박쥐가 갖고 있는 바이러스 중 인간에게도 전염가능한 인수공통 바이러스(zoonotic virus) 61종은 과거보다 더 쉽게 인간에게 전파될 수 있다.

스페인과 영국, 독일, 일본, 인도네시아, 노르웨이 등 다양한 국가들의 연구진들은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전파되자 공동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박쥐 바이러스의 전파가 인간의 산림파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박쥐가 서식하는 숲을 보전하는 것이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GSC매거진, GS칼텍스 사보
동굴 속에 사는 박쥐가 보유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인간 또는 가축을 통해 세상으로 전파된다. ©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896841119306572#bib159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생명체는 박쥐뿐만 아니라 곤충과 같은 절지동물도 있다. 곤충은 기후변화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생명체다. 모기도 예외는 아니다.

이집트숲모기(Aedes aegypti), 흰줄숲모기(Aedes albopictus)는 지카 바이러스의 매개체로 알려져있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모기 서식지의 확산으로 2050년까지 대략 5억 명, 2080년까지 10억 명의 사람들이 추가로 모기 매개 바이러스 질병에 노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GSC매거진, GS칼텍스 사보
기후변화로 인해 질병을 전파하는 모기 서식지 확산이 예상된다. 이집트숲모기(위)와 흰줄숲모기(아래)의 현재 서식지(파란색)와 예상되는 미래 서식지(노란색) © Campbell LP, Luther C, Moo-Llanes D, Ramsey JM, Danis-Lozano R, Peterson AT. 2015 Climate change influences on global distributions of dengue and chikungunya virus vectors. Phil. Trans. R. Soc. B 370: 20140135.

인간이 바이러스를 지구상에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우리는 작게는 감기에서부터 크게는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바이러스와 휴전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바이러스는 인간이 과학기술로 정복해왔던 그 어떤 자연의 존재보다 강력하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바이러스와 인간의 만남은 앞으로도 잦아질 수밖에 없다.

먼 나라 이야기 같아 보일 수 있지만 과학자들은 남극이나 북극의 빙하로 갇혀 있을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빙하가 녹아 그 속에 무언가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고, 서로 단절되어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았던 경계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변하면서 생명체들 간의 자연스러운 접촉도 증가할 것이다. 1988년과 2002년 북대서양에서 바다표범을 집단으로 폐사시킨 ‘물개 전염성 급성염증 바이러스(PDV, Phocine distemper virus)’가 2004년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것도 북극 빙하가 감소하면서 바이러스가 확산된 증거다.

바이러스는 전파될 수 있는 환경에 놓이면 빠르게 확산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지만 언제 어디서 무슨 생명체가 어떤 방식으로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전달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바이러스가 전염된 다음에서야 그것을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기후변화는 그 과정을 더욱 예상치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더욱 기후변화를 불편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동헌 | 과학기술 칼럼니스트

*본 콘텐츠는 2020년 3월 5일 사이언스타임즈에서 발행한 기고문을 사용 허가를 받아 사용하였습니다.